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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톱만한 크기가 두근두근…심장질환 치료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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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심장은 인간에게 여러가지 의미로 중요한 장기다. 심장이 멎으면 살 수 없으니 생존에 핵심적인 장기이면서 몸에 딱 하나 있어서 누구에게 내어줄 수도 없다...

심장.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심장은 인간에게 여러가지 의미로 중요한 장기다. 심장이 멎으면 살 수 없으니 생존에 핵심적인 장기이면서 몸에 딱 하나 있어서 누구에게 내어줄 수도 없다. 감정이 요동치면 심장이 반응하니, ‘마음’이 있는 장기라고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왔다. 지금이야 마음을 관장하는 것은 뇌라고 생각하지만 말이다. 마음은 특정 장기에 깃들어 있다기보단 몸 전체의 조응 과정에서 탄생하는 ‘자기감’(sense of self)에 의한 관념이라고 보는 학자가 많다. 과학적으로 옳든 그르든, 심장에 마음이 있다는 문화적 진실은 그 역사가 깊어서 불멸에 가까운 개념이다. 사랑한다는 표시를 심장(하트)이 아니라 뇌나 위장으로 하긴 좀 그렇지 않겠는가.

어떻게든 고쳐 써야

낭만적인 문화적 이미지와 달리, 심장은 근육질의 주머니와 판막으로 만들어진 정교한 기계에 가깝다. 아직 갈 길이 멀긴 하지만, 우리 몸의 장기 중에 기계화된 ‘인공장기’ 개발이 가장 활발한 부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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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에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든 고쳐 써야 한다. 심장에 피를 공급하는 동맥인 관상동맥이 막히면 조직 괴사가 일어나 심장마비가 온다. 매우 심각하고 긴급한 상황이기 때문에 빨리 손을 쓰지 않으면 사망에 이를 수 있다. 이럴 때 여러가지 응급조치가 필요하지만, 이 중 하나가 제세동기로 전기충격을 줘 다시 심장이 뛰게 하는 것이다. 잠시 멈춘 심장을 전기충격으로 다시 움직이게 할 수 있다는 것은, 원래 심장이 전기신호를 이용해 움직이고 있다는 방증이다. 심장에는 자체 전기신호발생기가 있는데, 이를 통해 심장근육의 수축이 동기화되기 때문에 심장박동의 리듬이 생겨난다. 만약 이 전기신호 발생에 오류가 생기면, 심장근육이 제각각 수축하게 되는 심부정맥 질환이 된다.

심장에서 전기신호가 만들어지는 원리는 의외로 간단하다. 전하를 가지고 있는 이온을 선별적으로 이동하게 만드는 단백질(이온통로 단백질)이 심장세포의 세포막에 특이적으로 존재하는데, 이 단백질을 통해 이온이 이동하면서 전류를 발생시킬 수 있으며, 이런 원리로 전류신호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런 생물전기신호는 심장 이외에 뇌에서도 활발히 사용된다. 어떤 종류의 이온통로 단백질이 얼마나 어디에 존재하는가에 따라서 서로 다른 전류신호가 만들어지기 때문에, 이온통로 단백질의 발현은 생명의 설계도인 우리 유전체 안에 잘 기록돼 있다. 만약 이 단백질의 기능 조절에 오류가 생기면 큰일 날 수 있다. 유전적 이유나 환경적 이유로 심각한 질병을 초래하기도 한다.

신약으로 개발 중인 약물 후보물질이 이온통로 단백질에 영향을 준다면 우선적으로 배제해야 한다. 특정 질환을 치료하려다 또 다른 문제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온통로 단백질을 발현시켜 반응성을 높인 세포주에 약물 후보물질을 처리한 뒤 이온통로 단백질의 전기적 성질을 측정하는 방식으로 이런 유해성을 검사할 수 있다. 물론 간편하기는 하지만 완전한 방법은 아니다. 실험동물을 활용할 수도 있지만 동물윤리 문제도 있고 비용도 감당하기 어렵다. 또 실험동물에게 안전했다고 사람에게도 안전하다고 볼 수도 없다. 신약 개발을 위해 실제 사람 심장에 가까운 실험대상이 필요하다. 심장 오가노이드가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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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 이식할 수 있을까

세계적으로 많은 연구자들이 이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협력도 하고 경쟁도 하고 있다. 2017년엔 오스트레일리아의 허드슨 그룹, 미국의 잉 메이 그룹 등이 인간 배아줄기세포를 이용해 심장 발생에 중요한 인자를 처치하고, 결합조직을 대신할 만한 세포외기질인 콜라겐 등을 사용해 심장 오가노이드를 만들었다. 초기 버전은 형태나 기능적으로 심장과 많이 닮진 않았지만, 한번에 수백개를 동시에 만들 수 있어서 약물스크리닝(신약 후보물질이 될 수 있는 합성 화합물 또는 천연물의 약리 활성과 독성을 평가하는 작업)에 적용하기 좋았다. 이후 점점 더 정교한 심장 오가노이드를 만드는 방법이 보고되고 있다.

오스트리아의 멘잔 그룹은 올해 형태적으로 심방과 심실이 잘 구분되는 오가노이드를 개발했다. 심방과 심실은 발생학적으로 따로 만들어진 뒤 합쳐지면서 심장을 형성한다. 두 영역을 한번에 줄기세포로부터 만들어내려면 해박한 발생학적 지식에 기반한 조건 최적화가 필요하다. 멘잔 그룹은 쉽지 않은 문제를 해결했고, 이 심장 오가노이드는 심방에서 심실로 전기신호가 전달되고 순차적으로 심장박동이 일어나는 수준으로까지 발전됐다. 배양접시에서 자라고 있는 심장 오가노이드들이 펄떡이는 광경을 보면 놀라움을 넘어 경외감이 느껴진다.

심장 오가노이드를 잘 만들 수 있다면, 신약 개발에 필요한 독성 연구뿐만 아니라 심장 관련 유전질환이나 부정맥과 같은 심장 질환을 연구하고 치료제를 개발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심장 오가노이드에 혈관이 결합된 상태의 복합오가노이드를 만드는 시도도 상당히 진전되고 있다. 이런 복합오가노이드는 심장에 혈액을 공급하는 관상동맥의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가 될 수 있다.

나아가 심장 오가노이드를 심장 이식수술에 쓸 수 있을까? 지금까지 개발된 심장 오가노이드의 크기는 수㎜ 정도다. 지금도 저마다 사람 몸속에서 뛰고 있는 심장은 주먹만한 크기다. 구조·기능적인 복잡성은 둘째 치고, 오가노이드를 이렇게 크게 만드는 건 아직 불가능하다. 그러나 잉 메이 그룹은 작은 심근 오가노이드를 나노전극에 싸서 전기신호에 반응하게 한 뒤, 심근경색이 일어난 쥐의 심장에 이식해 심근 재생에 성공한 연구 결과를 올해 보고했다. 괴사한 심장근육을 대체할 만한 작은 사이보그 심장 오가노이드 이식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사람과 비슷한 크기의 심장을 가진 돼지의 유전자를 조작하고 사람 세포 이식으로 사람 심장을 만든 뒤 꺼내서 사용하는 이종 장기 기술 △이미 죽은 심장에서 세포를 빼낸 뒤 남아 있는 세포외 기질층에 사람 심근세포를 넣어서 다시 박동하는 심장을 만드는 탈세포화 기술 △완전히 기계적으로 작동하는 사이보그 인공심장을 만드는 방법 등이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사람의 심장을 만드는 일이 사람의 마음을 만드는 일은 아니다. 그러나 새 심장은 인체에 피를 돌게 해 사람을 정상적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한다. 심장을 만들기 위해 인생을 건 연구자들의 뛰는 심장에 존경을 표한다.

고려대 의과대학 해부학교실 교수

어릴 때는 건강이 좋지 않아 혼자 집에서 이런저런 상상을 하며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 대학에 진학하고 발생학에 관심이 생겨 신경발생학 분야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나는 뇌를 만들고 싶다’, ‘첨단기술의 과학’, ‘생물학 명강 3’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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