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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피해의식에 손까지 덜덜…뇌에 켜진 적신호

Summary

게티이미지뱅크 영석(가명)씨는 60살 남성으로 중견기업 대표입니다. 회사는 건실하게 운영되고 있고 가족 간의 관계도 좋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영석씨가 회사 게시판을 보다가 우연히...

게티이미지뱅크
영석(가명)씨는 60살 남성으로 중견기업 대표입니다. 회사는 건실하게 운영되고 있고 가족 간의 관계도 좋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영석씨가 회사 게시판을 보다가 우연히 자신에 관해 험담을 하는 듯한 글을 보게 되었습니다. 영석씨의 실명을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능력이 없는 경영진을 당장 교체해야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영석씨는 월급 받는 직원이 자신을 향해 칼날을 겨누는 것에 격분하며 글을 올린 직원을 당장 찾아내라고 크게 화를 냈습니다. 화를 내자 이전과 다르게 양손이 덜덜 떨리는 것을 느꼈습니다.

결국 글을 쓴 직원을 찾아내 왜 그랬는지를 따져 묻자, 직원은 영석씨를 공격한 글이 아니었다고 해명했습니다. 하지만 영석씨는 회사에 자신을 쫓아내기 위해 조직적으로 음해하는 세력이 있다고 확신하게 됐습니다. 그 뒤로 매일 회사 게시판을 확인하고 격노하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직원들이 ‘영석씨가 이전과 달라진 것 같다’고 하면 영석씨는 그들이 자신을 음해하는 세력의 일부라고 생각했습니다.

화는 자주 나고 동작은 느려지고

하루는 영석씨가 주말에 집에서 쉬고 있는데 책상 위에 놓고 간 아내의 스마트폰에서 메신저가 연신 울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언뜻 ‘빨리 오세요’ ‘채팅방에서 만나요’라는 등의 내용이었습니다. 영석씨가 아내에게 ‘누가 보낸 거냐’고 묻자 아내는 스팸 메시지라고 답했습니다. 영석씨가 보기에는 아내가 자신의 말에 몹시 놀라는 것 같았습니다. 영석씨는 아내가 자신이 모르는 무슨 일을 꾸미고 있지 않은지 의심되기 시작했습니다. 혹시 다른 남자를 만나고 있는 건 아닌가 미심쩍어 지속적으로 아내의 차에 있는 블랙박스를 확인하고 아내가 자는 동안에 스마트폰을 몰래 확인했습니다. 의심은 점점 커져갔습니다.

영석씨는 이전과 다르게 무척 날카로워졌습니다. 주위 사람들이 자신을 망가뜨리려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심한 우울감과 의욕 저하로 회사도 출근하기 싫어졌습니다. 약 한달 전부터는 이전과 다르게 몸의 움직임이 전체적으로 무척 느려진 느낌이 들었습니다. 손도 조금씩 떨리기 시작했습니다. 좌측보다 우측 손이 더 떨렸고, 직원들 앞에서 결재를 할 때면 심하게 떨리는 손이 보일까 무척 신경이 쓰였습니다. 걸음걸이 또한 앞으로 쏠리면서 보폭이 이전보다 좁아져 종종걸음을 걷게 됐습니다. 특히 비가 오는 날에는 행동이 느려지고 손이 떨리는 증상이 더 심해져 우울감과 의심도 더 깊어졌습니다.

영석씨는 무언가 잘못됐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아내와 함께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았습니다. 심리검사 결과 영석씨는 우울감과 의욕 저하가 심하면서 피해의식이 있는 것으로 평가됐습니다. 뇌 자기공명영상에서는 뇌 전두엽에 경도의 위축이 있지만 치매 소견은 관찰되지 않았습니다. 혈액검사에서 이상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검사 중에도 긴장하면 손을 많이 떨고 불안해했습니다. 담당 전문의는 영석씨를 ‘정신병적 증상이 동반된 주요우울증’으로 진단했습니다. 동시에 ‘파킨슨병’이 의심되기 때문에 신경과와 협진이 필요한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결국 영석씨는 파킨슨병 초기로 확진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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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살 이상 1%가 파킨슨병

파킨슨병은 신경 퇴행성 질환 중 하나로, 알츠하이머병 다음으로 자주 발생하는 질병입니다. 파킨슨병은 1817년 논문을 통해 처음으로 환자 사례를 보고한 제임스 파킨슨의 이름을 따서 명명됐습니다. 파킨슨병은 뇌 흑질에서 도파민 신경세포가 소실되면서 발생합니다. 도파민은 뇌의 기저핵에 작용해 몸의 움직임을 정교하게 하는 데 중요한 신경전달물질입니다. 도파민이 부족해 움직임에 장애가 나타나는 게 파킨슨병입니다. 60살 이상 노인의 약 1%가 이 질환을 앓고 있습니다. 또 파킨슨병 환자의 35%가 우울증을 경험하며, 초기 증상으로 우울증을 경험하는 경우가 흔합니다. 파킨슨병에서 보이는 우울증은 의심과 피해망상을 흔히 동반합니다.

파킨슨병은 뇌 흑질에서 도파민 생성이 감소해 생기는데, 주요 증상으로는 좌측 흑질과 우측 흑질의 차이에 의한 손 떨림이 나타납니다. 좌측 흑질의 신경세포가 위축돼 있으면 우측 손에 떨림이 발생하고, 반대로 우측 흑질에 위축이 생기면 좌측 손에 떨림이 나타나게 됩니다. 초기에는 식사 때 젓가락을 사용하거나 글을 쓸 때 더 떨립니다.

손 떨림보다 먼저 생긴 우울감과 피해의식이 모두 연관돼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본인의 상태를 모르면 본인의 우울감·피해의식과 함께 주변의 오해는 더욱 커집니다. 영석씨는 자신에게 우울증과 파킨슨병이 있다는 사실을 주치의에게 듣고 이를 받아들였습니다. 더 이상 직원이나 아내를 의심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우울증과 파킨슨병 약물 치료를 병행하면서 의심은 더욱 줄어들고 행동이 빨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손이 떨려 서류에 서명할 때 남들이 알지 못하게 자신의 손을 가리곤 했지만 이제 증상이 많이 호전되어 그럴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가족들이 보기에 화난 것처럼 보였던 굳은 표정도 풀리고 인상이 많이 부드러워졌습니다. 웃는 일도 자주 생겼습니다. 사실 영석씨의 웃는 얼굴은 우울증과 파킨슨병으로 한때 사라져버렸습니다. 얼굴 근육 움직임의 부조화로 표정으로 감정 표현을 할 수 없어 결과적으로 마스크를 쓴 것처럼 보이는 것을 ‘가면형 얼굴’(masked face)이라고 합니다.

이제 영석씨는 치료를 잘 받으면서 회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가족들과의 오해도 많이 풀렸습니다. 이제 다시 의심이나 피해의식이 생기면 우울증이 악화된 것으로 먼저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결국 자신의 문제를 수용하고 전문가를 통해 객관적으로 평가해보는 것이 문제 해결의 시작이 됩니다.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책 ‘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상담소’를 썼습니다. 글에 나오는 사례는 특정인을 지칭하지 않으며, 이해를 돕기 위해 여러 경우를 통합해서 만들었습니다. 자세한 것은 전문의와의 상담과 진료가 필요하며, 쉽게 자가 진단을 하거나 의학적 판단을 하지 않도록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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