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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만원에 판 가면 알고 보니 60억원? “돌려줘” 소송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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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3월 프랑스의 한 경매에서 420만유로(약 59억8000만원)에 낙찰된 나무 가면. 19세기 중앙아프리카 국가 가봉의 팡족이 만든 것으로 전 세계에 12개가량 밖에 남지...

2022년 3월 프랑스의 한 경매에서 420만유로(약 59억8000만원)에 낙찰된 나무 가면. 19세기 중앙아프리카 국가 가봉의 팡족이 만든 것으로 전 세계에 12개가량 밖에 남지 않은 매우 희귀하면서도 가치가 높은 문화재다. 가봉은 1839년부터 프랑스의 식민 지배를 받다가 1960년 독립했는데 식민지 시대 프랑스로 넘어온 것으로 추정된다. AFP 연합뉴스

“가면이 매우 희귀한 물건이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결코 헐값에 넘겼을 리가 없습니다. 60억원에 달하는 경매 수익은 정당하게 부부가 받아야 합니다.”

“무슨 소리입니까. 가면은 식민지 시대 때 약탈당한 것입니다. 부부도, 중고품 상인도 이 가면의 적법한 소유자가 아닙니다. 가면은 가봉으로 반환돼야 합니다.”

31일(현지시각) 프랑스의 한 법정에서는 고릴라를 연상케 하는 길쭉한 가면을 둘러싼 뜨거운 논쟁이 벌어졌다. 이야기는 202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프랑스의 80대 부부는 별장을 팔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려면 다락방에 쌓여있던 골동품들부터 치워야 했는데 이 중에는 먼지를 뒤집어쓴 오래된 나무 가면도 포함돼 있었다. 과거 식민지 시대 아프리카에서 총독을 지낸 남편의 할아버지가 소유했던 것으로, 부부가 중고품 상인에게 이 가면을 팔고 받은 돈은 150유로, 약 21만원이었다.

6개월 뒤 부부는 신문을 읽다가 거의 의자에서 떨어질 정도로 크게 놀랐다고 한다. 헐값에 팔아넘긴 가면이 경매에 부쳐졌으며 19세기 중앙아프리카 국가 가봉의 팡족이 만든, 전 세계에 12개가량밖에 남지 않은 매우 희귀하면서도 가치가 높은 문화재인 것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특히 가면의 형태가 매우 독특해 파블로 피카소,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등 거장 화가들에게 영감을 줬다고 한다. 심지어 경매소의 한 관계자는 프랑스 텔레비전 매체에 “이런 종류의 가면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보다 더 희귀하다”고 말했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2022년 3월 이 가면은 익명의 판매자에게 420만유로, 약 59억8000만원에 팔렸다.

2022년 3월 프랑스의 한 경매에서 420만유로(약 59억8000만원)에 낙찰된 나무 가면. 19세기 중앙아프리카 국가 가봉의 팡족이 만든 것으로 전 세계에 12개가량 밖에 남지 않은 매우 희귀하면서도 가치가 높은 문화재다. 가봉은 1839년부터 프랑스의 식민 지배를 받다가 1960년 독립했는데 식민지 시대 프랑스로 넘어온 것으로 추정된다. AFP 연합뉴스

결국 부부는 중고품 상인을 상대로 경매 수익을 돌려달라며 민사소송을 제기했고 31일 열린 법원 심리에서 부부의 변호인은 “부부가 가면이 매우 희귀한 물건이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결코 21만원이라는 헐값에 넘겼을 리가 없다”고 주장했다. 중고품 상인이 가면의 가치를 알면서도 일부러 가격을 낮게 불렀다는 취지다. 반면, 중고품 상인은 자신 역시 가면의 가치를 경매에 부치기 전까지 몰랐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매 수익금이 누구에게 돌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법원의 결정이 12월에 나올 예정인 가운데, 소송전에 가봉 정부까지 뛰어들어 상황은 더욱 복잡해진 모양새다. 비비시(BBC)는 가봉 정부가 가면이 애초에 도난당한 것이므로 ‘집’으로 반환돼야 한다고 주장해왔으며, 반환과 관련된 별도의 판단이 나올 때까지 해당 소송의 판결을 연기해달라고 법원에 요청한 상태라고 보도했다. 앞서 지난해 경매 당시에도 프랑스 남부 가봉 공동체 회원들은 ‘가면은 결코 팔려서는 안 되며 가봉에 반환돼야 한다’며 경매소에서 시위를 벌인 바 있다.

가봉쪽 관계자는 이날 법정에서 비록 이번 소송이 부부와 중고품 상인 사이에서 제기된 것이지만, 이들 모두 가면의 적법한 소유자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이 가면에는 영혼이 있어서 가봉의 마을에서는 정의를 확립할 때 쓰곤 했다”며 “가면은 식민지 시절 약탈된 문화재로 우리가 원하는 것은 가봉으로의 반환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법정에서 도덕성을 논하고 있지만, 우리의 문화재과 우리의 존엄성을 약탈한 행위에는 도덕성이 있느냐”고 물었다. 가봉은 1839년부터 프랑스의 식민 지배를 받다가 1960년 독립했다.

앞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2017년 “아프리카 유산을 아프리카에 임시로 또는 영구히 되돌려주는” 노력을 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2018년 프랑스 정부 보고서를 보면, 프랑스에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문화재가 9만점 넘게 있다. 2020년 12월 프랑스 의회는 식민 시절 약탈한 베냉과 세네갈의 문화재를 반환하는 법안을 압도적인 찬성으로 통과시키기도 했다.

프랑스 매체 에르에프이(RFI)는 “프랑스와 다른 유럽 국가들을 대상으로 식민지 시대 아프리카에서 약탈한 문화재를 반환하라는 압력이 세지고 있지만, 반환된 문화재 대부분은 공공 소장품들이었다”며 “개인이 소장한 경우 불법 취득이 입증되지 않는 한 반환을 강제할 수는 없다”고 보도했다.

이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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