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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 넘쳐나는 ‘반유대 정서’…미국은 이해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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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군의 장갑차와 불도저가 29일 가자지구로 공격해 들어가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무력충돌을 둘러싸고 중국 사회에 ‘반유대’ 정서가 넘쳐나는...

이스라엘군의 장갑차와 불도저가 29일 가자지구로 공격해 들어가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무력충돌을 둘러싸고 중국 사회에 ‘반유대’ 정서가 넘쳐나는 현상에 대해 미국의 주요 언론이 잇따라 주목해 눈길을 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29일(현지시각) 최근 며칠 사이에 중국의 소셜미디어 위챗에 ‘유대인 반대’라는 말과 관련된 검색과 발언이 급증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런 유대인 혐오 현상은 나치 시절 독일 사업가가 유대인들을 구출하는 내용을 담은 1993년 영화 ‘쉰들러 리스트’에도 미쳐 최근 비디오 스트리밍 사이트에는 영화에 대한 혹평이 쏟아지고 있다. 한 중국인은 소셜미디어 ‘더우반’에 “원래 쉰들러 리스트를 좋아했는데, 지금 보니 뱀을 구한 농부 얘기 같다”고 적었다. 물론 좋은 평점을 주는 반박 댓글도 뒤따랐다.

신문은 중국이 한때 유대인들의 피난처 구실을 했던 역사적 사실을 거론하며 최근 만연한 반유대 정서와 비교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 수만 명이 유럽의 박해를 피해 상하이와 하얼빈으로 이주했다. 두 지역은 전쟁 뒤 유대국가 건설을 위한 후보 장소로도 거론된 바 있다. 지금도 그 흔적이 남아있다.

중국인과 유대인의 우호적 관계는 최근까지도 이어졌다. 지난 8월 뉴욕에서는 상하이가 어떻게 2만 유대인의 피난처가 되었는지를 조명하는 전시회가 열렸고, 2017년 뉴욕의 유대유산박물관에는 유대인들의 중국 거주에 대해 언급하면서 “중국:반유대정서가 없는 땅”이라고 적어놓았다.

그러나 지금은 이런 분위기를 찾아보기 힘들다. 최근 한 유명 인플루언서는 중국의 소셜미디어 더우반에 “앞으로 중국은 유대인이 위기에 처해도 더는 피난처를 제공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밖에 여러 소셜미디어에 중국 당국에 2007년 설립된 ‘상하이 유대인난민박물관’을 철거하라고 촉구하는 글도 올라온다.

뉴욕타임스도 28일 소셜미디어뿐 아니라 중국 관영 매체에도 반이스라엘·반유대 정서가 만연하다고 보도했다. 영자 관영신문인 차이나데일리는 23일 사설에서 미국이 일방적으로 이스라엘 편을 들고 있다고 비난하며 미국을 향해 “역사의 잘못된 편”에 서 있다고 공격했다. 후시진 환구시보의 전 편집인도 소셜미디어에 헤즈볼라에 대한 이스라엘의 강경 발언을 겨냥해 “오 침착해라, 이스라엘. 네가 지구를 태양계에서 쓸어버릴까 걱정된다”고 비아냥거렸다. 다른 유명 인플루언서도 웨이보에 하마스를 더는 ‘테러단체’가 아닌 ‘저항단체’로 부르겠다고 선언했다. 선이 푸단대학의 국제관계학 교수는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을 과거 나치의 탄압과 견주기도 했다.

29일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군의 공습 뒤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AFP 연합뉴스
미국 언론들은 이런 현상을 방치하는 중국 당국의 의도에 대해 의구심을 드러냈다. 엄격한 검열이 실시되는 중국에서 당국의 용인 없이는 이런 반유대 정서가 넘쳐날 수 없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중국 소셜미디어의 반유대 정서가 중국 당국이 이스라엘과 거리를 두고 팔레스타인을 지지하고 있는 태도와 겹쳐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은 중립국으로서 평화를 주선하는 중재자가 되겠다고 공언하지만, 팔레스타인을 동정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왕이 외교부장은 중국 23일 이스라엘에 대해 “국제인도법을 존중하고 민간인의 안전을 지키라”고 요구하면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에겐 “팔레스타인, 특히 가자지구 사람들의 어려운 상황에 깊은 공감”을 표시하는데 그쳤다. 뉴욕타임스는 이런 편파적인 반유대 정서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믿을 만한 중재자가 되고자 하는 중국의 열망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 언론들은 나아가 중국 내 반유대 정서가 최근 들어 중국 내 민족주의의 목소리가 커지고 미국과의 대결이 격화하고 있는 상황과 궤를 같이한다는 분석도 내놓았다. 제시카 브랜트 미국 브루킹스 연구소 연구원은 월스트리트저널에 중국의 관영 매체들이 이번 무력충돌과 관련해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배후에 있는 전쟁광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게달리아 애프터만 이스라엘 라이히만대 교수도 뉴욕타임스에 중국 당국이 “대중들 사이에 반미 정서를 키울 기회로” 이번 상황을 이용하는 것 같다고 풀이했다.

그러나 중국 사회가 이번 분쟁과 관련해 미국·유럽과 전혀 다른 ‘역사적 맥락’에 놓여있다는 사실도 함께 언급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국은 미국·유럽과 달리 2차 세계대전에서 유대인이 몇백만 명이 학살당한 홀로코스트에 대한 역사적 책임에서 자유롭다. 유대인과 이스라엘에 대해 특별한 부채의식이 없다는 뜻이다. 또 기독교 사회와 달리 구약성서를 통해 옛 유대인의 역사를 공유하지도 않으며 이슬람 사회와 얽힌 역사적 경험도 서구 사회에 비해 적은 편이다. 중동 상황을 바라보는 맥락 자체가 미국·유럽과 전혀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박병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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