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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형모듈원전 예산 삭감에 반발하지만…성공 사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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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9월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로부터 표준설계 인증을 받은 뉴스케일파워의 뉴스케일 소형모듈원자로(SMR) 원전 조감도. 뉴스케일파워 제공 최근 국회에서 소형모듈원전(...

2021년 9월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로부터 표준설계 인증을 받은 뉴스케일파워의 뉴스케일 소형모듈원자로(SMR) 원전 조감도. 뉴스케일파워 제공

최근 국회에서 소형모듈원전(SMR) 예산을 야당이 삭감한 것과 관련해 여권과 보수언론에서 일제히 “국가 백년대계를 흔들었다”며 성토 중인 가운데, 지난 30여년 간 국내외 개발사들이 에스엠알 개발에 투자를 해왔으나 실적이 전무한 현실을 되돌아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사단법인 에너지전환포럼은 26일 긴급 브리핑을 내 핵발전업계가 에스엠알을 ‘차세대 원전’으로 추어올리지만 규모가 줄어도 안전비용은 그대로인 핵발전의 특성 탓에 경제성을 갖추기 쉽지 않다고 밝혔다.

지난 20일 더불어민주당은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산자위) 전체회의에서 국민의힘의 반발 속에 핵발전 예산을 대폭 삭감하고 재생에너지 예산을 크게 늘린 내년도 예산안을 단독으로 통과시켰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항의 표시로 회의에 불참한 뒤 비판적 목소리를 높였다. 윤재옥 원내대표는 지난 22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에스엠알은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대선 공약… 자가당착”이라고 날을 세웠고, 오세훈 서울시장은 21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전산업계 목발마저 부러뜨리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보수 언론에서도 “정치 논리로 국가 백년대계를 흔들어”(한국경제신문), “민주당은 차라리 ‘탈원전 회귀’ 선언하라”(조선일보 사설) 등의 비판이 나왔다.

에스엠알은 대형 원전을 100분의 1 크기로 축소해 공장에서 모듈화한 것으로, 원전 관련 산업계와 학계에서는 입지 제한 없이 필요한 지역에서 사용할 수 있고 재생에너지의 불안정성을 보완한다며 ‘꿈의 원전’으로 일컬어왔다.

에스엠알 예산 삭감에 대한 여당·보수언론의 비판은 원전업계가 말하는 ‘에스엠알이 대형 원전보다 안전성·경제성이 뛰어나다’는 인식에 근거하고 있지만, 아직 검증되지 않은 주장이라는 지적은 지속해서 제기돼 왔다. 에스엠알이 기존 대형원전에 비해 크기가 줄어들면서 안전시설이 부재해 사고에 취약할 수밖에 없고, 설비 용량 대비 경제적인 면에서도 유리하다는 점이 입증된 바 없다.

이런 가운데 에스엠알 상업화에 가장 근접한 회사인 미국 뉴스케일파워가 지난 8일 유일한 사업이었던 미국 유타주 지방전력협회(UAMPS)와의 발전사업 철회를 발표했다. 뉴스케일파워는 세계적으로 70여종의 에스엠알이 제안된 가운데 구체적인 설계개발로 진척한 유일한 회사다. 뉴스케일파워는 앞선 2020년에 20년을 들여 연구·개발한 50메가와트(㎿)급 설계인증을 받았지만 경제성 부족으로 용도 폐기했고, 이어 올해 7월 77㎿로 변경해 설계인증을 신청해놓은 상태에서 유타 사업을 철회했다. 사업 철회 발표 이후 뉴스케일파워의 주가는 지난해 최고치인 14달러대에서 2달러대로 폭락했다. 미국 에너지부가 뉴스케일이 오리건주립대 연구팀이던 2000년부터 20년 넘게 지원한 결과다.

뉴스케일파워 쪽은 “다른 계약이 남아 있어 유타주 사업 철회가 에스엠알 개발에 큰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방어했지만, 시장에서는 이 ‘다른 계약’의 존재가 일종의 증권사기라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유타주 사업 철회 뒤 뉴스케일파워를 상대로 16개 이상의 증권소송 전문 로펌들이 집단 손해배상소송 원고인단을 모집 중이다.

지난 20일 여당 의원들이 불참한 채 열린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전체회의 모습. 연합뉴스

핵발전의 규모를 줄여 모듈화(일체화)하는 시도는 지난 30여년 간 국내외에서 계속 실패했다. 경제성을 확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원자력기업 웨스팅하우스는 중규모 모듈형 원전사업 추진 과정에서 2017년 파산을 경험했다. 웨스팅하우스는 1988년 차세대 원자력 발전시스템인 ‘AP600’ 개발을 추진했고, 10년 뒤인 1998년 설계인증을 받았다. 그러나 설계인증보다 더 까다로운 건설·운영 인허가 과정에서 전기사업자들로부터 3차례나 설계 수정을 요구받으면서 인증 지연과 건설 비용 급증으로 회사가 파산했다.

미국 원전 회사인 엑스에너지와 빌 게이츠가 설립한 에스엠알 개발 회사인 테라파워의 상황은 이보다 더하다. 실물로 구현되지 않은 기술 개념 수준이거나 부분 설계에 대해 이제 막 초기 심의를 받았을 뿐이다.

한국 상황도 마찬가지다. 국내 스마트원전(100㎿급 일체형모듈원전) 개발사업은 1997년부터 시작됐는데, 경제성 문제로 한국전력이 반대 입장을 표하고 예비타당성조사에서 부적합 판정을 받아 2008년 사업이 공식 폐기됐다. 그러다 2011년부터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수출용으로 재추진했으나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진보 정권에서도 에스엠알 개발 사업을 추진했다. 문재인 정부는 2021년 ‘혁신형 소형모듈원자로(i-SRM) 기술개발사업’을 추진해 2022년 예타를 통과했으나 역시 이렇다 할 성과가 없었다. 소형화·모듈화가 어렵고 규모를 줄여도 안전비용은 대형 원전과 다를 바 없는 핵발전의 특성 탓이다.

에스엠알 예산 삭감과 관련해 국회 산자위 위원인 양이원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민주당도 처음엔 ‘연구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최근 뉴스케일파워의 사업 무산 과정을 보며 에스엠알이 허상에 불과하며 현실화되기 어렵다는 것에 공감하고 있다”고 발혔다. 또 “에스엠알을 인정하는 건 정치권이 잘못된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언론도 더는 에스엠알을 황금알을 낳는 거위처럼 다루지 말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석광훈 에너지전환포럼 전문위원은 “미국의 경우 전력시장 필요와 무관하게 1979년 10만명이 대피한 스리마일 섬 사고 이후 침체한 원전 시장을 부활시킨다는 정치적 논리에서 파생된 실패였다면, 한국은 단순연구 수준이던 스마트사업을 두고 과기부가 그릇된 실적 내기 욕심을 부리고 이명박 정부가 허황한 ‘80기 원전수출’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빚은 참사”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최근 국회의 관련 예산 삭감을 두고 원전 개발사업의 타당성을 판별할 전문성도, 이를 교차 검증할 의지도 없는 언론들이 ‘에스엠알이 대형 원전보다 안정성과 경제성이 뛰어나다’는 ‘아무 말 대잔치’를 무책임하게 하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한편 국제에너지기구(IEA)가 지난 10월 발표한 세계에너지전망을 보면 지난해 세계 풍력과 태양광의 발전량은 3428테라와트시(TWh)로, 원전 발전량 2803TWh를 추월했다. 설비용량도 지난해 태양광은 220GW, 풍력은 75GW가 늘어났지만 원전은 4GW 증가에 그쳤다.

박기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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