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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12·12 반란군 막다 전사한 김오랑 중령 10번째 추모제 ‘북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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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경남 김해시 삼성초등학교 옆 소공원에서 열린 ‘참군인 김오랑 중령 추모제’에서 김 중령의 조카 김영진씨가 유족으로 대표해서 참석자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최상원 기자 “김...

12일 경남 김해시 삼성초등학교 옆 소공원에서 열린 ‘참군인 김오랑 중령 추모제’에서 김 중령의 조카 김영진씨가 유족으로 대표해서 참석자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최상원 기자

“김오랑 중령은 반역·반란군과 싸우다가 전사한 참군인입니다. 주민들이 돈을 모아 흉상을 세우고 10년째 추모행사를 열고 있는데, 정부와 지자체가 김 중령을 공식적으로 기리지는 못할망정 어찌 이마저도 모른 척 할 수 있는 것입니까?”

1979년 12월12일 전두환이 주도한 신군부 군사반란 때 정병주 육군특전사령관을 지키다가 반란군의 총탄을 맞고 숨진 고 김오랑 중령의 44주기 추모제가 그의 모교인 경남 김해시 삼성초등학교 옆 소공원에서 열렸다. 추모제 참석자들은 “영화 ‘서울의 봄’ 덕분에 김오랑 중령의 참군인 정신이 젊은이들에게 널리 알려져서 참으로 다행이다. 이제라도 정부 차원의 명예회복과 공식추모제가 마련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곳에 김 중령의 흉상이 세워진 건 2014년 6월6일이다. 김해 활천동 주민자치회와 청년회, 김해인물연구회가 모금과 일일 찻집 수익금 등으로 건립자금을 마련했다. 이후 해마다 12월12일 ‘참군인 김오랑 중령 추모제’를 열고 있다. 김 중령은 자녀 없이 숨졌고 부인 백영옥씨도 1991년 6월28일 사망했기 때문에 추모제에는 조카 김영진(66)씨가 유족 대표로 참석한다.

김 중령은 영화 ‘서울의 봄’에서 배우 정해인이 연기한 극 중 오진호 소령의 실제인물이다. 최근 영화 흥행에 힘입어 김오랑 중령의 ‘참군인 정신’이 새롭게 주목받았고, 이날 추모제에도 100여명의 주민과 정치인들이 참석해 소공원을 가득 메웠다.

고 김오랑 중령의 흉상. 김해 활천동 주민자치회 등 주민들이 성금을 모아서 지난 2014년 김 중령의 모교인 삼성초등학교 옆 소공원에 세웠다. 최상원 기자

김 중령의 친구 배병희씨는 “김해농고에 다닐 때 오랑이 등 친한 친구 7명이 평생 형제처럼 지내자며 칠형회를 만들었다. 올해로 우리 모두 80살이 됐는데, 먼저 간 친구를 생각하면 여전히 가슴 아프고 그립다”라고 말했다. 김 중령의 김해농고 1년 후배인 목청수씨는 “김오랑 중령은 육군대학도 수석으로 졸업했지만, 그것에 앞서 김해농고도 34회 수석으로 졸업했다. 또 김해농고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육군사관학교에 들어갔다. 김오랑 중령은 12·12 군사반란에서 전사하기 이전부터 우리에게 자랑스러운 선배였다”고 말했다.

2014년 ‘김오랑 중령 흉상 건립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한 유인석 활천동 주민자치회 고문은 “주민들이 돈을 모아서 흉상을 세우고 해마다 추도식을 열었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인 것은 처음이다. 영화 ‘서울의 봄’의 힘이지만, 눈물 나게 고맙다. 김오랑 선배님의 혼과 정의가 되살아나는 것을 느낀다”고 말했다.

김오랑 중령의 조카 영진씨는 “국립서울현충원의 김오랑 중령 무덤 비석에는 김 중령 이름만 새겨져 있고 ‘순직’이라고 되어 있는데, 내년 1월 중순 비석에 부부의 이름을 함께 새기고 ‘순직’도 ‘전사’로 고칠 예정이다. 이것은 집안 차원의 일이고, 정부 차원에서 육군사관학교와 육군특전사령부에 김오랑 중령의 동상을 세워서 후손과 후배들이 기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김오랑 중령의 명예를 진정으로 회복시키는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추모제에 참석한 민홍철·김정호 국회의원과 유승민·김정권 전 국회의원 등도 “김오랑 중령의 완전한 명예회복을 위해 힘쓰겠다”고 약속했다.

유승민 전 국회의원(오른쪽), 민홍철 국회의원 등이 ‘참군인 김오랑 중령 추모제’에 참석해서 유족 대표인 김 중령의 조카 김영진씨와 인사하고 있다. 최상원 기자

김오랑 중령은 1944년 경남 김해에서 태어나 고등학교까지 김해에서 다니고, 육군사관학교에 25기로 들어갔다. 그는 소령 때인 1979년 3월 정병주 육군특전사령관의 비서실장으로 발탁됐다. 같은 해 12월12일 밤 전두환 등 신군부 세력의 군사반란 때 정 사령관을 지키려다 반란군이 쏜 총탄 6발을 맞고 숨졌다. 당시 나이 35살이었다. 그는 1990년 중령으로 특진 추서됐고, 2014년 보국훈장을 받았다. 그의 사망원인은 지난해 12월7일에야 ‘순직’에서 ‘전사’로 바뀌었다.

최상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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