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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일에 싸인 ‘전시대기법’이 있다…국무위원도 잘 모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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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국무회의 자료가 기밀자료임을 밝히고 있는 문서 표지. ‘비상사태하의 범죄처벌에 관한 임시특례법’의 수정안 의결을 다룬다. 국가기록원 “전시에는 재판 없이 즉결처분으로 죽...

1982년 국무회의 자료가 기밀자료임을 밝히고 있는 문서 표지. ‘비상사태하의 범죄처벌에 관한 임시특례법’의 수정안 의결을 다룬다. 국가기록원
“전시에는 재판 없이 즉결처분으로 죽일 수 있다.”

김광동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위원장의 최근 발언은 근거가 없다. 그는 “전 세계의 모든 나라는 전쟁이 발생하면 비상조치령과 계엄령이 발동되고, 계엄령이 발동되면 곧 군 지휘관이 사법권을 행사하게 되어 있다”며 발언을 철회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1949년 11월24일 시행된 한국 전쟁 당시의 계엄법도 군법회의 재판을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의 초헌법적 발언을 계기로 전시 하에 작동할 수 있는 법령들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초헌법적 내용들이 숨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게 전시대기법안이다.

전시대기법안은 전시에 대통령 긴급명령을 통해 발효돼 법률의 효력을 갖게 된다.

대한민국 헌법 제76조

②대통령은 국가의 안위에 관계되는 중대한 교전상태에 있어서 국가를 보위하기 위하여 긴급한 조치가 필요하고 국회의 집회가 불가능한 때에 한하여 법률의 효력을 가지는 명령을 발할 수 있다.

③대통령은 제2항의 처분 또는 명령을 한 때에는 지체없이 국회에 보고하여 그 승인을 얻어야 한다.

즉 행정부가 준비해 둔 ‘전시 대비용’ 법률안의 일종이다. 전시를 고려해 각종 비상한 수단과 조치들이 허용되는 내용들이 담겨 있다고 한다. 구체적인 조문은 국가정보원 관리 아래 기밀에 부쳐져 있다. 행정안전부와 법무부가 소관부처다. 국무위원들은 취임 초기 비밀서약을 한 뒤 이 법을 열람만 할 수 있다고 한다.

재점검이 필요한 이유는 한때 전시대기법안에 초헌법적 내용이 담기기도 했기 때문이다.

과거 전시대기법의 한 갈래에 해당하는 ‘비상조치령’(비상사태하범죄처벌에관한특별조치령)에 의해 한국전쟁 발발 직후 1950년 11월8일까지만 보더라도 1298명의 사람들이 단독판사에게 단 한번의 재판만 받고 신속하게 처형됐다. 비상조치령은 전쟁 직후 이승만 대통령이 피난가면서 서울에 남아있던 이들을 부역자로 처벌하는 근거가 됐다. 당시엔 비상조치령의 국회 승인조차 대통령 긴급명령 발동 한달 뒤에야 이뤄졌다.

1960년 4·19혁명 직후 폐지된 비상조치령은 유신헌법 선포 이후인 1975년 5월 전시대기법안의 하나로 부활했다. 이름도 비상조치령과 유사한 ‘비상사태하의 범죄처벌에 관한 임시특례법(안)’이었다. 이후 1989년엔 전시 범죄처벌에 관한 임시특례법안이라는 이름으로 바뀌기도 했다.

‘비상사태하의 범죄처벌에 관한 임시특례법’의 수정된 부분이 검게 그어져 있다. 국가기록원
해당 법안의 조문은 현재도 알 수 없다. 조금씩 수정을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덕인 부산과학기술대 교수(경찰경호과, 형법 전공)가 국가기록원 등에서 확보한 자료를 보면, 1975년 5월 국무회의, 1982년 국무회의 자료에 드문드문 ‘전시대기법을 수정했다’는 언급만 나온다. 어떤 조문을, 어떻게 수정했는지는 나와 있지 않다.

각각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출신으로 국무위원을 지낸 고위 인사들에게도 전시대기법안의 존재를 알고 있거나 열람했는지 문의했지만, 한 사람은 답변을 거절했고 또 한 사람은 “그런 비밀문건이 있다는 보고를 받은 적이 있다”고만 답했다.

이 교수는 전시대기법안에 문제적 조항이 있을 수 있다고 본다. 이 교수는 27일 한겨레에 “1972년 만들어진 전시대기법에는 단심제에 의한 사형집행 조항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계속 유지되고 있다면 단심제에 의한 사형집행을 금지한 현행 헌법과 충돌한다”며 “국민의 안전과 직결된 법안을 왜 기밀로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국민에게 공개하고 문제 있는 규정이 있다면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부산과기대 이덕인 교수. 본인 제공
진실화해위 상임위원 출신이기도 한 이재승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누가, 어떠한 조건에서 어떠한 부류의 사람을 어디에 구금하고, 전쟁 수행에 방해가 된다면 그들을 종국적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등의 프로그램이 국무회의 수준에서 국가기밀로 동결돼 유사시를 기다린다는 이야기를 알고 있다”며 “과거 한국전쟁기의 경험 때문에 전쟁이나 유사시에 군대나 경찰이 또 비밀스럽게 민간인을 사찰하고 구금할 것이라고 우려된다. 그런 것이 인도에 반하는 범죄이자 전쟁범죄 프로그램”이라고 말했다.

고경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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