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18일 인천시 미추홀구 경인국철(서울지하철 1호선) 주안역 광장에서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가 출범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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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규모 전세사기가 발생했던 서울 강서지역 피해자 전수조사 결과, 절반 이상이 울며겨자먹기로 피해주택을 구입해야 했고, 이 과정에서 까다로운 대출 지원·경매 지연·과다한 소송 경비 등으로 이중삼중의 경제적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조사됐다. 전세사기피해자법이 시행된 지 5개월이 지났지만 사각지대 탓에 고금리 대출로 내몰리는 이들도 많았다.
3일 한겨레가 입수한 강서구청의 ‘전세사기 피해자 전수 실태조사 결과’ 보고서를 보면,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피해자들의 절반 이상이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피해주택을 매입하는 방법’을 택하고 있었다. 응답자(320명)의 64.1%(205명)로 절반 이상이다. 전세사기피해자법이 우선매수권을 주거나 구매자금 대출을 지원하는 등 이 방식을 ‘권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매를 거쳐 피해주택을 사들이는 과정에서도 제도적 허점 탓에 여러 어려움에 맞닥뜨려야 했다. 경매 참가자들은 최저매각가격의 10%를 입찰보증금으로 납부해야 한다. 피해자 대부분은 이미 전세자금 대출 탓에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을 초과한 상태라 고금리 신용대출로 입찰보증금을 마련한 이들이 다수였다.
문제는 전세사기 탓에 법원에 경매물건이 많아 입찰부터 낙찰까지 1년 이상이 걸린다는 데 있다. 이 기간 동안 이자 부담은 고스란히 피해자 몫이다. 백아무개(41)씨는 “경매가 진행된 지 2년 가까이 지났다. 긴 시간 동안 고통 속에 살고 있다. 제발 빠르게 처리해달라”고 했다.
경매가 진행된다 해도 소득 조건 등 때문에 저리 대출 지원을 못 받는 사례도 다수였다. 김아무개(35)씨는 피해주택을 낙찰받았지만 대출 지원이 안 돼 전세 자금을 대출받을 때보다 이자 부담만 커졌다. 그는 “전세사기 피해자면 다 같은 피해자인데 왜 소득 기준을 따지느냐”라며 “(사들인 피해주택이) 팔리지 않아 (고금리) 대출 상환도 못 하고 있다. 지옥 같은 오피스텔 때문에 죽고 싶었는데 계속 지옥에 있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낙찰받아도 문제는 남는다. 오피스텔 피해자의 경우 취득세가 4.6%에 달한다. 1.1%인 일반주택의 4배 이상이다. 모두 피해자가 부담해야 한다.
피해 주택 중 일부는 근린생활시설을 주택으로 불법개조했거나, 발코니 증축 등 불법건축물이 있는 상태인데 이런 경우 나중에 되팔기 어려울 수 있다. 세입자를 구하기도 힘들어 이 집에 영영 발이 묶일 수 있다. 정아무개(32)씨는 아이가 자라면서 다른 집으로 옮기려고 했지만 무산됐다. 피해 주택을 매수한 그는 “중개인에게 속아 불법건축물에 전세로 들어왔다. 매수는 했지만 불법건축물이라 전세대출을 받을 수 없어 세입자를 구하기 힘들다”며 “영영 이 집에 발이 묶인 셈이다. 모든 게 무산돼 너무 힘들다”고 말했다.
유주택 피해자들은 또다른 사각지대다. 저리대출이 안되니 피해 주택을 살 수도 없고, 임차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니 기존 자기 집 임차인에게 보증금을 돌려줄 수 없어 자기 집에 들어가 살 수도 없다.
각종 소송 비용도 부담이었다. 정부는 법률상담 및 경매대행 등 원스톱 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현장의 목소리는 달랐다. 한 피해자는 “경매절차 등 해당 분야에 전문성이 없어 구체적인 절차를 제시해주지 않았고, 인터넷에서 흔히 찾을 수 있는 내용을 안내해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며 “전세사기피해자법 내용도 구체적으로 알지 못했다”고 답했다. 조사 결과 피해자들은 인지·송달료 등 소송 수행 경비에 평균 161만2000원, 변호사 선임비에 평균 379만3000원을 쓰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강서구청은 “우선매수권이 있는 피해자이기 때문에 경매절차를 간소화할 필요가 있다”며 “대출지원 요건에서 소득이나 재산 기준을 제외해야 한다는 건의사항도 보고서에 담았다”고 밝혔다.
이번 조사는 지난달 16∼30일 2주간 강서구 내 전세사기 피해자 중 국토교통부 전세 사기 피해지원위원회에 심의를 신청한 550명을 대상으로 이뤄졌고, 355명이 응답했다. 응답자 중 피해자로 인정된 이들은 320명이다.
피해 응답자의 71.9%가 20~30대였고, 응답자의 80.9%는 보증금 규모가 1억~3억원 사이였다. 전세사기로 인한 소송 비용은 평균 540만원이었다. 응답자의 80%가 수면장애 등 신체적·심리적 고통을 겪고 있고, 자살 충동을 겪은 피해자도 20.9%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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