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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봄’ 참군인 김오랑, 군 교재 실려야”…육사 내 추모비 언제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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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오랑(왼쪽) 중령과 영화 ‘서울의 봄’에서 오진호 소령을 연기한 배우 정해인(오른쪽). 오진호 소령의 실제 모델이 김오랑 중령이다. 한겨레 자료사진,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

김오랑(왼쪽) 중령과 영화 ‘서울의 봄’에서 오진호 소령을 연기한 배우 정해인(오른쪽). 오진호 소령의 실제 모델이 김오랑 중령이다. 한겨레 자료사진,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전두환씨 등 신군부가 1979년 12월12일 주도한 군사 반란을 다룬 영화 ‘서울의 봄’이 600만 관객 돌파 초읽기에 들어간 가운데, 반란에 맞선 정병주 특전사령관을 지키다 반란군의 총격에 숨진 ‘참군인’ 김오랑 중령(당시 소령)을 군 교육교재에 실어 가르쳐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김준철 ‘참군인 김오랑 추모사업회’ 사무처장은 7일 시비에스(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나와 이렇게 주장했다. 특전사 대위 출신인 김 사무처장은 2000년대 초부터 김 중령의 명예 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영화 ‘서울의 봄’을 3번 봤다는 김 사무처장은 “처음 볼 때는 팩트와 영화가 어떤 차이가 있는지 분석하다 보니 몰입이 안 됐는데 두 번째, 세 번째 볼 때는 교전 장면에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고 말했다.

영화 속에서 배우 정해인이 연기한 오진호 소령의 실제 모델이 바로 김 중령이다. 1979년 12월13일 새벽, 반란군에 가담한 3공수여단 10여명이 정병주 특전사령관을 체포한다며 서울 송파구 거여동 특수전사령부 사령관실로 들이닥치자 혼자 정 사령관의 곁에 남아 권총으로 반란군과 총격전을 벌인 김 중령은 엠(M)16 소총의 실탄을 여러 발 맞고 숨졌다. 김 중령의 아내 백영옥씨는 남편의 죽음 뒤 충격으로 시신경 마비가 되어 실명하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다 1991년 6월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실족사로 결론을 내렸다. 김 중령은 1990년에야 소령에서 중령으로 추서됐고 2014년이 돼서야 보국훈장이 추서됐다. 지난해 국방부는 김 중령의 사망 구분을 ‘순직’에서 ‘전사’로 변경했다.

영화 ‘서울의 봄’에서 전두환씨를 실제 모델로 한 전두광 역할을 맡은 배우 황정민.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2013년 4월 국회 본회의에서는 김 중령에게 무공훈장을 추서하고 김 중령의 모교인 육군사관학교(육사)에 추모비를 건립하도록 촉구하는 결의안이 통과된 바 있다. 무공훈장은 전시 또는 이에 준하는 비상사태에서 전투에 참가해 뚜렷한 공을 세운 사람에게 수여한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무공훈장 대신 국가안전보장에 뚜렷한 공을 세운 사람에게 수여하는 보국훈장을 추서했고 육사 내 추모비는 아직도 세워지지 않았다. 다만 김 중령의 고향인 경남 김해시 시민들이 성금을 모아 김해 삼성초등학교 인근 산책길에 흉상을 세웠다.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이 2021년 10월8일 경남 김해시 김오랑 중령 추모비를 찾아 참배한 뒤 김 중령 친족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연합뉴스

이에 결의안 통과에 큰 역할을 한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4일 페이스북에 “오늘까지도 육군사관학교나 특전사에 국비로 김 중령의 흉상이나 추모비 하나 세우지 못한 것은 부끄럽다”고 썼다.

김 중령의 조카 김영진씨 역시 최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영화에서 삼촌이 죽는 장면은 눈물이 나서 차마 제대로 보지 못했다”며 “삼촌의 훈장을 보국훈장에서 무공훈장으로 바꿔주고 육군사관학교와 특전사령부 안에 삼촌의 흉상까지 세워진다면 그토록 매달렸던 명예 회복도 어느 정도 마무리되는 것 아니겠느냐”고 밝힌 바 있다.

추모비 건립을 위한 1인 시위에 나서기도 했던 김 사무처장은 “국방부가 (추모비 건립에) 회의적”이라며 “지난해에는 정선엽 병장이 사망한 육군본부 지하벙커에 김 중령과 정 병장, 박윤관 일병 등 3명과 관련된 조형물을 하나 세워달라고 용산(대통령실)에 문서로 요청한 적이 있지만 답이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7일 시비에스(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나온 김준철 ‘참군인 김오랑 추모사업회’ 사무처장. 유튜브 갈무리

국방부 헌병대 소속이던 정선엽 병장은 1979년 12월13일 새벽 육군본부와 국방부를 연결하는 지하벙커의 초소에 근무하다 국방부를 점거하려는 반란군의 총탄에 숨졌고, 반란군 부대에 속해 있던 박윤관 일병은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연행 과정에서 벌어진 교전에서 숨졌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뒤 대통령 집무실을 청와대에서 용산 국방부 청사를 옮긴 바 있다.

‘앞으로 남은 과제’를 묻자 김 사무처장은 김 중령의 ‘참군인’ 정신을 오늘날 군인들에게 가르치는 것이라고 답했다. 김 사무처장은 “김 중령은 군 정신교육 교재에 딱 적합한 인물”이라며 “김 중령이 교재로써 기억되고 교훈화될 수 있게끔 하는 것이 제일 바라는 일”이라고 말했다.

한편, 오는 12일 오전 10시 김해 김 중령 흉상 앞에서는 김 중령을 기리는 추모식이 열릴 예정이다.

이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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