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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규명률 10.6%와 어느 유족회장의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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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유족들 사이에 ‘우리 아버지는 빨갱이가 아니라서 진실규명되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참담하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의 한 조사관이 말했다. 김광동 ...

“벌써 유족들 사이에 ‘우리 아버지는 빨갱이가 아니라서 진실규명되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참담하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의 한 조사관이 말했다. 김광동 위원장의 ‘부역자 찍어내기’ 논란이 유족들을 분열시키며 효력을 발휘하는 탓이다. 김광동 위원장은 당시 신뢰하기 어려운 경찰 기록조차 공적 문서라며 여기에 ‘살인’ ‘방화’ 등으로 기록된 사람들을 적대세력 부역자로 낙인찍으려 하고 있다. 진실화해위가 그동안 적법한 재판 절차 없이 이뤄진 모든 민간인 처형을 불법행위로 간주하고 진실규명을 해온 것과 대조적이다.

김광동 위원장의 ‘유족 갈라치기’로 실제 유족회도 완전히 양분된 상태다. 3대 유족회 중 한국전쟁전후민간인피학살자전국유족회(회장 윤호상)는 다른 과거사 단체들과 연대해 주기적으로 집회를 열고 있지만, 또 다른 유족회들은 어정쩡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특히 가장 오래된 유족단체인 한국전쟁전후민간인희생자유족회 수장인 김복영 회장은 ‘침묵’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부역자 논란 및 김광동 위원장의 “전시 중엔 즉결처분 가능하다”는 발언에 대해 어떤 의견도 내기를 거부했다. “내가 왜 답을 해야 하느냐”며 대답을 회피하기도 했다. 맹억호 아산유족회장은 “이런 시기에 전국유족회장이라는 사람이 가만히 있는 게 말이 되느냐. 눈치보기를 넘어 김광동 위원장을 거들고 있는 느낌이다”라고 말했다.

문제는 유족들에게 남은 시간은 길지 않은데, ‘부역자 찍어내기’를 둘러싼 논란으로 진실화해위 내부의 사건처리는 점점 더뎌진다는 점이다. 지난 10일 한국전쟁 사건 관할인 진실화해위 1소위에선 두달 넘게 이어진 ‘부역자 찍어내기’를 둘러싼 논쟁이 반복됐다. 내용은 전남 진도 군경에 의한 희생사건의 진실규명 대상자 35명 중 4명에 관한 처리 여부였다.

이옥남 상임위원은 같은 여당 추천 김웅기 위원과 함께 이들 4명을 경찰 대공자료에 근거해 ‘진실규명 불능’으로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야당 추천 이상희·오동석 위원은 진실규명 처리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장시간 논쟁이 이어지면서 이후 순서를 기다리던 경북 영천과 광주·나주·장성·화순의 국민보도연맹 및 예비검속사건은 아예 심의조차 되지 않았다. 이로 인해 17일 전체위원회에서는 한국전쟁기 민간인 희생 사건이 단 한 건도 상정되지 못했다.

최근 진실화해위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2023년 9월20일 기준 한국전쟁기 (군경에 의한) 민간인 희생사건의 진실규명률은 10.6%(9992건 중 1063건)에 불과하다. 이에 비해 적대세력(인민군 또는 지방좌익)에 의한 희생사건의 규명률은 25.5%(3987건 중 1017건)다. 인권침해·조작의혹·확정판결 사건은 27%(3063건 중 829건)로 가장 높다. 민간인 희생사건의 진실규명률이 적대세력 사건이나 인권침해 사건에 비해 3배 가까이 적은 셈이다.

이는 1기 진실화해위(2005~2010) 때와 비교하면 확연한 대조를 이룬다. 1기 때는 민간인 희생사건의 진실규명률이 82.1%(8206건 중 6742건)로 압도적으로 높았다. 적대세력에 의한 희생사건이 81.4%(1774건 중 1445건 규명)였고, 인권침해 사건은 30.9%(768건 중 238건)로 가장 낮았다.

물론 축적된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속도를 내면 진실규명률은 더 높아질 것이다. 진실화해위는 최근 “조사1국의 경우 2024년 5월26일까지 60.7%의 사건처리율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사건처리율은 진실규명과 규명 불능, 각하 등을 모두 포함한 수치다. 현재 진실규명률이 사건처리율 대비 1/4 가량인 점을 고려하면 내년 5월까지 민간인 희생사건의 사건처리율은 30%를 넘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일부 희생자들을 부역자로 규정하려는 여당 추천 위원들의 시도가 계속될 경우 진실규명 불능 사례가 속출하거나 안건처리 보류로 인해 진실규명률은 더더욱 예측이 어려워진다.

전체위에 한국전쟁기 민간인 희생자들에 대한 진실규명 안건이 하나도 올라오지 않은 17일, 공교롭게도 그날 오전 김복영 회장은 일부 지역 유족회원과 함께 이옥남 상임위원을 만났다. 면담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고경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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