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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빈 예루살렘의 ‘크리스마스’…이, 성탄절 전야 앞두고 가자지구 맹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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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현지시각)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베들레헴의 구유 광장에서 한 여성과 어린이가 전쟁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촛불을 켜고 있다. AP 연합뉴스 성탄 전야를 하루 앞둔 23일(현...

23일(현지시각)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베들레헴의 구유 광장에서 한 여성과 어린이가 전쟁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촛불을 켜고 있다. AP 연합뉴스

성탄 전야를 하루 앞둔 23일(현지시각)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베들레헴의 거리엔 쓸쓸함이 감돌았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 등 외신들은 2023년 전 예수가 탄생했던 베들레헴의 ‘예수탄생 교회’마저 발 디딜 틈조차 없던 지난해와 달리 올해엔 텅 빈 복도에 덩그러니 촛불들만 불을 밝히고 있다고 전했다. 교회 옆의 ‘물구유 광장’에선 해마다 대형 트리가 빛났지만, 올해는 이렇다 할 크리스마스 장식 하나 없이 을씨년스런 모습이었다. 민간 구호단체인 예루살렘 카리타스의 안톤 아스파르 사무총장은 신문에 “크리스마스 때면 부모님, 자녀, 손주들과 함께 모였는데 올해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며 “성스러운 공간에서 크리스마스 정신이 사라지고 있다는 게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이스라엘방위군(IDF)은 성탄 전야를 하루 앞둔 이날에도 가자지구를 향한 공격을 거듭했다. 다니엘 하가리 이스라엘군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지난 며칠간의 작전으로 많은 하마스 무장대원을 제거했고, 테러 활동에 쓰인 많은 건물과 무기도 파괴했다”며 “13톤의 폭발물을 사용해 30여개 터널을 동시에 폭파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그 과정에서 다시 한번 많은 사람이 숨졌다. 팔레스타인 중앙통계청(PCBS)은 개전 이후 23일까지 가자지구에서 숨진 이들은 사흘 만에 500여명 늘어난 2만561명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유엔개발계획(UNDP)에서 30여년 동안 팔레스타인 국민 지원 프로그램에 힘썼던 직원 이삼 무그라비와 아내, 자녀 5명을 포함한 대가족 70여명이 한꺼번에 숨진 사실이 알려지며 슬픔을 더했다. 팔레스타인은 땅이 좁고 경제 사정이 어려워 여러 형제가 몇대에 걸쳐 함께 사는 경우가 흔하다. 유엔개발계획은 이날 성명을 내어 “유엔과 가자지구 민간인은 공격 대상이 아니고, 이 전쟁은 끝나야 한다”며 애도를 표했다.

이에 견줘 민간인 피해를 줄이려는 국제사회의 노력은 쳇바퀴를 돌았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는 앞선 22일 가자전쟁과 관련한 회의를 열어 ‘즉각적인 적대행위 중단’(urgent suspension of hostilities)이란 문구가 빠진 결의안(2720호)을 채택했다. 애초 아랍에미리트가 작성한 결의안에는 이 내용이 담겨 있었지만, 미국이 이 문구가 들어가면 거부권을 행사하겠다는 뜻을 꺾지 않으면서 진통을 겪었다. 결국, 결의안은 18일 제출 이후 19~21일 사흘 동안이나 문구 수정을 거친 끝에 가자지구 상황에 대한 ‘중대한 우려’와 함께 △대규모 인도주의 지원의 허용·촉진·지원 △민간인 보호 △무조건적인 인질 석방 △구호물품 감시와 배포를 담당할 유엔 조정관 임명 등의 요구만 담겼다. 미국과 러시아가 이 안에 대해 각각 기권한 가운데 나머지 이사국들의 찬성으로 통과됐다. 미국이 가자지구에서 즉각 휴전이 이뤄져야 한다는 국제사회의 여론에 다시 한번 홀로 맞서며 이스라엘의 편을 든 셈이다.

국경없는 의사회는 “최종 결의안은 가자지구 민간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거의 무의미할 정도로 수위가 낮아졌다”며 “미국 정부가 가자지구에 대해 안보리가 하려는 효과적 조처를 차단하고 있다”고 강력히 비판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도 안보리 결의안에 반발했다. 이스라엘은 “결의안이 불필요한 것이며, 유엔이 분쟁에 긍정적 역할을 할 수 없다는 걸 증명한 것”이라고 했고, 하마스는 “미국이 결의안의 본질을 빼고 내용을 약화시키기 위해 노력한 결과”라고 비난했다.

결의안이 통과된 다음날인 23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전화로 의견을 나눴다. 백악관은 이 통화 사실을 알리는 자료를 내어 바이든 대통령이 “민간인들을 보호해야 할 중대한 필요성을 강조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스라엘 총리실은 별도 자료에서 네타냐후 총리가 “전쟁의 목적을 달성할 때까지 이스라엘이 전쟁을 계속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고 전했다.

이스라엘을 일방적으로 편드는 바이든 대통령 태도는 내년 11월 치러지는 대선에 불리하게 작용할 전망이다. 뉴욕타임스가 21일 공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바이든 대통령이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 제대로 대처하고 있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응답자 57%가 부정적으로 응답했다. 누가 이 문제 해결에 더 믿음직스럽냐는 질문에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꼽은 이들(46%)이 바이든 대통령(38%)을 앞섰다. 뉴욕타임스는 “전통적으로 민주당 지지율이 높은 18~29살 유권자들이 대거 이탈했다”며 “이들 중 4분의 3이 가자지구 분쟁에 대한 바이든의 대처 방식에 반대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홍석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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