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육사(왼쪽) 시인과 김학철 작가. 한겨레 자료 사진
독립운동가 이육사·김학철 선생의 자녀들이 아버지의 삶을 회고하는 자리를 마련한다. 광주 교육문화연구회 솟터는 1일 오후 6시 광주 동구 금남로 전일빌딩 9층 대강당에서 ‘항일투사 후손 특강, 이육사·김학철 듣다’를 주제로 강연회를 연다.
이날 강연회엔 이육사(본명 이원록)시인의 딸 이옥비씨와 김학철 선생의 아들 김해양씨가 강연자로 나선다. 솟터 백금렬씨는 “지난 7월 중국 독립운동지 답사 때 조선의용대 김학철 선생의 아들 김해양 선생의 이야기를 들었다”며 “답사 참가자들이 힘을 모아 중국 연길에 사는 김씨와 안동에 거주하는 이옥비 여사(이육사 시인의 딸)를 모시고 강연회를 준비했다”고 밝혔다.
‘청포도’ ‘광야’ 등의 작품을 남긴 저항시인 이육사(1904~1944)는 항일 무장투쟁을 했던 인물이다. 1927년 23살 첫 옥살이때 수감번호가 ‘264’였다. 그는 1927년 ‘장진홍 의거’로 첫 옥살이를 하고 또 한차례 수감됐다가 1932년 독립운동단체 의열단의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 1기생으로 입교해 항일 독립운동을 했다. 1944년 1월16일 베이징 일본총영사관 감옥에서 마흔살도 채 안 된 나이로 눈을 감았다.
경북 안동에 사는 이옥비씨는 이날 특강에서 아버지 이육사 선생의 삶과 투쟁에 관해 이야기한다. “나에게는 행동의 연속만이 있을 따름이오. 행동은 말이 아니고 시를 생각한다는 것도 행동이 되는 까닭이오.”(이육사)
김학철 선생의 아들 김해양씨는 ‘조선의용군 마지막 분대장’이자 작가였던 아버지의 삶과 정신을 회고한다. 함남 원산 태생인 김학철(1916~2001) 선생은 서울 보성고보 재학 중 중국으로 가 의열단 단원으로 활약했다. 중국 황포군관학교를 졸업한 뒤 1938년 조선의용대 창립 대원으로 항일 무장투쟁에 나섰던 그는 1941년 중국 태항산 전투 중 총상을 입고 체포됐다. 10년형을 선고받고 일본 나카사키 교도소로 이송됐던 그는 일제가 요구했던 전향서를 거부해 총상 치료를 받지 못해 한쪽 다리를 절단했다.
2001년 중국 연길에서 운명하기 전까지 소설 ‘격정시대’ ‘태항산록’과 자서전인 ‘최후의 분대장’을 남겼다. “편안하게 살려거든 불의에 외면을 하라. 그러나 사람답게 살려거든 그에 도전을 하라.”(김학철) ,
2일 전남 순천 삼산도서관에서도 강좌를 진행한다. 무료이고 시민 누구나 참석할 수 있다. 강연장에선 이육사 총서(전 5권)와 김학철 전집(전 5권)을 살 수 있다. (010)2393-5423.
정대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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