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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 보도연맹 사건 6명만 희생자 인정 보류…“갈라치기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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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 오후 진실화해위(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제65차 전체위원회 도중 영천 사건 표결 결과에 항의하며 퇴장한 야당 추천 이상희, 오동석 위원(왼쪽부터)과 이상훈 상임위원...

31일 오후 진실화해위(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제65차 전체위원회 도중 영천 사건 표결 결과에 항의하며 퇴장한 야당 추천 이상희, 오동석 위원(왼쪽부터)과 이상훈 상임위원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고경태 기자
“영천사건 더 조사할 게 있습니까?”(장영수 위원)

“더 조사할 거 없습니다.”(김진수 조사3과장)

“저는 반대입니다.”(황인수 조사1국장)

31일 오후 열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제65차 전체위원회에서 오간 대화 내용이다. 이날 비공개로 진행한 첫 의결 안건은 ‘영천 국민보도연맹 및 예비검속사건’(영천 사건)이었다.

이 사건 의결 방향에 따라 “전시에는 재판 없이도 죽일 수 있다”는 김광동 진실화해위 위원장의 문제적 발언이 공식적인 정부의 판단으로 정당화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아왔다.

여야 추천 위원들은 앞서 소위원회에서 대상자 21명 중 6명이 ‘적대 세력에 부역했을 수 있으므로 순수한 희생자로 힘들다’는 취지로 ‘진실규명 불능’으로 전체위에 안을 올린 것과 관련해 격한 논쟁을 벌였다. 소위원회는 나머지 16명에 대해선 국가 권력에 의한 희생자로 인정했다.

여당 추천 위원들은 애초의 진실규명 불능안 대신 ‘보류안’을 제안했고, 결국 표결까지 간 끝에 5대3으로 6명을 보류 처리하기로 결정했다. 야당 추천 위원들은 표결이 끝난 즉시 항의 차원에서 퇴장했다.

영천시가 임고강변공원에 조성한 한국전쟁기 민간인 희생자 위령탑 및 추모공원. 위령비에는 희생자 526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으며, 이번에 진실화해위 전체위에서 보류된 6명의 명단도 새겨져 있다. 이상희 위원 제공
겉으로만 보면 진실규명 ‘불능’에서 ‘보류’로 다소 완화된 결론이 나온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상훈 상임위원은 전체위 퇴장 직후 한겨레와 만나 “추가로 나올 자료가 없음에도 이미 나온 진술의 신빙성을 따지겠다는 것이어서 사실상 ‘은폐’라고 보면 된다”고 비판했다.

이날 보류안은 여당 추천 김웅기 위원이 “좀 더 사실관계를 조사하자”고 제안하면서 나왔다. 같은 여당 추천 장영수 위원은 조사가 가능한지 물었고 김진수 조사3과장이 “추가조사할 게 없다”고 하자, 상급자인 황인수 조사1국장이 나서 “저는 반대입니다”라며 조사국 실무간부의 말을 반박했다. 황인수 국장은 전체위 논의 초반부에 “신청인 진술의 진위 여부를 조사하겠다”는 취지로 발언한 바 있다.

이상훈 상임위원은 “(한국전쟁기 사건의 진실규명을 하는 것은) 희생된 분들의 억울함을 가리는 것 만큼이나 유족들의 오래된 멍에를 벗기는 게 주목적이다. 그런데 안건을 보류해서 부역자를 가리는 조사를 더 하겠다는 것은 그분들을 두 번 죽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영천 사건의 경우 2년 전부터 신청인과 참고인 조사를 시작해 이미 지난해 조사보고서를 완료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옥남 상임위원이 ‘부역자 처리지침’이 확정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진도 군경에 의한 민간인 희생사건과 함께 소위 상정을 계속 미뤄온 바 있다.

야당 추천 오동석 의원도 “안건을 보류 결정한 것은 희생자들에 대한 갈라치기이자 괴롭힘이다. 위원들이 충분히 판단할 수 있는 것을 조사관한테 떠넘기는 것이다. 이것은 조사관에 대한 괴롭힘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야당 추천 위원들은 “국정원 대공 3급 간부 출신인 황인수 조사1국장이 한국전쟁기 정보기관 주도로 이뤄진 민간인 학살 사건에 관해 진술의 신빙성을 따지는 등 추가조사하겠다고 나서는 것도 앞뒤가 안 맞는 일”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재판 없이 살해된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 희생자들에 대해 정당한 근거 없이 의결 과정에서 보류처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영천 사건은 한국전쟁 발발 직후 경북 영천의 보도연맹원·예비검속자 600여명이 국민보도연맹원 또는 전선 접경지역 거주민으로 인민군에게 동조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군경에게 살해된 사건이다.

한편 김광동 위원장은 이날 전체위 개시 직후 “즉결처분은 즉결처형이 아니다”라면서 그동안의 발언을 또다시 뒤집었다. 김 위원장은 오동석 위원이 “즉결처분 자체가 재판이고 그것은 계엄사령관의 권한”이라고 한 본인의 말에 대해 법적 근거를 묻자 “처분이라는 것은 행정처분도 처분이고 사법적 처분이고, 이 처분이라는 것은 굉장히 광범위한 표현”이라면서 빠져나갔다.

이에 대해 이상희 위원은 “법적으로뿐 아니라 진실화해위 결정을 통해 즉결 처분은 통상의 재판 절차 없이 처형하는 의미로 쓰이고 있다”고 반박했다. 김 위원장은 이달 영천 사건 유족을 만난 것을 시작으로 국정감사장 등에서 수차례 “전시에는 재판 없이 죽일 수 있다”며, 맥락상 즉결처분을 즉결처형의 의미로 사용해왔다. 이에 대해 전직 진실화해위 위원과 조사관을 비롯해 사회 원로 등 각계에서 비판이 쏟아지자 말을 바꿔 상황을 모면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고경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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