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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때문에 청년월세도 번호이동도 안 되는 설믜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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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저는 대한민국 국민인데, 정부 전산 시스템을 전혀 이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박설믜(33)씨는 지난달 7일 국가인권위원회에 서울시를 피진정인으로 한 진정을 제출했...

게티이미지뱅크

“저는 대한민국 국민인데, 정부 전산 시스템을 전혀 이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박설믜(33)씨는 지난달 7일 국가인권위원회에 서울시를 피진정인으로 한 진정을 제출했다. 서울시 주민인 박씨는 최근 ‘서울시 청년월세지원’ 사업에 신청하려 했으나 지원서도 작성하지 못하고 실패했다. 실명 인증을 받지 못해서다. 서울시는 대면 접수 없이 온라인으로만 지원서를 받았던 터라 실명 인증이 안 되면 지원할 수 없었다. 박씨는 전산상 실명 인증을 거쳐야만 지원이 가능한 것이 “인권침해”라고 주장했다.

2018년 9월25일 대학생이던 김설믜씨가 “제 이름을 좀 지켜주세요”라는 제목으로 청와대 국민청원란에 글을 올려 화제가 된 지 5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설믜’들은 아이핀, 휴대폰 인증, 공동인증서 등을 통한 실명 인증을 이용할 수 없다. 순한글 이름 ‘믜’ 때문이다.

믜는 완성형(EUC-KR) 한글 입력 방식을 쓰는 시스템에선 글자로 인식이 안 된다. 이 시스템에서 ‘믜’는 특수문자로 표기되거나 아예 표시되지 않는다. 주민등록상의 이름과 전산상에서 보이는 이름이 서로 맞지 않다 보니 당연히 실명 인증도 불가능하다.

2010년 정부가 모든 글자가 입력될 수 있는 유니코드(UTF-8)로 시스템을 개편했으나 아직도 완성형 입력 방식을 쓰는 통신사나 금융기관 등이 존재해 ‘설믜’씨들은 매번 난관에 봉착한다.

휴대전화 개통, 통신사 변경이나 주택임대차 신고 등도 쉽지 않다. 박씨는 ‘설미’란 이름으로 휴대폰을 쓰다가 외국에서 돌아온 2019년 통신사 대리점을 겨우 설득해 본명으로 휴대전화를 개통할 수 있었다. 박씨는 “‘믜’가 등록되는 다른 통신사가 있다고 들었다. 하지만 대리점을 직접 방문해도 시스템에 이름 입력이 안 되니까 번호이동이 어렵다는 얘기만 들었고 결국 옮기지 못했다”고 했다. 주민센터에서 ‘전산에 입력이 안 된다’고 해 주택임대차 계약 신고도 ‘설미’로 되어 있다.

금융기관도 마찬가지다. 공동인증서를 제공하고 은행 간 다리 역할을 하는 금융결제원 시스템이 완성형 한글 입력 방식을 사용하면서, ‘믜’를 인식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 일부 은행에서조차 송금 과정에서 ‘믜’가 삭제되거나 이상한 글자로 변환되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는 금융결제원이 내년 말 차세대 전산시스템 구축을 완료한 뒤에나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취재가 시작되자 서울시는 청년월세지원 다음 사업분부터 방침을 일부 변경하겠다고 밝혔다. 올해 2차 지원은 9월에 마감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시스템이 개선되기 전까지 다음 신청부터 전산상에서 가입이 어려운 분들은 담당 공무원이 주민등록등본으로 본인 확인 후 관리자시스템을 통해 직접 입력하는 방법을 운용하기로 했다”며 “월세가 송금될 때 실명 일치가 안 되는 문제가 생길 수 있기에 대리수령 등 다른 처리 방법도 고민해 보겠다”고 했다. 박씨가 이용하는 통신사 엘지유플러스(LGU+)는 올해 안으로 한글 입력 방식을 바꾸는 작업을 완료하기로 했다.

은행 모바일 앱에서 ‘설믜’라고 적었을 때 입력할 수 없는 한글이라고 뜨거나 아예 믜가 표기되지 않는다.

곽진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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