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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 유도마저 금메달 반토막…‘기대 이하’ 일본은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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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세야 수나다(동메달)와 료마 아오키(은메달)가 1일 중국 항저우 올림픽 스포츠 센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항저우아시안게임 남자 3000m 장애물 달리기 결선이 끝난 뒤 ...

일본 세야 수나다(동메달)와 료마 아오키(은메달)가 1일 중국 항저우 올림픽 스포츠 센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항저우아시안게임 남자 3000m 장애물 달리기 결선이 끝난 뒤 일장기를 펴고 기뻐하고 있다. 항저우/AP 연합뉴스

2022 항저우아시안게임이 어느덧 후반기에 접어들었다. 폐막식(8일)을 제외하면 사실상 대회 일정은 6일 남았다. 이런 가운데 한국은 2일 오후 4시(한국시각) 기준 종합성적에서 일본에 이어 3위를 달리고 있다. 두 나라는 금메달 숫자가 30개로 같지만, 은메달에서 일본(43개)이 한국(39개)을 앞섰다. 동메달은 한국(60개)이 일본(44개)에 앞서, 전체 메달로 보면 한국(129개)이 일본(116개)보다 많다.

앞서 대한체육회는 이번 대회 목표로 종합 3위를 제시했다. 이례적인 목표다. “일본을 넘을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대신 “일본과 메달 격차를 줄이는 데 집중하겠다”고 했다. 그만큼 격차가 심할 것으로 예상한 셈이다. 그런데 생각보다 일본의 금메달 행진은 부진하다. 아직 육상 등 주력 종목이 남아있지만, 대회가 절반 이상 진행된 현재 자카르타·팔렘방 대회 금메달(75개)의 절반도 채 따질 못했다. 왜일까?

한국(은메달), 중국(금메달), 일본(동메달) 남자 혼계영 대표팀 선수들이 9월26일 중국 항저우 올림픽 스포츠 센터 아쿠아틱 아레나에서 열린 2022 항저우아시안게임 수영 남자 혼계영 400m 시상식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항저우/연합뉴스
먼저 수영(경영 종목)에서의 부진이 눈에 띈다. 일본은 지난 자카르타·팔렘방 대회 때 금메달 19개를 휩쓸며 중국(당시 19개)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전체 메달 개수는 오히려 일본(52개)이 중국(50개)에 앞설 정도였다. 하지만 이번 대회에서는 부진하며 금메달 5개에 그쳤다. 수영에서만 금메달 14개가 줄었다. 반면 중국은 수영에서 금메달 28개를 따며 크게 약진했다. 금메달 6개로 역대 최고 메달을 기록한 한국도 마찬가지다. 주력 선수가 모두 출격했음에도 생긴 참사라 일본 입장에선 더욱 뼈아프다.

또 하나 부진했던 종목은 일본의 국기인 유도다. 일본은 이번 대회 유도에서 금메달 5개를 획득했다. 지난 자카르타·팔렘방 대회(9개) 때보다 4개가 줄었다. 사실상 반 토막이다. 하지만 이유가 있다. 일본은 이번 대회에 올림픽 메달리스트급 선수들을 파견하지 않았다. 지난 도쿄올림픽 때 올림픽 역사상 최초로 남매가 나란히 금메달을 땄던 아베 우타(52kg) ·아베 히후미(66kg)도 불참했다. 2024 파리올림픽 준비를 위해서다.

2021년 7월26일 남자 유도 아베 히후미, 여자 유도 아베 우타의 동반 금메달 소식을 전하는 요미우리(위)·아사히(왼쪽)·산케이 등 일본 언론. 도쿄/연합뉴스
일본이 아시안게임에 2진급 선수를 파견한 것은 유도만이 아니다. 특히 일본은 배구, 농구 등 구기 종목에서도 2진급 선수를 파견했다. 특히 야구는 프로 선수가 아니라 사회인 야구(기업 실업팀) 선수들이 출전한다. 이런 이유로 일본은 아시안게임에서 야구가 정식 종목이 된 뒤 7차례 대회 동안 단 1번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첫 대회이자 일본에서 열린 1994 히로시마아시안게임이다.

일본이 이처럼 아시안게임을 홀대하는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일본은 초대 아시안게임(1951년)부터 대회에 참가했는데 당시 압도적인 성적(금메달 24개)으로 1위를 차지했다. 2위는 개최국 인도(15개)였다. 패전국이었지만, 여전히 스포츠에서 일본이 아시아 최강이라는 점을 증명했던 셈이다. 더욱이 일본은 이때도 ‘우리가 아시아를 대표해 서구에 맞선다’는 생각을 놓지 않았다. 일본이 아시안게임보다 올림픽을 중시한 이유다. 한 일본 종합일간지 기자는 “언론에서도 아시안게임에 크게 관심이 없다”라며 “스포츠 매체는 거의 기자를 파견하지 않았고, 종합지도 소수만 파견했다”고 했다.

일본의 이런 올림픽 중심주의는 반발을 사기도 했다. 1982년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 창립 과정에서 평의회 본부 유치를 두고 쿠웨이트와 경쟁했으나 일본이 완패한 게 대표적이다. 일본은 인프라나 국가 안정성 면에서 월등히 앞섰지만, 아시아 국가들의 반감과 오일머니를 넘어서지 못했다. 아시아올림픽평의회는 그때부터 줄곧 쿠웨이트에 본부를 두고 있다. 1988년 올림픽 유치를 두고 경쟁하는 과정에서 예상을 뒤엎고 개최지 투표에서 서울(52표)이 나고야(27개)를 압도한 것도 일본의 아시아 홀대에 대한 다른 아시아 국가들의 반감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있다.

항저우/이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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