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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서울의 봄’과 ‘7번방의 선물’…이것은 영화 이야기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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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울모임 회원들이 1977년 또는 1978년경 촬영한 것으로 추정되는 사진. 예배를 보고 사진관에 가서 함께 찍었다고 한다. 앞줄 왼쪽서 4번째가 한울모임에서 신앙공부와 철학공부를...

한울모임 회원들이 1977년 또는 1978년경 촬영한 것으로 추정되는 사진. 예배를 보고 사진관에 가서 함께 찍었다고 한다. 앞줄 왼쪽서 4번째가 한울모임에서 신앙공부와 철학공부를 지도한 홍응표이고 7번째가 박재순이며 두번째 줄 왼쪽서 첫번째가 2021년 세상을 떠난 이규호다. 사진 박재순 제공

1980년경 수사기관의 불법체포·불법구금·고문과 허위자백 강요로 반국가단체로 둔갑된 기독교 신앙모임 ‘한울모임’ 사건에 대해 진실규명 결정(인권침해 판단)이 내려졌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12일 제68차 전체위원회에서 고 이규호·박재순씨 등이 신청한 한울모임 사건에 관해 이같이 결정하고 “국가는 수사과정 중에 발생한 불법구금, 고문·가혹행위,범죄사실 조작에 대해 사과하고 재심 등의 조치를 취하라”고 국가에 권고했다. 한울모임 사건이 진실규명되면서 1980년대 초반 충남·대전지역에서 있었던 아람회·청람회·금강회 등과 함께 네가지 조작사건이 모두 진실규명되거나 재심을 통해 무죄 판결받았다.

고 이규호·박재순 등 한울모임 사건에 연루된 6명은 1980년 2월부터 1981년 3월까지 여름수련회에서 맑스공산주의 찬양을 하고 현 대통령을 비난했으며 불온전단을 습득하고 모임을 위한 자금을 수수했다는 혐의로 1981년 4월13일 검거돼 나흘 뒤인 4월17일 구속영장이 발부‧집행되었다. 이들은 국가보안법상 반국가단체 구성 혐의가 적용되어 법원에서 최고징역 4년, 자격정지 4년 등의 확정판결을 선고받았다.

진실화해위는 “한울모임 사건은 기록상 최소 4일 이상의 불법구금이 확인되고, 신청인들이 수사기관에서 불법구금된 가운데 구타·고문 등의 가혹행위로 인해 허위 자백한 사건이라고 주장하는 등 형사소송법상의 재심이유에 해당하여 진실규명 필요성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지난해 12월에 출간된 ‘한울회 사건의 진실’. 사건 관계자 17명이 함께 집필했다.

신청인 중 한 명이었던 고 이규호(1958년생)씨는 진실화해위에 진실규명 신청을 한 직후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요양병원에서 지내다 2021년 세상을 떠났다. 또 다른 신청인인 박재순(73, 씨알사상 연구자)씨는 12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한울모임은 대전 지역의 동기동창생들을 중심으로 일종의 무교회주의를 표방하며 성경공부와 철학공부를 하는 모임이었다”며 “1980년이라는 시대상황에서 독재와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공동체를 지향했는데 이게 반국가단체로 몰린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검거직후 한 달여간 여관과 충남대공분실에 갇혀 있다 대전경찰서 유치장을 거쳐 대전교도소에 수감되었고 2년6개월 확정판결을 받은 뒤 형기를 다 채우고 나왔다.

대법원은 1982년 6월 한울모임을 반국가단체로 인정한 원심이 잘못됐다며 무죄 취지로 사건을 한차례 파기환송하기도 했다. 그러나 서울고등법원에서 일부 변경된 공소장을 인정해 또다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등을 유죄로 판단하자 1983년 2월 원심을 확정했다. 당시 주심 대법관은 이회창 전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 총재였다. 1심에서는 이인제 전 의원 및 경기도지사가 배석판사로 참여했다.

한울모임 사건은 2010년부터 고 이규호·박재순에 한해 재심 재판이 진행됐으나 2016년 서울고등법원에서 국가보안법 위반에 대한 무죄 판단이 이뤄지지 않았고 일부 형량이 조정되거나 집행유예가 추가됐다. 불법구금, 고문·가혹행위로 인한 허위자백 강요 등 인권침해 부분은 아예 다뤄지지도 않았다. 한울회 재심사건의 변호인이었던 남성욱 황정화 변호사는 12일 한겨레에 “비슷한 시기 충남·대전 지역에서 벌어진 아람회·금강회 사건 변호도 맡아 재심 무죄 판단을 이끌어냈는데 한울회 사건만은 여러 어려움이 있었다. 진실화해위를 통해 뒤늦게나마 인권침해 사실을 확인받게 돼 다행”이라고 말했다.

1980년대 초 한울모임과 아람회 사건의 담당검사이자 1972년 춘천강간살인조작 사건의 검사였던 정용식. 1982년판 한국법조인대관

대전지방검찰청 소속으로 한울모임 사건을 기소했던 정용식 검사는 아람회 사건 담당 검사이기도 했다. 정 검사는 또한 영화 ‘7번방의 선물’ 모티브가 된 1972년 춘천강간살인조작 사건 당시 조작된 증거를 바탕으로 기소를 했던 검사였다. 9살 여자아이를 강간하고 살해했다는 누명을 썼던 정원섭씨는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15년만에 모범수로 출소했다.

아람회 사건은 1980년 5월부터 1981년 7월까지 금산·대전지역의 동창생 등 11명이 친목 모임에서 했다는 대화 내용을 빌미로 국가보안법상 반국가단체 구성 및 북한 찬양‧고무 등 혐의가 적용돼 최고징역 10년, 자격정지 10년 등의 유죄판결을 받은 사건이다. 수사기관의 장기간 불법구금과 가혹행위로 인한 허위자백이 확인되어 1기 진실화해위 활동기간인 2007년 7월 진실규명됐다.

한울모임의 주요멤버였던 박재순은 대학생 때부터 사상가 함석헌을 만난 뒤 평생 그의 씨알사상을 공부해왔다고 했다. 사진 박재순 제공

충남대생 이완규 등 3명이 ‘청람 낚시계’등의 이름으로 역사·경제 등을 공부했다 하여 1981년 9월 초 경찰에 연행돼 47일 이상 대공분실 등에 불법감금돼 구타와 물고문 등의 가혹행위와 허위자백을 강요받은 뒤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징역 3년, 자격정지 3년 또는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던 ‘청람회’ 사건은 지난 9월26일 제63차 진실화해위 전체위에서 진실규명된 바 있다.

이밖에도 정선원 이영복 이성근 등 11명의 공주사범대 학생들이 1980년 12월부터 1981년 1월까지 ‘서양경제사론’을 교재 삼아 유물론을 공부했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 반공법, 계엄법 위반죄가 적용돼 징역 5년 등을 받은 ‘금강회’ 사건은 2019년 1월 재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고경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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