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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계열사서 성추행 상사 유죄 판결에도 이런 일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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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중순, 직장 내 성폭력 피해자로 병가 중인 ㄱ씨는 돌연 소속 팀장으로부터 ‘다른 팀에 갈 의사가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다른 팀원을 충원하고 싶다는 이유였다. “제가 다른 팀에 갔으면 하시는 건가요? 저는 제 복귀 시점에 원하는대로 가해자와 분리해 발령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ㄱ씨의 대답에 다시 질문이 돌아왔다. “복직할 때 ‘배려’해주는 걸로 회사랑 얘기가 된 건가?”

한화그룹 한 계열사에서 상사의 성추행을 겪은 ㄱ씨는 21일 한겨레에 “성폭력 사실 자체로도 괴롭히지만, 더욱 힘든 건 회사의 대처 방식이다. 그간 인정받았던 업무 능력과 인간관계가 한순간에 무너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가해자·피해자를 실질적으로 분리하지 않으면서, 이를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오히려 ‘배려’라는 단어로 부서 이동을 권유하기도 했다.

ㄱ씨는 지난해 10월6일 팀장 ㄴ씨로부터 강제추행을 당했다. ㄴ팀장은 ㄱ씨에게 “나는 네가 여자로 보인다”고 말하며 속옷 끈 위치의 등을 만지거나 어깨, 손을 수차례 만졌다. 당시 ㄴ팀장은 사내 비위 혐의자를 조사하는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ㄱ씨의 직속 팀장은 아니지만 업무상 우월적 지위가 인정됐다.

ㄱ씨는 사건 발생 직후 회사에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나 회사는 ㄴ팀장을 정직 3개월 징계하는 데 그쳤다. ‘징계 수준이 낮다’고 이의제기하자 회사는 ‘지난 10년간 회사에 신고된 성폭력 사건 5건 모두 그보다 가볍거나 비슷한 징계가 내려졌다’며 전례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회사는 가해자·피해자를 분리하겠다며 ㄴ팀장을 보직에서 해임하고, 지역에 있는 공장으로 발령냈다. 그러나 이후에도 ㄱ씨는 업무 때문에 ㄴ씨와 수시로 연락을 주고받아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공간적으로만 분리됐을 뿐, 업무적으로는 연결돼 있었던 셈이다.

ㄱ씨는 회사에 ‘실질적인 분리 조치’를 요구했다. 그러나 회사는 ‘불가능하다’고 답했다. ㄴ씨가 수행할 수 없는 업무를 시키기는 어렵다는 게 회사 쪽 설명이었다. 오히려 회사는 ㄱ씨에게 ㄴ씨 업무와 연관이 적은 다른 팀으로 이동할 것을 요구했다.

견디지 못한 ㄱ씨는 ㄴ씨를 같은 달 12일 형사고소했다. 법원은 지난 8월10일 ㄴ팀장의 강제추행 혐의를 인정해 벌금 800만원을 선고했다. 1심 유죄 판결이 나오자 회사는 “확정 판결이 나오면 최종 징계위원회를 열어 징계 수위를 재결정할 방침”이라고 밝히면서도 추가 조치는 하지 않았다.

ㄱ씨는 “ㄴ팀장으로부터 같은 피해를 봤다는 다른 직원의 폭로도 나왔지만 회사는 전수 조사도 하지 않고 추가 조치도 하지 않았다”고도 말했다. ㄱ씨는 현재 트라우마 치료를 받고 있다.

회사는 “사건 발생 후 징계위를 열었고, 회사 자체 판단 기준과 외부 법률자문을 참고해 가해자에게 팀장 면보직과 정직 3개월의 중징계, 피해자와 분리를 위한 공장 부서 발령 등의 조치를 했다”고 설명했다.

박점규 직장갑질119 운영위원은 “언어 성희롱이 아닌 강제추행이 있었는데, 실질적인 분리 조치가 이뤄지지 않은 것은 의무조치 불이행에 해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민정 민주노총 금속노조 여성국장도 “실질적인 업무상 분리조치가 되지 않은 상황으로 보인다”며 “형사 사건 1심에서 벌금 800만원이 나올 정도면 다른 기업에서는 해고되는 사례가 많다”고 평가했다.

김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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