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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기회의 나라” 기대 꺾인 자리…외국인 인재는 등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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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유학생들이 지난 11월9일 경기도 수원시 아주대에서 열린 ‘아주 인터내셔널 데이’ 행사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연합뉴스 멕시코 과달라하라대학에서 경영학을 공부하는 사만다...

외국인 유학생들이 지난 11월9일 경기도 수원시 아주대에서 열린 ‘아주 인터내셔널 데이’ 행사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연합뉴스

멕시코 과달라하라대학에서 경영학을 공부하는 사만다(20)는 최근 한신대 유학생 강제 출국 관련 기사를 읽고 큰 충격을 받았다. 백예린과 딘(DEAN), 피에이치원(PH-1) 등 한국 가수에 푹 빠져 있는 그는 교환학생으로 한국을 다녀온 뒤 대학을 마치고 한국 힙합 레이블에 취직할 계획이었다. 사만다는 “우즈베키스탄 학생들이 한국에서 공부하게 됐을 때 느꼈을 기대와 기쁨을 알기에 더 큰 슬픔을 느낀다”고 했다.

사만다에게 한국은 기회가 넘치고 다양성이 존중받는 나라였다. 사만다는 “한국은 교육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면에서도 역동적이고 기대감을 주는 나라”라며 “내가 한국 문화를 존중하는 만큼, 한국인들도 나의 문화를 존중하고 멕시코인·라틴계라는 이유로 차별하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했다”고 말했다. 그런 사만다에게 유학생 강제 출국은 “명백히 인종주의적이고 학교마저 돈을 이유로 학생을 짐짝 취급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한국에 오는 유학생 중에는 단순히 한국 드라마나 음악에 대한 관심을 넘어 한국에서의 삶을 꿈꾸는 이들도 많다. 베트남 출신으로 명지대 어학당을 다니는 응우옌티디에우(19)는 “어학 코스를 마치면 한국 대학에 진학하려고 한다. 졸업 뒤엔 한국에서 관광 가이드 일을 하며 베트남과 한국을 잇는 가교 구실을 하고 싶다”고 했다. 우즈베키스탄 동부의 소도시 아만주라에 사는 안나(21)는 내년 8월 인하대에 진학할 계획이다. 그는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뒤 한국 회사에 취직하고 싶다. 50살까지는 한국에서 살고 싶다”고 했다.

우즈베키스탄에 사는 안나가 자신이 공부하는 한국어 교재를 읽고 있다. 벽면에 방탄소년단 사진이 보인다. 본인 제공

이런 추세는 통계로도 확인할 수 있다. 통계청과 법무부가 지난 18일 발표한 ‘2023년 이민자 체류 실태 및 고용조사 결과’를 보면, 유학생 10명 중 6명 이상(63.0%)이 졸업 뒤에도 한국에 계속 체류하고 싶다고 했다. 3년 전보다 8.3%포인트 증가한 수치다. 상주 외국인도 젊은층을 중심으로 늘어났다. 특히 청년층(15~29살)은 올해 41만6천명으로 지난해(34만7천명)보다 7만명 정도 늘었다. 단기간 일자리가 아니라 한국에서의 미래를 그리며 오는 이들이 많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제도와 문화는 이런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유학생 취업 직종 제한과 까다로운 비자 연장 등도 문제지만, 유학생을 대상으로 한 교육의 질도 전반적으로 낮다. 대학에서 호텔경영학을 전공하는 우즈베키스탄 출신 무카마둘루는 “영어 수업을 약속해놓고 실제로는 한국어 수업을 듣게 하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했다. 결국 유학생들은 따로 전공 공부를 해야 하고, 이로 인해 한국어를 공부할 시간이 부족해지는 악순환을 겪게 된다.

국내 외국인 유학생의 90%에 육박하는 아시아 출신 학생들은 한국 대학의 높은 학비와 고물가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다. 매달 7만~8만원 정도 내는 건강보험료가 “심각한 부담”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부지기수다. 그러나 이들에겐 ‘주경야독’이 허용되지 않는다. 정부가 지난 9월부터 유학생은 저녁 6시 이후 수업을 듣지 못하게 했기 때문이다. 아르바이트 시간도 주당 최대 30시간으로 제한된다. 중국에서 온 대학원생 선후이링(27)은 “한국 정부가 유학생들의 경제적 어려움을 알아줬으면 한다”고 했다.

중국인 유학생 선후이링이 2022년 전주대 졸업식에서 학사모를 쓰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본인 제공

외국인 유학생들이 갖는 기대와 현실의 괴리 속에 한국이 이민 선진국으로 발돋움할 ‘골든타임’을 놓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크다. 특히 정부가 “우수인재 유치”를 외치면서 교육을 통해 인재로 키울 수 있는 유학생 지원에는 소극적이라는 지적이 많다. 고용허가제 대상 국가 확대와 인력 규모 증가 등 노동자 유치에 힘을 쏟으면서 ‘값싼 노동력 유치’에만 관심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이민청 설립이라는 청사진을 제시했지만, 실제로는 이민 정책이 아닌 인력 수입 정책에만 매진하고 있다”(김도균 제주한라대 특임교수)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더 큰 문제는 정부의 이런 정책 기조를 외국인 학생들도 피부로 절감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자유와 기회를 찾아 한국 유학을 꿈꾸던 외국인들 처지에선 자신들을 대학의 재정 위기와 지역의 저임금 일자리를 메워줄 수단으로만 취급하는 한국은 시간이 갈수록 유학 선택지로서의 매력이 반감될 수밖에 없다. 한국 유학을 고민하다 마음을 접은 프랑스인 클레어(25)는 “미디어에서 접하는 한국의 살인적 노동강도를 감당할 자신이 없다. 한국인들은 외국인이 오면 일자리 경쟁이 심해질 것이라고 우려하던데, 나로선 착취에 가까운 한국의 노동 조건이야말로 진짜 문제가 아닌지 묻고 싶다”고 했다.

이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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