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브리엘 쥐크만 미 UC 버클리대 경제학과 교수. 버클리 누리집 갈무리
미국 경제학자가 노벨경제학상보다 받기 어렵다는 상이 있다. 바로 존 베이츠 클라크 메달이다. 전미경제학회가 매년 경제적 사고와 지식에 커다란 공헌을 한 40세 미만 미 경제학자에게 수여한다. 아무리 탁월한 학자라 하더라도 나이 제한에 걸릴 수 있다. 1947년부터 격년마다 수여하다 2009년 이후 연간 수상으로 바뀌었다. 수상자 면면이 화려하다. 폴 사무엘슨, 밀턴 프리드먼, 제임스 토빈, 케네스 애로우, 로버트 솔로우 등 경제학 교과서에 나오는 인물들이 많다. 가깝게는 조지프 스티글리츠, 폴 크루그먼, 로렌스 서머스 등도 이 상을 받았다.
올해 수상자는 가브리엘 쥐크만 유시(UC) 버클리대 교수다. 전미경제학회가 밝힌 수상 이유는 A4 두 쪽 분량에 이른다. 한 줄로 압축하면 보다 정교하게 탈세와 소득 및 부의 불평등을 측정한 업적이다.
그는 다음 달 11일 한겨레가 주최하고 한겨레경제연구원이 주관하는 14회 아시아미래포럼 기조세션3에 연사로 나서 ‘불평등의 대가, 누가 더 큰 비용을 지불하는가’를 주제로 강연한다. 앞서 한겨레는 화상과 서면 등 2차례에 걸쳐 그와 인터뷰했다. 기후위기와 함께 인류 공존을 위협하는 불평등은 정치적 불안을 조장한다는 면에서도 위험하다.
그는 불평등의 속도와 정도를 함께 우려했다. 미 상위 1%가 소득 및 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920년대 말 대공황 직전 수준이다. 불평등의 이런 심각한 상태는 우리나라 또한 예외가 아니다. 속도 또한 가파르다. 미 상위 1%의 소득과 부의 비중이 1980년대 이후 2배나 커졌다. 그는 감세와 탈규제 등 시장근본주의를 그 원흉으로 지목했다.
쥐크만이 말하는 불평등의 대가를 4가지로 정리해봤다.
첫째, 소득과 부의 소수 집중은 정치적 힘마저 이들에게 쏠리게 하면서 민주주의 원칙을 훼손할 수 있다. 부가 커질수록 자신에게 유리한 예산 배분 및 정책 결정이 이뤄지도록 압박을 꾀할 수 있는 힘도 커진다. 부의 집중은 정치적 힘의 집중을 뜻한다.
둘째, 부와 소득의 소수 집중은 다른 말로 하면 다수의 몫이 줄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불평등 속도가 가팔라진 1980년대 이후 전체 파이 가운데 미 소득 하위 50%의 몫(비중)은 되레 과거보다 줄었다. 절반에게 공평하지 못한 성장을 한 것이다.
셋째, 불평등은 혁신을 약화한다. 쥐크만은 불평등이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본다. 그래야 혁신을 일으킬만한 동기 부여가 된다고 말한다. 모든 것이 평등한 것이 좋지 않다고 한다. 반대로 불평등이 확대하면 혁신이 일어날 수 없다. 1명이 부와 소득을 몽땅 다 차지한다면 나머지 99명이 혁신을 일으킬만한 동기를 찾을 수 없게 된다.
넷째, 감세 등 시장근본주의 강화로 커진 불평등은 경제 성장을 위한 교육, 보건, 인프라 등 공공재 확충을 위한 재원 마련을 어렵게 한다. 부자들의 세금 부담을 낮춰주면 조세를 통한 국가의 재원 마련이 어렵게 되고 그로 인한 공적 투자 여력이 줄어들기 마련이다.
미 소득 상위 10%와 하위 50%의 소득 비중 추이. 전체 소득에서 상위 10%의 몫은 대공황 전 수준으로 증가한 반면 하위 50%의 소득 비중은 감소하고 있다. 2022년 세계불평등보고서 갈무리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불평등 심화 현상이 나타나는 가운데서도 그는 비관적이지 않다. 불평등을 정치적 선택의 문제로 보기 때문이다. 그는 이런 예를 들었다. 2차 세계대전 전후 미국의 소득세 최고 세율은 90%대에 이르렀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의회에 서한을 보내 세금을 내고 나서 25만 달러 이상 소득의 얻을 수 없도록 일종의 소득 한도를 설정하고자 했다. 그 이상의 소득에 100%의 세금을 매기려는 시도였다. 너무 지나친 정책의 타협안으로 나온 게 바로 90%대에 이르는 소득세 최고세율이었다고 한다.
선진국 가운데 가장 높았던 미국의 세율은 레이건 행정부를 거치며 20%대 후반으로 떨어졌다. 몇 년 만에 선진국 가운데 가장 낮은 수준이 되었다. 쥐크만은 이런 역사를 상기시키면서 불평등의 정도는 정책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며, 정책은 정치적 선택의 영역에 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특히 대선 후보를 지냈던 버니 샌더스 이후 미 민주당 내부의 과세 누진체계 강화 목소리를 긍정적으로 봤다.
실제 불평등은 나라마다 다른 경로를 밟는다. 미국보다 불평등 심화 속도가 완만했던 유럽은 과세, 시장 규제, 최저 임금 정책 등에서 보다 적극적인 정책을 폈다.
미국을 닮아가고 있는 우리가 어떻게 하면 불평등이 초래할 비용과 대가를 줄여나갈 수 있을지 쥐크만 교수의 강연에서 교훈과 조언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세션 참가는 아시아미래포럼 누리집(www.asiafutureforum.org)을 방문해 신청할 수 있다.
류이근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기자, 노영준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보조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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