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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 인식 깨운 김용균…정작 그 비극을 벌하지 못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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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고를 모두 기각한다.” 7일 오전, 아홉 글자 짧은 선고가 끝나자 대법원 1호 법정에 탄식과 흐느낌이 가득 찼다. 고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씨는 꼭 맞잡고 있던 손을 풀어 가슴...

“상고를 모두 기각한다.”

7일 오전, 아홉 글자 짧은 선고가 끝나자 대법원 1호 법정에 탄식과 흐느낌이 가득 찼다. 고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씨는 꼭 맞잡고 있던 손을 풀어 가슴을 움켜쥐었다. “왜 법정이 이럽니까. 힘없는 약자들을 왜 보호해주지 못하는 겁니까.”

2018년 12월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다 숨진 하청 노동자 김용균씨 죽음의 책임을 가리는 최종심이 7일 열렸다. 대법원은 김용균씨 죽음의 책임을 물어 기소된 원청과 원청 대표의 무죄를 확정했다.

김씨의 죽음은 지난 5년 동안 ‘일터의 차별적인 죽음을 막기 위해 원청과 최고 경영자가 책임져야 한다’는 원칙을 한국 사회에 심어 놓았다. 하지만 정작 그 자신의 죽음에선 원청의 책임을 묻지 못했다. 이날 선고 뒤 방호원의 제지를 받으며 법정을 나서던 김미숙씨는 결국 법정 입구에 털썩 주저앉았다. 부축을 받아 몸을 일으켜 세워 법정을 나선 뒤 김미숙씨가 읊조렸다. “(우리가) 지나 봐라. 여기서 져도 다른 데서 이길 거다.”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이날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던 하청 노동자 김용균씨를 숨지게 한 혐의(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업무상과실치사 등)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원·하청 기업과 임직원(직책은 당시 기준) 13명에 대해 검사가 제기한 상고를 기각하고 원심을 확정했다. 이에 따라 원청업체 한국서부발전과 당시 대표였던 김병숙 대표이사는 무죄를 확정받았다. 대법원이 유죄를 인정한 것은 원청의 안전 관련 실무자와 하청업체 및 대표이사, 실무자들이다. 이들조차 집행유예나 벌금형에 그쳤다. 하청업체인 한국발전기술의 백남호 대표이사는 금고 1년에 집행유예 2년, 이근천 한국발전기술 태안사업소장은 징역 1년2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 실형을 선고받은 이는 없다.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하청업체인 한국발전기술 소속 상하탄설비 운전원으로 일하던 김용균씨는 2018년 12월10일 밤 10시35분~10시55분(추정)께 석탄 운송용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졌다. 홀로 낙탄 제거 작업을 하던 중이었다. 당시 컨베이어벨트의 안전덮개가 열려 있었고 ‘2인1조’ 작업 매뉴얼도 지켜지지 않았다. 야간 근무인데도 컨베이어벨트 통로 부근에 조명이 꺼져 있었고, 비상정지장치(풀코드 스위치)도 불량이었다. 법원도 인정한 죽음의 경과와 원인이다. 일터 곳곳에 위험이 널려 있었다.

김용균의 죽음은 수많은 산재사망사고 가운데 하나로 묻히지 않고 ‘위험의 외주화'라는 중대재해의 근본적 문제를 수면 위로 올렸다. 시민사회의 문제 제기와 어머니 김미숙씨의 끈질긴 투쟁이 힘이 됐다. 김용균 사망 4개월 뒤인 2019년 4월 국무총리실 소속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 위원장 김지형 전 대법관)가 꾸려져 진상조사와 대책 마련에 나섰다.

특조위가 그해 8월 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사고의 근본 원인으로 짚은 것이 ‘원·하청 구조’다. 발전소가 비용 절감을 위해 다른 업무와 ‘연속 공정’인 상하탄 작업을 하청업체에 무리하게 떼어 맡겼고, 이 과정에서 하청 노동자는 사실상 원청의 지배 아래 있으면서도 안전하게 일할 권리에서만 소외됐다는 것이다. 특조위는 발전소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사업주의 안전관리체계 구축 의무화 등 22개 개선방안을 정부에 권고했다. 정부는 특조위 권고안을 수용했지만, 권고안의 핵심 내용인 발전사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여전히 이뤄지지 않았다. 재판이 끝난 뒤 그의 비정규직 동료였던 이태성씨는 “용균아 정말 미안하다. 미안하다. 죽도록 싸웠는데 여기까지인가 보다”라고 울면서 말했다.

다만 그의 죽음을 딛고 사업장 안전의 책임을 명확히 하는 쪽으로 법이 고쳐지고 만들어졌다. 원청 책임을 강화하는 내용의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이 김용균씨가 숨진 지 17일 만인 12월27일 국회를 통과했다. ‘김용균법’이다. 원청 사업장에서 일하는 하청 노동자라면 원청이 무조건 안전보건 조치 의무를 지도록 했다. 2021년엔 원청의 ‘경영책임자’가 중대재해 예방 책임을 다하도록 하고, 이를 위반한 때 처벌하는 내용의 중대재해처벌법도 제정됐다. 중대재해처벌법 통과를 위해 어머니 김미숙씨는 2020년 12월, 29일 동안 단식했다.

김용균을 통해 세상은 바뀌어갔지만, 정작 그 자신은 실질적으로 하청 노동자의 안전을 좌우하는 원청 경영 책임자의 책임을 묻는 데 실패한 셈이다. 이날 확정된 2심 판결은 “(원청 대표가) 운전원들 작업 방식의 위험성을 구체적으로 인식하기 어렵다”는 등의 이유로 김병숙 대표를 무죄로 봤다. 위험한 일터가 문제였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그에 대한 책임은 위험의 근본 배경인 원·하청 구조를 해소하거나 안전한 설비를 구축할 수 있는 원청 대표가 아니고, 현장 실무자에게만 있다는 논리다. 김용균씨 유족을 대리한 박다혜 법률사무소 ‘고른’ 변호사는 대법원 선고 직후 기자회견에서 “오늘 대법원 선고는 그저 의사 결정자의 책임을 비좁게 해석한 법원의 실패”라고 말했다.

지난 5년간 중대재해 피해자들의 곁에서 함께 목소리를 높여온 어머니 김미숙씨는 또다시 좌절하는 대신 사과하고 다짐했다. “지금은 대법원의 부당한 판결로 인해 지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사후 역사는 김병숙 사장이 잘못되었음을 판단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국민들께도 죄송합니다. 힘이 없다는 게 이렇게 비참할 수가 없습니다. 앞으로 다른 길로 사람들 구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나 김용균은 화력발전소에서 석탄설비를 운전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입니다’라고 적힌 손팻말을 든 사진을 남긴 채 세상을 떠난 김용균 5주기가 코앞이다.

김해정 기자 장현은 기자 이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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