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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매도 금지’ 주가 방어 성공한 적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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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된 게임스톱(GME)은 ‘공매도 전쟁’의 역사에서 기념비가 될 만한 종목이다. 2020년 3월부터 코로나 대유행이 확산되는 가운데 5달러대에 머물던 주가가...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된 게임스톱(GME)은 ‘공매도 전쟁’의 역사에서 기념비가 될 만한 종목이다. 2020년 3월부터 코로나 대유행이 확산되는 가운데 5달러대에 머물던 주가가 9월 들어 10달러대로 올라섰다. 실적에 비해 고평가됐다고 생각한 기관투자가들의 공매도가 계속 늘어, 유통주식의 60% 가까이로 불어났다. 재무분석가 자격을 가진 키스 길은 미국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 ‘레딧’의 게시판(월스트리트베츠)을 무대로, 게임스톱 주식을 사서 거래의 씨를 말리면 공매도 세력이 더 큰 손실을 막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폭등한 주식을 사는 ‘쇼트 스퀴즈’가 일어날 것이라고 했다. 동조자가 늘어나면서 매수에 힘이 붙었다. 주가는 그해 12월에 20달러대로 올라섰다. 공매도에 시달렸던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도 이들을 응원했다. 주가는 2021년 1월27일 347.5달러(종가)까지 뛰었다. 10거래일간 상승률이 1641%에 이르렀다. 1월28일 장중엔 480달러까지 올랐다.

일찌감치 주식을 산 투자자들은 큰돈을 벌었다. 일부 헤지펀드는 항복을 선언했다. 헤지펀드 멜빈캐피털매니지먼트는 천문학적 규모의 손실을 입고 2022년 5월 청산 절차에 들어갔다. 그러나 공매도 세력의 ‘쇼트 스퀴즈’는 일어나지 않았다. 투자자들은 차익 실현에 나섰다. 주가는 떨어지고 고가에 매수한 이들은 ‘물렸다’. 게임스톱 주가는 11월9일 12.7달러로 떨어져 있는데 2022년 1주를 4주로 분할했으므로 50.8달러로 볼 수 있다.

여당 요구에 방향 바꿔 ‘터닝슛’

게임스톱 공매도 전쟁이 한창이던 2021년 2월1일, 국내 개인투자자 모임인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는 우리나라에서도 공매도 반대 운동을 전개하겠다고 밝혔다. 당시 우리나라에선 코로나 위기에 대응해 2020년 3월16일부터 공매도를 금지하고 있었다. 6개월 시행한 뒤, 6개월 연장했다. 셀트리온·에이치엘비(HLB) 등 헬스케어 업종의 급등주에 공매도가 많이 쌓여 있었다. 연합회가 기자회견을 한 날 유가증권시장에서 공매도 잔고가 가장 많은 셀트리온 주가가 37만1천원으로 14.51%나 뛰었다. 그러나 반짝 상승이었다. 셀트리온 주가는 하락세가 이어져 지금은 그 절반도 안 되는 15만7천원대로 떨어져 있다.

금융위원회는 코로나 대유행을 계기로 단행한 ‘공매도 금지’ 조처를 2021년 5월3일부터 코스피200 종목, 코스닥150 종목에 한해 풀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영원한 공매도 금지를 청원한다’는 제목의 글이 오르고 한달 만에 20만명 넘게 서명했지만, 문재인 정부는 불법 공매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등 제도를 개선하고 부분 재개의 길을 선택했다.

그로부터 2년 반이 지난 2023년 11월5일 일요일 오후, 금융위원회는 임시회의를 열어 6일부터 2024년 6월 말까지 공매도를 전면 금지하기로 전격 의결했다. 전면 재개를 준비하고 달리다 갑자기 ‘터닝슛’을 날린 꼴이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있는 여당 국민의힘이 강하게 요구한 데 따른 것이었다. 공매도 금지 첫날인 지난 6일 코스피지수는 5.66%, 코스닥지수는 7.34% 폭등했다. 올해 내내 주가가 폭등해 공매도가 집중돼 있는 2차전지 종목이 주가 상승을 주도했다. 코스닥 대장주 에코프로와 자회사 에코프로비엠은 상한가(30%)까지 올랐다. 2차전지 종목에 분산투자하는 미래에셋의 ‘타이거(TIGER) 2차전지 테마’ 상장지수펀드(ETF)도 21.68%나 뛰었다. 그러나 주가 급등은 하루에 그쳤다. ‘타이거 2차전지 테마’는 7일 9.11% 떨어지는 등 10일까지 나흘 만에 상승폭을 모두 반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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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울어진 운동장’ 불만에 울타리부터

주식을 빌려 팔거나, 보유하지 않은 채 매도(무차입 공매도)한 뒤 가격이 떨어지면 저가에 되사서 갚고 돈을 버는 투자기법이 공매도다. 1608년 네덜란드 주식시장에서 처음 등장했다가 2년 만에 ‘금지’된 것에서 알 수 있듯, 출생 때부터 욕을 먹은 투자기법이다. 경제위기 등의 이유로 주식시장이 나쁠 때, 공매도는 ‘주가를 급락시키고 시장을 불안하게 하는 주범’으로 꼽혀 ‘규제’를 받았다. 2008년 미국발 세계금융위기 때, 2020년 3월 코로나 대유행 때 세계 주요국이 공매도 규제에 나섰다. 그러나 그 결과를 분석한 대부분의 연구는 공매도 규제가 “오히려 나쁜 결과를 낳았다”고 한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는 2008년 9월19일부터 10월8일까지 14거래일간 797개 금융주에 대해 공매도를 전면 금지한 적이 있다. 먼저 영국이 공매도를 금지한 2008년 9월18일 에스앤피(S&P)500 금융주 지수가 11.73% 뛰고, 19일에는 11.11% 폭등했다. 그러나 주가는 결국 내재가치를 따라갔다. 공매도 금지를 해제한 그해 10월9일에도 11.74% 폭락했다. 9월17일부터 이날까지 금융주 지수 하락폭은 24.6%였다. 그 뒤에도 두달가량 하락이 이어졌다. 대중의 요구에 따라 규제를 하기는 하지만, 주가가 내재가치보다 고평가돼 있다면 공매도 규제로 주가 하락을 막기 어렵다는 걸 그동안의 사례가 보여주고 있다.

부작용이 크다는 연구도 많다. 미국 예일대학 금융안정연구 프로그램의 연구원 샤론 넌과 애덤 쿨람은 ‘코로나19 시기 공매도 규제’ 란 논문(2021년 1월)에서 “2008년 미국 공매도 규제를 다룬 논문 2건의 결론은 ‘거래량이 감소하고, 적정 가격 발견을 방해한다’는 것”이라며 “코로나19 시기 규제에 대한 연구들도 ‘공매도 규제가 시장에 악영향(시장 유동성 저해, 가격 성과 저하, 정보 비대칭성 증가)을 끼친다’는 학계의 합의를 강화했다”고 썼다. 규제가 없는 나라로 투자자들이 옮겨간다는 분석도 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지난 5일 공매도 전면 금지에 대해 “외국 투자은행(IB)들의 관행적인 불공정 거래 등으로 공정한 가격형성·거래질서가 불가능하다는 판단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데이터가 있느냐는 물음에 “분석을 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공매도 제도가 개인투자자에게 불리한 ‘기울어진 운동장’이란 비판에 개선책을 찾기보다는 운동장에 울타리를 치고 문을 걸어 잠근 모양새다.

이번 조처는 폭등했던 2차전지 관련주들이 고점에서 큰 폭으로 하락한 뒤에 나왔다. 반등을 일으키기 딱 좋은 때였다. 에코프로는 연초 10만원 남짓 하던 주가가 7월26일 장중 153만9천원까지 올랐다가 11월3일 63만7천원까지 떨어져 있었다. 공매도를 금지하자 단숨에 가격 제한 폭까지 뛰었다. 그런데 에코프로와 핵심 자회사 에코프로비엠은 지난 7일 3분기 영업이익이 작년보다 60% 넘게 감소했다고 발표했다. 에코프로를 대상으로 유일하게 분석 보고서를 내고 있는 김현수 하나증권 연구원은 에코프로 목표가격을 55만5천원에서 42만원으로 다시 낮췄다. 그보다 훨씬 가치가 높다는 반론이 나오고, 그 의견이 투자자들 사이에 힘을 얻지 못한다면, 공매도 금지의 주가부양 효과는 ‘1일 천하’로 끝날 수도 있다.

한겨레 경제부장, 도쿄특파원을 역임했다. ‘통계가 전하는 거짓말’ 등의 책을 썼다. 라디오와 티브이에서 오래 경제 해설을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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