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Stories:
국제

영국 내무장관, 노숙인 텐트 걷어내면서 “노숙은 라이프스타일”

Summary

지난 2019년 영국 런던 거리에 노숙인이 텐트를 치고 자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영국 정부가 노숙인들이 길 위에 텐트 치는 행위를 법으로 금지하기로 했다. 노숙인이 늘며 시민 ...

지난 2019년 영국 런던 거리에 노숙인이 텐트를 치고 자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영국 정부가 노숙인들이 길 위에 텐트 치는 행위를 법으로 금지하기로 했다. 노숙인이 늘며 시민 불편이 커진 데다가 노숙인 텐트촌이 범죄 온상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공식 정책 발표를 앞두고 영국 내무장관이 “노숙은 라이프스타일”이라는 취지의 ‘실언성 발언’까지 더하며 거센 논란이 일고 있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는 4일(현지시각) 영국 정부가 잉글랜드와 웨일스 도심 지역에서 노숙인들의 텐트 사용을 불법화하는 형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영국 정부는 오는 7일 있을 영국 국왕의 대국민 연설(King’s speech)에서 이 같은 내용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파이낸셜타임스는 영국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전했다.

영국 정부의 결정은 최근 도심에서 노숙인들이 텐트로 상점 입구를 가로막는가 하면 행인을 상대로 구걸 행위를 하면서 관련 민원이 늘어난 데 따른 것이다. 파이낸셜타임스가 인용한 정부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면 노숙인 지원 단체가 무상으로 노숙인들에게 텐트를 제공하는 행위 역시 금지되며, 이를 위반하면 벌금형에 처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이 이뤄질 전망이다. 다만 노숙인 텐트를 철거할 때 보호 시설로 입소할 수 있다는 안내도 이뤄지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수엘라 브레이버만 영국 내무장관이 10일(현지시각) 총리 관저인 영국 런던 다우닝 10번가에서 나오는 모습. 로이터 연합뉴스
7일 발표될 이른바 ‘노숙인 텐트 사용 금지법’은 1824년 제정된 ‘부랑자 단속법’을 대체하기 위한 것이다. 영국은 1815년 나폴레옹 전쟁 직후 갈 곳 없이 실업자 신세가 된 장병들과 산업혁명 여파로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이 대거 거리에 나앉게 되자 이 법을 만들어 노숙과 구걸 행위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노숙인들을 교정 시설에 구금해왔다. 찰스 디킨스가 ‘올리버 트위스트’를 출간한 19세기 초반 당시 시대적 배경에서 태어난 이 법은 200년 가까이 살아남았다. 영국 정부는 이 법의 폐기를 검토한 정책 보고서에서 “누구도 살 곳이 없다는 이유로 범죄자 취급 받아선 안 된다”며 “영국 정부는 이 법이 노숙 문제를 해결한다는 정책 목표에 부합하지 않고 시대에 뒤처졌다고 판단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이 법을 폐기하는 내용을 담은 법률(‘경찰·범죄·양형법’)이 시행됐지만, 내무부에 의해 해당 조항의 시행은 대체 입법이 이뤄진 후로 미뤄진 상태다.

하지만 노숙인 지원 단체를 중심으로 이런 법 개정의 실효성을 두고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영국의 자선 단체들은 높은 임대료와 생활비를 감당하지 못하는 이들이 늘었지만 공공 임대 주택이 턱없이 부족해 노숙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영국의 노숙인 자선 단체 ‘셸터’ 조사를 보면 지난해 잉글랜드에서만 27만명이 노숙 생활을 하는 거로 집계됐다.

여기다 이번 법 개정을 추진한 인도계 수엘라 브레이버만 영국 내무장관의 발언도 논란을 키웠다. 대국민 연설을 앞두고 법안 내용이 앞서 공개되자 브레이버만 장관은 자신의 엑스(X·옛 트위터)에서 “영국 국민도 연민의 감정을 느낀다. 진짜 노숙인들은 언제든 지원할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라이프스타일의 일환으로 길에서 살기를 선택한 이들이 우리의 거리를 점령하도록 둘 수는 없다. 그리고 대개 이들은 외국인이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지자체와 협력해 집 없는 이들을 위한 지원책을 마련하고 있다. 영국에 사는 그 누구도 길 위 텐트에서 살아선 안 된다”며 “지금 개입하지 않는다면 영국도 나약한 정책의 결과 범죄 폭증과 마약 대란에 시달리고 있는 미국의 샌프란시스코나 로스앤젤레스의 전철을 밟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브레이버만의 발언은 금세 비난 여론에 휩싸였다. 엑스에는 “길에 텐트 치고 사는 사람들이 대체 어떤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해서 그렇게 지낸다고 생각하느냐” “사람들이 어쩌다 노숙인이 되는지 전혀 모르는 것 같다. 당신은 역겹다” 등의 비판이 잇따랐다.

지난해 12월 노숙인 쉼터를 찾아 배식 봉사를 하고 있는 리시 수낵 영국 총리. 유튜브 갈무리

한편 앞서 인도계 영국 총리인 리시 수낵도 지난해 12월 노숙인 쉼터에 배식 봉사를 갔다가 노숙인에게 “직장이 있느냐”며 노숙인의 현실에 대한 무지를 드러내는 질문을 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은 바 있다. 당시 수낵 총리는 한 남성 노숙인에게 “지금 직장이 있느냐”고 물었고, 노숙인은 “나는 노숙인이다”라고 답했다. 지난해 10월 보수당 대표로 총리에 오른 수낵은 취임 이후 불법 이민자를 추방하는 법안을 추진하는가 하면, 영국내 내연기관차 판매 금지를 5년 미루는 등 실용 보수 노선을 취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남지현 기자

면책 조항: 이 글의 저작권은 원저작자에게 있습니다. 이 기사의 재게시 목적은 정보 전달에 있으며, 어떠한 투자 조언도 포함되지 않습니다. 만약 침해 행위가 있을 경우, 즉시 연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수정 또는 삭제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