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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하마스 전쟁 한달…신뢰 잃은 미·중, 진퇴양난 사우디·이란

Summary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와 이스라엘 간 교전이 격화하는 가운데 지난 2일(현지시각) 가자지구 국경 지역에 이스라엘군의 공습이 쏟아지고 있다. AFP 연합뉴스 지난달 7일(현지시...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와 이스라엘 간 교전이 격화하는 가운데 지난 2일(현지시각) 가자지구 국경 지역에 이스라엘군의 공습이 쏟아지고 있다. AFP 연합뉴스

지난달 7일(현지시각) 한가로운 토요일 아침,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통치하는 무장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와의 경계선에 설치한 길이 65㎞, 높이 6m에 이르는 철벽 같은 스마트 장벽을 돌파했다. 하마스 대원들은 이스라엘에서 1400명 이상을 살해하고 200명 넘는 인질을 가자지구로 끌고 갔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날 오전 “적들이 본 적 없는 대가를 치를 것”이라며 전쟁에 돌입했다.

전쟁 한달이 흐른 6일 가자지구는 태풍 속에 섰다.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 최대 도시인 가자시티를 향한 전면전 돌입을 앞둔 가운데, 길이 41㎞, 너비 10㎞에 불과한 가자지구에서 시작된 소용돌이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넘어 전세계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흔들리는 중동의 두 맹주

중동 정세는 격랑으로 빠져들고 있다. 이슬람 수니파 맹주인 사우디아라비아는 이번 전쟁의 방아쇠를 당긴 ‘원인 제공자’로 지목되고 있다. 로이터 통신은 “(하마스의 첫 공격 시점이) 사우디가 미국과 안보·방위 협정을 맺는 대가로 이스라엘과 관계를 정상화하려 했던 움직임과 일치한다”며 “하마스의 공격은 (미국·사우디·이스라엘의) 새 안보 연대 구축 노력을 겨냥한 것”이라고 짚었다. 사우디는 최근 미국의 중재로 이스라엘과 수교하고 미국은 사우디와 안보 협정을 맺는 협상을 진행해왔다.

사우디를 포함한 아랍 국가들 상당수는 이스라엘이 1948년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건국된 뒤 이스라엘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아왔으나, 2020년 아랍에미리트(UAE)가 미국의 중재로 걸프 지역 국가 중 처음으로 이스라엘과 수교하면서 변화 움직임이 커졌다. 수니파 중동 국가들이 시아파 맹주인 이란과의 대립 때문에 숙적 이스라엘과 손을 잡은 것인데, 최근엔 수니파 맹주인 사우디까지 이스라엘과 수교하려 한 것이다.

이란도 난감한 상황이다. 하마스와 레바논 시아파 무장정파 헤즈볼라 등을 지원해온 이란은 지난달 7일 하마스의 공격을 “이 지역의 역사적 전환점이었다”고 높게 평가했지만 속내는 복잡하다. 지난해 9월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도덕경찰에게 끌려간 뒤 의문사한 ‘마흐사 아미니 사건’과 경제난이 겹쳐 1년 넘게 거센 반정부 시위가 이어질 정도로 국내적 상황이 좋지 않아, 하마스 지원에 막대한 돈을 쓰는 데 부담이 크다.

반면,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침공에 눈을 감으면 입지가 크게 흔들리게 된다. 미국 외교·안보 전문지 포린폴리시는 “이란의 최고지도자들은 팔레스타인 대의에 대한 전폭적 지지와 연대를 드러내면서도 전쟁에 직접 개입은 빠르게 부인했다”며 “(전쟁 개입에 대한)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며 자국 이익과 안보에 해를 끼칠 만한 충돌은 피하겠다는 뜻”이라고 풀이했다.

중동에서 길 잃은 ‘G2’

미국과 중국도 곤혹스러운 처지다. 애초 미국은 사우디-이스라엘 관계 정상화가 성사될 경우 중동에 대한 부담을 덜어 ‘아시아 중심 정책’에 더 힘을 쏟을 수 있기를 기대했지만, 지금 미국은 ‘팔레스타인 고통’에 눈감은 채 중동 협상을 벌이다 분쟁의 단초를 줬다고 비판받고 있다.

이스라엘의 민간인 살상에 눈감는다는 지적도 뼈아프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지난달 18일 순회 의장국 브라질이 제출한 ‘인도주의적 전투 중단’ 결의안을 표결에 부쳐 이사국 15곳 중 12곳의 찬성을 얻었으나, 상임이사국인 미국이 ‘거부권’을 행사해 결의안 채택이 불발됐다. 한 아프리카 외교관은 로이터 통신에 “거부권 행사로 미국은 (국제사회의) 신뢰를 잃었다”고 꼬집었다. 미국은 휴전은 하마스에 이득이 될 뿐이라며 민간인 구호를 위한 일시적·국지적 전투 중단을 뜻하는 “인도주의적 전투 중단”을 주장하고 있지만, 이스라엘은 이마저도 거부하고 있다.

미국과 경쟁하는 중국은 이번 전쟁이 중동에서 입지를 넓힐 ‘기회’처럼 보였으나, 아직은 영향력이 부족함을 절감했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장관)은 사태 초기 “모든 국가에는 자위권이 있다”며 이스라엘 쪽에 서는 듯했다가 다른 자리에서는 “(이스라엘이) 자위권의 범위를 넘어섰다”고 말해 이스라엘과 이슬람 국가 양쪽 모두에서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았다.

독일 싱크탱크 유럽외교협의회(ECFR)는 지난 3일 “중국은 이번 전쟁에서 이스라엘에 대한 서방의 무조건적인 지원과 차별화해 호감을 얻을 기회를 포착했지만, 오히려 중동 지역에서 중국의 정치적 영향력 부족을 드러냈다”고 지적했다.

중동 분쟁에 희비 갈린 우크라-러시아

전세계의 관심이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 쏠리자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잊히고 있다고 우려한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지난 4일 수도 키이우를 방문한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과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말한 뒤 이는 “러시아의 목표 중 하나”라고 우려했다.

실제로 지난 2일 미국 하원은 백악관이 제출한 1050억달러 규모 ‘패키지 안보 예산안’에서 우크라이나 예산(614억달러)은 빼고 이스라엘 예산(143억달러)만 통과시켰다. 미국 인터넷 매체 액시오스는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보내기로 했던 155㎜ 포탄 수만발이 이스라엘로 보내졌다고 전했다. 러시아에는 뜻밖의 호재다.

이번 전쟁을 계기로 서방 주요국들의 ‘글로벌 사우스’(북반구 저위도나 남반구의 아시아·아프리카·남미·오세아니아 신흥국)에 대한 태도를 꼬집는 목소리도 나온다. 타임은 주요 7개국(G7) 한 외교관 말을 따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 질서가 러시아와 중국의 ‘힘이 옳다’는 방식보다 바람직하지만, 이 역시 국제법을 기반으로 일관되게 적용되어야 한다”고 꼬집었다.

홍석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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