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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T ‘인공지능 통화녹음’, 경쟁사는 ‘도청’ 우려로 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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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케이텔레콤 ‘에이닷(A.)’ 통화녹음 서비스에 대해 다른 통신사들도 유사 방식의 서비스를 준비하다가 통신비밀보호법과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소지를 우려하는 내부 검토 의견에 따라 ...

에스케이텔레콤 ‘에이닷(A.)’ 통화녹음 서비스에 대해 다른 통신사들도 유사 방식의 서비스를 준비하다가 통신비밀보호법과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소지를 우려하는 내부 검토 의견에 따라 접은 것으로 확인됐다. 인기 그룹 뉴진스가 등장하는 에이닷 영상광고 갈무리

지난 10월 말 출시돼 2주 만에 40만명의 이용자를 불러모은 에스케이텔레콤(SKT) ‘에이닷(A.)’의 통화녹음 서비스에 대해, 다른 통신사들은 “(도청을 금지하는)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으로 볼 수 있다”는 내부 검토 의견에 따라 이 서비스를 준비를 접은 것으로 확인됐다. ‘사전 적정성 검사’ 등 인공지능(AI) 서비스의 불법과 합법의 경계를 점검할 장치가 모호한 시점에 ‘1위 이동통신 사업자’가 선도적으로 치고나간 ‘인공지능 전화 녹음 및 통화내용 분석·요약’ 서비스에 대해 이동통신 업계 내부에서도 우려가 터져나오는 모양새다.

5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복수의 통신사가 에스케이텔레콤의 에이닷 인공지능 통화녹음 서비스와 같은 방식에 대해 법무 검토 등 적법성에 대한 내부 검토를 벌인 결과 ‘법 위반 소지가 있다’는 결론을 내려 서비스를 접은 것으로 것으로 확인됐다. 통신 업계 내부에서조차 해당 방식의 서비스가 통신비밀보호법과 개인정보보호법 등에 위반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에스케이텔레콤은 인공지능 통화녹음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법 위반 소지가 없다”고 일축한 바 있다.

한겨레가 입수한 한 이동통신사의 내부 검토 문건을 보면 “설령 전화 통화 당사자 일방의 동의를 받고 그 통화내용을 녹음하였다 하더라도 그 상대방의 동의가 없었던 이상 제 3자가 이를 녹음하는 것은 사생활 및 통신의 불가침을 국민의 기본권의 하나로 선언하고 있는 헌법규정과 통신비밀의 보호와 통신의 자유신장을 목적으로 제정된 통신비밀보호법의 취지에 비추어 통신비밀보호법 제3조 제1항에 위반이 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문건에는 “이동통신사가 자사의 통신망을 통해 통화 내용을 녹음하는 것이라 볼 수 있는 점, 통화 당사자의 기기에 통화가 녹음되는 것이 아니라 통신망 단계에서 녹음이 이루어지고, 통화 당사자는 단지 서버에 이를 다운로드 받을 수 있는 점, 통신비밀보호법상 위법인 ‘감청’의 범위가 비교적 넓게 정의되어 있는 점 등에 비추어 볼 때 통비법 위반이 성립할 위험이 높다”는 판단 근거도 담겼다.

2019년 대법원은 ㄱ씨가 ㄴ씨와 스피커폰으로 통화를 하며 제 3자인 ㄷ씨가 ㄱ씨의 동의를 받고 녹음을 한 사건에 대해서도 불법 통화녹음이라고 판결한 바 있다. 통신비밀보호법 3조 1항은 “누구든지 이 법과 형사소송법 또는 군사법원법의 규정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우편물의 검열·전기통신의 감청 또는 통신사실확인자료의 제공을 하거나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간의 대화를 녹음 또는 청취하지 못한다”고 못박고 있다.

또다른 통신사는 “내부에서 해당 서비스가 법적으로 ‘회색지대(애매한 지점)’에 있는 점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다”고 밝혔다. 이 통신사 관계자는 한겨레에 “개인간 통화내용을 인공지능을 통해 가공하고, 그에 따라 나온 산출물을 활용하는 범위가 과연 개인정보 보호 측면에서 적정한지 의문이라는 우려가 많았다”며 “에이닷이 동의 버튼을 앞세워 이용자들이 손쉽게 서비스를 이용하도록 만들었지만, 개인정보 접근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이용자들에게 전면적으로 알렸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에이닷 전화’는 지난 10월24일 에스케이텔레콤이 이동통신 가입자 중 아이폰 사용자들에 한해 쓸 수 있도록 출시한 인공지능 통화녹음 서비스다. 애플의 통신비밀 보호 정책에 따라 아이폰에서 금지한 통화내용 녹음 문제를 이동통신사가 나서서 풀면서 대량의 아이폰 사용 가입자 이동 효과를 노렸다. 통화 녹음 뿐 아니라 생성 인공지능 챗지피티(ChatGPT)를 사용해 녹취 글 제공, 통화 내용 요약, 통화 중 언급된 일정이나 개인정보 저장 등의 기능을 제공한다.

이 서비스는 출시 전부터 ‘인공지능을 활용한 도청’ 논란을 불렀다. 쟁점은 에이닷 통화녹음 서비스 주체 ‘에스케이텔레콤’이나 ‘인공지능’을 ‘제3자’로 볼 지 여부와, 통화 내용과 개인정보 등이 통신사 서버(컴퓨터)에서 처리되는 것을 어떻게 바라볼 지다. 논란이 커지자,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에이닷 전화에 대한 실태점검에 나섰다. 개인정보보호위 관계자는 “‘인공지능 전화 녹음’이라는 신기술의 실체와 개인정보 취급 방식에 대해 들여다보고 있다”고 밝혔다.

챗지피티가 출시된 지 1년이 지났지만, 아직 국내에선 ‘위험한 인공지능’을 걸러내기 위한 장치가 작동하고 있지 않은 상황이다. 국민의 생명·안전·권익에 위해가 되는 ‘고위험 인공지능’을 규제하는 내용의 인공지능 법안은 ‘우선허용·사후규제 원칙’ 등이 논란이 되며 국회에 계류 중이다.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하려는 기업들의 법 위반 여부를 미리 검증해보는 ‘사전적정성 검토제’도 개인정보보호위가 내년 시행을 목표로 아직 준비 중이다.

업계의 우려에도 규제당국의 적극적인 ‘교통정리’ 없이 인공지능 통화녹음 서비스의 인기가 높아진다면, 케이티(KT)와 엘지유플러스(LGU+) 등 경쟁 사업자들도 따라갈 수밖에 없다. 지난달 미래에셋증권은 “시장에 생성 인공지능 기반의 앱이 두드러지지 않는 가운데 에이닷의 통화 요약 서비스가 선두주자로 자리매김 중”이라며 “개인화된 인공지능 시대로 나아감에 에스케이텔레콤의 선제적 각인 효과가 기대된다”고 분석했다. 한 이통사 임원은 “에이닷 통화녹음의 인기가 높아지며 가입자 전환이 가속화하면, 다른 이통사들도 ‘성공한 인공지능 서비스’를 따라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장여경 정보인권연구소 상임이사는 “통화 녹음을 ‘제3자’인 에스케이텔레콤에 보내므로 통화 상대방 동의가 없다면 위법”이라며 “많이 양보해 ‘법적 회색지대’라 해도 신기술의 정보인권 침해 가능성에 대해 당국의 적극적 해석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에스케이텔레콤은 “에이닷 전화는 출시 전 내부적으로 법률 검토를 마쳤으며, 서버에서도 아주 짧은 시간의 처리 후 즉각 삭제하므로 법 위반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임지선 기자 박지영 기자 김재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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