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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시기 현실주의 국제질서 주조…헨리 키신저 타계, 향년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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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현지시각) 타계한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이 생전인 지난 2011년 미국 워싱턴 국회의사당에서 연설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 베트남전쟁 종전과 미-중 수교, 미-소 군비...

29일(현지시각) 타계한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이 생전인 지난 2011년 미국 워싱턴 국회의사당에서 연설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

베트남전쟁 종전과 미-중 수교, 미-소 군비 축소 등을 주도했던 미국의 전설적인 외교관 헨리 키신저(1923∼2023) 전 미국 국무장관이 별세했다. 향년 100.

로이터 통신 등 외신들은 29일(현지시각) 키신저 전 국무장관이 미국 코네티컷 자택에서 타계했다고 보도했다. 독일 태생의 미국 외교관인 키신저는 미국 닉슨-포드 행정부에서 국가안보 보좌관과 국무장관을 지낸 미국의 대표적인 국제전략가다. 이념보다 현실을 중시하는 레알폴리티크(Realpolitik, 현실정치)의 신봉자로서 통상적 외교 경로를 따르지 않는 ‘키신저 외교’를 펼친 인물로 평가 받는다. 베트남전 종료 등을 이끈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평화상을 받았지만, 막대한 희생을 낳은 전쟁을 주도한 국가의 외교 책임자가 이 상을 받으면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

1923년 5월27일 독일 바이에른에서 태어난 그는 정통파 유대인으로 1938년 가족과 함께 뉴욕으로 이주한 뒤, 1943년 미국으로 귀화했다. 2차 대전에 참전해 통역으로 정보 작전에 참여하기도 했다. 하버드대 교수를 거쳐 1969년 리처드 닉슨 미국 행정부에 국가 안보 보좌관으로 합류했고, 제럴드 포드 행정부에서도 활약했다. 국무장관 등으로 활약했다. 대표적인 ‘중국통’으로 꼽히며 “중국의 문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키신저는 베트남 전쟁 종전을 위한 평화회담, 1972년 닉슨 미국 대통령과 마오쩌둥 중국 주석의 회담 등을 통한 중국의 외교 개방, 미국과 소련의 군비 축소 등 냉전시대 동서간 데탕트(긴장완화),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 관계 확대 등 1970년대의 굵직굵직한 사건에 핵심적인 관여를 했다. 이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1973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지만, 베트남 학살에 책임있는 미국 외교 책임자에게 이같은 상을 줬다는 비판이 일기도 했다. 현역 시절 “미국에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없다. 오직 국익만이 존재할 뿐이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고령의 나이였던 그는 올해에도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과 관련해 영국 이코노미스트와 인터뷰에서 “세계가 어느 쪽도 정치적 양보의 여지가 거의 없기 때문에 균형에 대한 어떤 식의 교란도 재앙적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 전형적으로 1차 세계대전 직전과 비슷한 상황에 있다”고 견해를 밝히는 등 왕성한 활동을 보여왔다.

98살이던 지난해에도 ‘리더십: 현대사를 만든 6인의 세계 전략 연구’를 펴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 “우크라이나가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에 가입한다면, 러시아와 유럽 사이 안보 경계선은 모스크바로부터 고작 480㎞ 떨어진 곳에 자리하게 된다. 프랑스와 독일이 잇달아 두 세기 동안 러시아를 점령하려 했을 때 이 나라를 지켜준 역사적 완충지대가 사실상 사라지는 것”이라는 점 등을 지적하며 국제 현실 문제에 천착해 왔다. 키신저는 올해 7월에도 중국 베이징을 방문해 시진핑 국가주석과도 만났다.

홍석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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