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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과 싸웠던 윤 대통령, 이제 시대적 과제와 싸울까

Summary

윤석열 대통령이 10월31일 국회 시정연설에 앞서 열린 환담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뒤 저는 “민생 강조 ‘대통령...

윤석열 대통령이 10월31일 국회 시정연설에 앞서 열린 환담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뒤 저는 “민생 강조 ‘대통령이 달라졌어요’…행동으로 보여줄 때”라는 제목의 정치 막전막후를 썼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달라진 모습을 보이는 것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한 것입니다.

기사에 달린 댓글 중에 가장 많은 내용은 “사람은 쉽사리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후보 때도 지금도 그때그때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서 말할 뿐이지 그게 변화하겠다는 뜻은 아니다”라는 글이 많은 공감을 받았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사람은 본래 그런 존재입니다. 윤 대통령뿐만 아니라 누구든 위기에 처하면 그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단 달라진 모습을 보이려고 합니다. 중요한 것은 바로 그게 변화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정치인의 변화를 추동하기 위해 유권자가 어떤 태도를 취하는 것이 바람직할까요? “그런다고 당신이 달라질 리 없어. 가식 떨지 말고 그냥 옛날처럼 살아”라고 하면 될까요? 그럴 리가요.

다소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그래 잘하고 있어. 그렇게 달라지는 것이 옳은 거야”라고 칭찬해줘야 합니다. 그래야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제스처’를 ‘진정한 변화’로 이끌 수 있습니다.

저는 맹자의 성선설(性善說)이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윤 대통령도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애국심과 진정성을 가진 정치인이라고 믿습니다.

“지난 정부 언급 싹 들어내라”

윤 대통령이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뒤에 시작한 반성과 통합, 그리고 탈이념 민생 행보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10월31일 정기국회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윤 대통령은 1년 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을 보였습니다. 연설에 앞서 국회의장실에서 윤 대통령과 여야 대표의 환담이 있었습니다. 윤 대통령은 이재명 대표에게 먼저 “오셨어요? 오랜만입니다”라고 인사했습니다. 이재명 대표는 별말 없이 미소로 화답했습니다.

환담을 마치고 본회의장에 들어가면서 윤 대통령은 가장 먼저 홍익표 원내대표, 이재명 대표와 악수했습니다. 그리고 통로에 앉은 민주당 의원들에게 차례차례 악수를 청했습니다. 민주당 의원들 가운데 일부는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자리에 앉은 채 악수하거나 윤 대통령을 아예 외면한 의원도 있었습니다. 단상에 선 윤 대통령은 연설을 이렇게 시작했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민생과 국가 발전을 위해 애쓰시는 김진표 국회의장님, 김영주, 정우택 부의장님, 또 함께해주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님, 이정미 정의당 대표님,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님,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표님,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님, 그리고 여야 의원 여러분.”

여당보다 야당 대표와 원내대표를 앞세운 것입니다. 지난해 10월25일 시정연설 때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김진표 국회의장님과 의원 여러분”이라고 했던 것과 대조적입니다.

연설 내용은 기대 이하였습니다. 긴축 재정을 유지하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그러나 전임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없었습니다.

대통령실 참모들이 준비한 연설문 초안에는 ‘전 정부의 방만 재정과 가계부채 방치, 어려움을 겪은 한-일 관계’ 등에 대한 지적이 담겼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정부 언급은 싹 들어내라”고 지시했고 직접 내용도 고쳤다고 합니다. 지난해 시정연설에서는 “그동안 정치적 목적이 앞선 방만한 재정 운용이 결국 재정수지 적자를 빠르게 확대시켰고, 나랏빚은 지디피의 절반 수준인 1천조원을 이미 넘어섰다”고 문재인 정부를 비판했습니다.

윤 대통령은 연설을 마치고 퇴장할 때도 의원들과 악수했습니다. 본회의장에서 나가면서 마지막으로 이재명 대표와 다시 악수했습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라며 의석을 향해 허리를 숙여 인사했습니다.

윤 대통령은 이어서 국회 17개 상임위원회 위원장들과 간담회를 했습니다. 이도운 대변인은 간담회 내용을 서면 브리핑으로 이렇게 전했습니다.

“대통령은 간담회를 시작하며 ‘우리 상임위원장님들을 다 같이 뵙는 건 오늘이 처음인 것 같다’며, ‘오늘 정부의 국정운영, 국회의 의견 등 많은 말씀을 잘 경청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상임위원장들은 대통령에게 소관 분야의 현안에 대해 설명하고, 건의사항을 전달했습니다. 대통령은 상임위원장들의 건의를 잘 경청하고 일부 건의 등에 대해 즉석에서 답변하기도 했습니다.”

“대통령은 간담회를 마치며, 오늘 상임위원장들을 다 뵙고 좋은 말씀을 경청했다며 이런 자리를 만들어준 국회의장과 상임위원장들에게 감사를 표했습니다. 이어 대통령은 위원장님들의 소중한 말씀을 참모들이 다 메모했을 뿐만 아니라 저도 아직은 기억력이 좀 있기 때문에 하나도 잊지 않고 머릿속에 담아 두었다가 국정운영과 향후 정부 정책을 입안해 나가는 데 여러분의 소중한 의견을 잘 반영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어떻습니까? 대통령실 자료인데 ‘경청’이라는 단어를 세차례 사용하고 있습니다. 참모들과의 회의나 국무회의에서 많은 말을 쏟아내던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1시간 회의하면 59분 동안 말을 한다고 해서 ‘59분’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습니다. 이제 그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떼어낼 수 있을까요?

“의회와 소통하겠다”고 했던

윤 대통령의 변화는 대선 직후와 취임 초기로 ‘복귀’하려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잘 기억하지 못하실 수도 있지만, 윤 대통령은 대통령 선거 다음 날 당선 인사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철 지난 이념을 멀리하고, 국민의 상식에 기반하여 국정을 운영하겠습니다.”

“국민을 위한 정치, 민생을 살리고, 국익을 우선하는 정치는 대통령과 여당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의회와 소통하고 야당과 협치하겠습니다.”

어떻습니까? 감동적이지요? 그런가 하면 대통령 취임 6일 뒤인 2022년 5월16일 추경안 시정연설에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진정한 자유민주주의는 바로 의회주의라는 신념을 저는 가지고 있습니다. 의회주의는 국정운영의 중심이 의회라는 것입니다. 저는 법률안, 예산안뿐 아니라 국정의 주요 사안에 관해 의회 지도자와 의원 여러분과 긴밀히 논의하겠습니다. 그리고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윤 대통령이 이런 말을 했다는 것이 믿어지십니까? 이랬던 윤 대통령이 야당에 대해 악감정을 갖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2022년 10월25일 정기국회 시정연설을 할 때 민주당 의원들이 본회의장에 불참했던 일 같습니다. 2023년 1월2일치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이런 문답이 있습니다.

―대통령은 야당과도 협력하고 대화해야 한다. 그러나 야당과의 관계가 좋지 않다.

“잘 지내야 하는데 서로 간에 생각이 너무 다르다. 대화가 참 어렵다. 지난번에 제가 국회 시정연설을 할 때 들어오지도 않았다. 경찰국 같은 예산안을 받아주면 야당에서 원하는 지역상품권 예산을 많이 늘려주겠다고 했는데도 끝까지 문제 삼았다. 일단 여당이 야당과 자주 대화를 하도록 하고 국회 의장단과의 소통을 통해 국회 문제를 풀어 나가려고 한다.”

자신이 야당을 직접 만날 생각은 없다는 얘깁니다. 이후 여야 관계는 악화 일로를 걸었습니다. 검찰은 2023년 2월과 9월 두차례에 걸쳐 이재명 대표 구속영장을 청구했습니다.

지나간 일이야 어쨌든 강서구청장 선거 패배를 계기로 윤 대통령이 국회와 야당에 통합과 포용의 자세를 취하기 시작한 것은 매우 바람직합니다.

이준석 “대통령 변화 가능성 부정적”

언론의 평가도 호의적입니다. 한겨레는 11월2일치 신문에 “윤 대통령, 이제 야당 대표 만나고 기자회견도 해야”라는 사설을 실었습니다.

중앙일보도 같은 날 “윤 대통령의 카페 타운홀 미팅…이런 소통 늘려가야”라는 사설을 실었습니다. 전날 윤 대통령이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소상공인·주부 등과 직접 대화한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입니다. 중앙일보는 “윤 대통령이 초심을 강조한 마당에 1년 넘게 중단된 정례 기자회견부터 재개하는 게 옳다”고 제안했습니다.

윤 대통령의 최근 변화에 대해 가장 특이한 평가는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한테서 나왔습니다. 경향신문 11월1일치에 이 전 대표가 쓴 ‘두려움에 사로잡힌 대통령’이라는 제목의 시론이 실렸습니다.

“나는 윤 대통령의 변화 가능성을 부정적으로 본다. 지금의 통치 스타일 문제가 기술적 미숙에 의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통령과 당대표의 관계로 지낸 기간을 반추해보면 대통령을 관통하는 맥이 있다. 대통령은 두려움에 지배당하고 있다. 과장된 어법, 끝없이 적을 만들어내는 모습은 자신감이나 자긍심의 발로일 수 없고, 그저 내재된 여러 두려움에 대해 반사작용을 하고 있는 과정이다.”

매우 독특하고도 살벌한 진단입니다. 그러나 이 전 대표도 처방은 합리적으로 내놓았습니다.

“두려움에 공산전체주의와 같은 허수아비와 싸우지 말고, 다시 공정과 상식이란 구호를 되새기며 시대적 과제와 싸워야 한다. 이준석 대신 경제적 불평등과, 홍준표 대신 저출산과, 유승민 대신 지방소멸과 싸우면 된다. 그러면 국민은 윤석열 정부의 성공을 바라기 때문에 두려움을 씻을 만큼의 지지로 화답할 것이다.”

어떻습니까? 저는 이 전 대표의 진단이 옳은지는 잘 모르겠지만, 처방에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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