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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아래 나무젓가락 드니 솜사탕”…‘자연미술’ 아시나요?

Summary

‘자연미술’은 어린이들이 하듯이, ‘구체적인 계획 없이 자연에 나가 자연이 주는 감흥을 따라 현장에서 이뤄내는 미술’을 뜻한다. 사진은 학생이 만든 자연미술 작품. 7살인 딸이 아...

‘자연미술’은 어린이들이 하듯이, ‘구체적인 계획 없이 자연에 나가 자연이 주는 감흥을 따라 현장에서 이뤄내는 미술’을 뜻한다. 사진은 학생이 만든 자연미술 작품.

7살인 딸이 아버지의 직업을 물었다. 아버지는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그림 그리는 법을 가르친다고 말해 주었다. 그러자 딸은 의심쩍은 눈길로 물었다. “그림 그리는 법도 잊어버리나요?” 미국의 아티스트 하워드 이케모토가 전하는 딸의 이야기다.

어린이들은 모래를 만나면 무언가를 그리거나 무언가를 쌓는다. 조개껍데기나 조약돌은 일단 모으고 꽃잎과 낙엽, 나뭇가지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구름을 보면서 다양한 동물 모양을 연상하고, 사물들이 만들어내는 재미난 그림자에도 흥분한다. 어린이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자연에서 예술을 한다. 모두가 예술가였던 어린이들은 커가면서 ‘미술은 특별히 재능이 있는 사람만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어른으로 성장한다.

‘자연미술’은 어린이들이 하듯이, ‘구체적인 계획 없이 자연에 나가 자연이 주는 감흥을 따라 현장에서 이뤄내는 미술’을 뜻한다. 1980년대 초부터 한국 미술계에서 이어져오고 있는 자연미술을 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는 이성원(54) 서산중앙고등학교 수석교사(미술)는 “자연미술은 풀잎과 새소리와 나뭇가지가 시켜서 하는 미술”이라며 “자연미술을 익히는 과정은 배우는 것이 아닌 회복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대학생 때 자연미술을 만난 뒤 작가 활동을 해온 이성원 교사는 20년 전 국내 최초로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자연미술 현장 수업을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도 꾸준히 해오고 있다. 그 시작은 우연했다. 하루는 아이들과 자연미술 작품을 감상하던 중이었다. 손바닥 위에 솜털 같은 민들레 꽃씨를 올려놓은 사진이었다. 항상 교실 맨 뒷줄에 앉아서 수업에 전혀 참여하지 않는 ‘삐딱한’ 학생이 갑자기 손을 들어서 질문을 했다. “선생님! 대체 그게 어디가 작품이라는 거예요? 민들레가 작품이에요? 손이 작품이에요? 그게 왜 작품이에요? 그런 건 저도 하겠네요!”

학생의 ‘삐딱한’ 문제제기는 오히려 그에게 영감을 줬다. ‘그래, 아이들과 직접 자연미술을 해봐야겠다’고. 아이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시골 학교였기에 밖은 논과 밭, 숲이었다. 아이들은 하늘과 구름, 꽃과 나뭇잎, 솔방울과 돌멩이 등을 소재 삼아서 작품을 뚝딱 만들어냈다. 당시에는 휴대전화가 드물던 시절이라 아이들이 부르면 이 교사가 달려가서 사진기로 다 촬영해서 기록을 남겼다. “첫 수업부터 팝콘이 튀듯 기발한 작품들이 쏟아져 나왔어요. 그날 밤에 제가 잠을 못 잤어요. 아이들에게 가르친 것도 없는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멘붕이 왔지요.” 그가 20년째 학생들과 자연미술 수업을 하고 있는 이유다.

아이들은 멀리 보이는 커다란 구름 아래 나무젓가락을 받혀서 솜사탕처럼 연출했고, 여러 명이 합체해 재미난 그림자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특히 모래사장과 눈밭은 아이들의 신선한 발상을 자극하는 조건이다. 발자국이나 손자국으로 유머와 재치, 따뜻함과 천진난만함이 넘치는 다양한 이미지를 표현했다.

아이들이 남긴 수업 후기를 보면, 자연미술은 ‘동심으로 돌아가는 미술 여행’이다. “자연미술은 동심이다. 생각을 멈췄던 우리를 상상하고 생각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자연미술은 소꿉놀이하는 아이다. 하다 보면 흙으로 밥을 만들고 풀로 반찬을 만드는 어린아이처럼 된다.” “자연미술은 인식의 확장이다. 평소에 보던 거에서 새로운 면을 발견하게 해줘서 어디로 여행을 가지 않았는데 새로운 장면과 새로운 생각을 할 수 있게 인식을 넓혀 주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발자국이나 손자국, 그림자 등으로 유머와 재치 넘치는 다양한 이미지를 표현한다.

정서적 효과에 창의성도 길러져

자연미술의 교육적 효과에 대해 이성원 교사는 일단 자연에 나가는 것만으로도 정서적 효과가 크다고 말한다. 그는 “오랫동안 수업을 하면서 확신하게 된 것이 자연이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것”이라며 “교실 밖에서 공부나 과제, 미래에 대한 걱정을 잠시나마 잊은 채 햇살 아래서 자유롭게 걷고 웃고 수다 떨면서 아이들이 자연처럼 건강해지는 모습을 보게 된다”고 말했다. “자연에 가서 아무것도 안 하더라도 햇살이 아이를 비출 수 있도록, 바람이 아이의 머리칼을 한번 스쳐갈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창의성도 기를 수 있다. 그는 “흔히 창의성을 ‘관계없는 것을 연결하는 능력’이라고 하는데 그걸 가르치는 데는 자연미술만 한 것이 없다”고 말했다. 아이들의 작품을 보면, 엉뚱한 것들을 연결하는 기발한 연결성에 감탄이 나온다. 아스팔트 위 주차선을 피아노 건반처럼 보기도 하고, 꽃을 뒤집어 치마처럼 만들기도 한다. “마을 뒷산에 있는 바위 이름은 다 그 마을 주민이 짓잖아요. 바위에서 곰의 모습을 발견하고 ‘곰바위’라고 이름을 짓는 것 그게 미술이지요. ‘A’에서 ‘B’를 떠올리는 게 은유이고 이게 인간의 창조적 본능인데, 자연미술은 그걸 계속하게 하죠.”

미술에 대한 부담감을 내려놓고 자신감을 갖게 하는 것도 자연미술의 효과다. 미술을 ‘사실을 정확하게 재현하는 그림’으로만 한정해서 생각하기에 대부분의 아이들이 “나는 미술에 소질이 없다”는 어른으로 성장한다. 자연미술은 인간의 본능으로서 미술 욕구를 일깨우고 누구나 ‘일상의 예술가’가 될 수 있다는 걸 깨닫게 해준다. 단 이런 자신감을 회복하게 하는 데는 교사의 태도가 중요하다. 이성원 교사는 “자연미술 수업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점은, 작품을 찍어주거나 감상할 때 교사가 절대로 거절하거나 무시하면 안 된다는 것”이라며 “단 한번의 무시나 거절로 교사는 한명의 자연미술 작가를 잃게 되며 이것을 다시 회복하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라고 당부했다. “다른 아이들이 비웃음을 받고 무시를 당하는 작품이라도 교사는 반드시 그 작품과 작가를 지지해야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짜 미술교육의 본질일지도 모른다.

수업이 남긴 여운과 흔적은 졸업 후 아이들이 보내오는 문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전에는 관심 없었는데 버스를 기다리다가 길가에 핀 민들레나 강아지풀을 쳐다보는 습관이 생겼어요. 자연미술 수업을 해서 그런가 봐요.” “선생님, 소나무 숲에서 자연 사진 찍던 수업, 소풍 같았어요. 저희 후배들하고도 그 수업 계속해 주세요.”

미술에 대한 부담감을 내려놓고 자신감을 갖게 하는 것도 자연미술의 효과다.

자연 환경 없어도 가정에서도 시도해볼만

그렇다면 이 수업은 꼭 자연환경에서만 할 수 있을까? 대도심 속 학교에서는 불가능할까? 이 교사는 “모래만 있는 운동장도 자연이고 학교 교정의 돌들도 자연이니까 어디서든 얼마든지 할 수 있다”며 “꼭 자연이 아니어도 일상의 사물과 인공물로도 엉뚱하게 연결해보는 작업은 얼마든지 할 수 있기에 자연환경의 유무는 상관없다”고 조언했다.

오래전 이 수업은 서산교육청 주관 ‘자기 수업 브랜드 발표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았고, 이성원 교사는 이 수업을 널리 알리기 위해 교육청이나 학회, 대학 등 부르는 곳 어디든 달려가서 연수를 했지만, 아직까지도 이 수업을 하는 교사나 학교는 드물다. 그 이유는 아이들을 데리고 바깥활동을 할 때 생길 수 있는 안전사고 우려 때문으로 짐작된다.

이에 이성원 교사는 학교에서나 가정에서나 누구나 쉽게 자연미술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최근 <자연미술>(학교도서관저널)을 펴냈다. 책은 위트와 영감을 안겨 주는 다양한 자연미술 작품과 그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진 에세이이자 자연미술을 아이들과 함께 하려는 이들을 위한 방법을 자세히 일러주는 참고서이기도 하다. 풍부한 예시 자료와 함께 10가지 대표적인 자연미술 표현 방법을 소개하고, 실제 수업 현장을 옮겨온 듯 꼼꼼히 수업 과정과 주의사항을 정리했다. 요즘은 누구나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집 근처 공원에만 잠시 들러도 자연미술에 도전해볼 수 있다.

그는 “20여년간 내가 아이들을 가르친 것인지 아이들에게서 자연미술을 배운 것인지 헷갈린다”며 “어른을 위한 새로운 미술취미, 산책취미로서 자연미술이 많이 퍼지고, 더 많은 창의성이 요구되는 인공지능 시대에 아이들이 새로운 생각을 할 수 있는 생각도구로서 자연미술이 기능할 수 있다면 기쁘겠다”고 밝혔다.

글 김아리 객원기자 , 사진 이성원 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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