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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IT 빅5, ‘지속가능성 이행 성과’ 아직 갈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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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해상풍력단지 연합뉴스 미국의 애플과 인텔, 한국의 삼성전자와 에스케이(SK)하이닉스, 대만의 티에스엠씨(TSMC)는 글로벌 IT산업의 스타 기업들이다. IT 혁신을 주도하며 ...

제주 해상풍력단지 연합뉴스

미국의 애플과 인텔, 한국의 삼성전자와 에스케이(SK)하이닉스, 대만의 티에스엠씨(TSMC)는 글로벌 IT산업의 스타 기업들이다. IT 혁신을 주도하며 시장에서 강력한 경쟁력을 보여준다. 이들 IT산업 빅5는 글로벌 시장의 대세로 자리잡은 기후·사회·지배구조 중심 이에스지(ESG) 경영에서도 대부분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른바 ‘ESG 모범기업’인 셈이다.

하지만 유엔 산하 유엔사회개발연구소(UNRISD)가 개발한 ‘지속가능발전 성과지표’(SDPI)를 토대로 한 평가 결과는 사뭇 다르다. 빅5 모두 지속가능성 이행 성과가 100점 만점 기준 50~60점대로, ‘보통’ 수준에 그친다. 진정한 ESG와 지속가능성 달성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뜻이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은 SDPI를 이용해 글로벌 IT산업 빅5의 지속가능성 이행성과를 평가했다. 국내에서 SDPI를 이용해서 기업의 지속가능성 수준을 평가한 것은 처음이다. 연구원은 오는 11일 서울 대한상의 국제회의장에서 열리는 제14회 아시아미래포럼에서 평가결과를 담은 ‘글로벌 IT기업의 지속가능성 분석:상위 5개 기업을 중심으로’ 연구보고서를 발표할 예정이다. 한겨레신문은 지난 5월 유엔사회개발연구소와 SDPI 평가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맺었다.

SDPI 평가지표는 모두 61개이다. 수익·친환경 투자 같은 재무제표 중심의 1단계(티어1) 지표 20개와, 지속가능성 목표 중심의 2단계(티어2) 지표 42개로 나뉜다. 연구원은 SDPI의 차별성을 잘 보여주는 2단계 지표 중에서 기업의 관련 정보를 확보할 수 있는 22개 지표를 선정했다. <헤리이슈>는 기업 간 성과비교를 하기 위해 22개 지표 중에서 ‘지속가능성 임계치 제시’ 방식의 14개 지표를 따로 떼어냈다.

영역별로 보면 △환경 분야는 온실가스 배출량, 유해 폐기물 처리, 재생에너지 및 에너지 효율 등 3가지, △다양성과 포용성 분야는 성별 임금격차, 성별 고용 다양성, 성별 승진 다양성, 관리직 여성 비율, 이사회 여성 비율 등 5가지, △지속가능한 경영관행 분야는 최고경영자-근로자 임금 격차, 경제·환경·사회성과 회계 적용, 총 벌금액, 부패 관련 벌금액 등 4가지, △임직원 안전과 삶의 질 분야는 임직원 돌봄 지원 프로그램, 산업재해 빈도 및 발생률 등 2가지이다.

지속가능성 임계치 제시는 SDPI만의 특성이다. 다른 평가지표들은 주로 전년 대비 성과의 차이에 주목하는데 반해 SDPI는 지속가능발전을 위해 달성해야 할 기준(지속가능발전 임계치)를 설정해 평가하기 때문에 훨씬 엄격하다. 또 다른 대다수 평가지표에서는 주목하지 않는 관리직 여성비율, 이사회 여성 비율, 총 벌금액, 부패 관련 벌금액 지표도 평가한다. 최고경영자-근로자 간 임금격차는 다른 평가지표에도 포함되어 있지만, 계산 방식에서 차별성을 보인다. SDPI는 최고경영자 임금과 최하위 25% 근로자의 중간임금 간 차이를 비교하기 때문에 전체 근로자의 평균임금을 기준으로 삼는 다른 평가지표보다 격차가 더 크게 나타난다.

이일청 유엔사회개발연구소 선임연구조정관은 “극단적인 경우, 지구상의 모든 기업이 전년대비 좋은 성과를 기록하여 ESG 최고등급을 받더라도, 우리의 삶과 환경의 지속가능성은 여전히 담보되지 않을 수 있다”면서 “SDPI는 우리의 삶과 환경이 지속가능하기 위해서 기업이 달성해야할 기준을 설정하고, 개별 기업이 실지로 이 기준을 얼마만큼 달성했는가를 측정하여 지속가능발전에 진정으로 기여하는 사업방식과 실천으로 이끈다”고 설명했다.

SDPI의 기본 취지는 기업의 자가진단을 통해 행동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 있다. 그러다보니 기업의 성과 점수나 순위를 직접 매기지는 않는다. 대신 지표별로 ‘지속가능성 임계치’를 제시하고, 이를 기준으로 5단계로 구분해서 이행 성과를 평가한다. <헤리이슈>는 기업성과의 객관적 비교를 위해 성과수준에 따라 점수를 차등 부여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지속가능’ 또는 ‘지속가능 근접’은 3점(지속가능), ‘지속가능 방향으로 진행 중’은 2점(보통), ‘지속가능과 큰 차이’ 또는 ‘지속가능하지 않음’은 1점(지속가능하지 않음), 정보 미제공은 0점을 각각 부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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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개 평가지표의 지속가능성 이행 성과는 42점이 만점이다. 기업별로 보면 TSMC와 인텔이 각각 26점으로 가장 높았다. 그 다음은 SK하이닉스(25점), 애플(24점)이 뒤를 이었다. 삼성전자는 22점으로 최하위였다. 기업별 점수를 100점 만점 기준으로 환산하면, TSMC=인텔(각각 61.9점)>SK하이닉스(59.5점)>애플(57.1점)>삼성전자(52.4점) 순이다. 한국 IT산업을 대표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지속가능성 이행 성과가 TSMC와 인텔에 뒤져있음을 알 수 있다. SK가 애플에 앞선 것이 그나마 위안거리이다.

영역별로 보면, 온실가스 배출을 포함한 환경 분야는 인텔(8점)>TSMC=SK하이닉스=애플(각각 5점)>삼성전자(3점) 순서이다. 애플은 제품 생산의 상당부분을 중국의 폭스콘 등 해외 협력사에 의존한다, 다른 빅5 기업들에 비해 환경 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얻을 수 있는 잇점이 있다. 전체 합산점수와 환경 점수에서 모두 꼴찌에 그친 삼성으로서는 억울할 수 있는 부분이다.

성별 임금 격차를 포함한 다양성과 포용성 분야는 TSMC(9점)>인텔=애플(각각 7점)>삼성전자=SK하이닉스(6점) 순서다. 지속가능한 경영관행 분야는 TSMC=삼성전자=SK하이닉스(각각 10점)>애플(9점)>인텔(8점) 순서다. 삼성과 SK가 공동 1위에 오른 데는 최고경영자-근로자 임금격차에서 모두 최고점(3점)을 얻은 게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한국기업들은 SDPI가 요구하는 최하위 25% 근로자의 중간임금이 아니라 전체 근로자 평균임금 정보만 제공하고 있다. SDPI의 기준을 충족할 경우 평가 점수가 더 낮아질 가능성이 있다.

종합적으로 보면, TSMC가 전체 합산은 물론 개별 영역에서도 고르게 좋은 평가를 받았다. 한국 기업들은 ESG 영역 가운데 지배구조(거버넌스)에 해당하는 다양성과 포용성 분야에서 상대적으로 취약점을 노출했다. 애플은 환경 분야 평가에서 잇점을 안고 있음에도 전체 합산에서 하위권, 환경 분야에서 중위권에 각각 그쳐 개선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ESG와 지속가능성 평가가 제대로 이뤄지려면 기업들의 투명한 정보공개가 필수다. 애플은 14개 평가지표 중에서 4개의 정보를 공개하지 않았다. 삼성전자는 2개, 인텔과 SK하이닉스는 각각 1개씩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다. 평가에서 1위를 차지한 TSMC는 모든 정보를 공개했다.

SDPI에 기반한 빅5의 지속가능성 이행 성과를 국내외 평가기관들이 발표한 ESG 점수와 비교하면 흥미로운 결과를 얻게 된다. 세계적 평가기관인 미국의 MSCI(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는 빅5의 ESG 성과에 대해 2022년 기준으로 TSMC(AAA)>인텔(AA)>삼성전자=SK하이닉스(A)>애플(BBB) 순서로 평가했다. MSCI는 올해 인텔에 대해 한단계 높은 AAA를 부여했다. MSCI가 빅5 중에서 TSMC와 인텔을 가장 높이 평가한 것은 SDPI와 일치한다. 애플을 상대적으로 낮게 평가한 것도 동일하다. 다만 SDPI가 삼성전자를 가장 낮게 평가한 반면 MSCI는 애플을 가장 낮게 평가했다.

하지만 SDPI와 MSCI는 절대 평가에서 차이를 보였다. MSCI의 평가등급은 AAA(아주 좋음), AA(좋음), A(양호), BBB(보통), BB(미흡), B(나쁨), CCC(아주 나쁨) 등 7단계로 나뉜다. TSMC와 인텔은 최고 수준을 받았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양호 수준을 받았다. 애플만 보통 수준이다. SDPI 평가에서는 빅5 모두 100점 만점에 50~60점대에 그친 것과 대비된다.

국내 평가기관인 한국ESG기준원은 삼성전자에 A, SK하이닉스에 B+를 부여했다. 한국ESG기준원의 7단계 등급 중에서 삼성은 세 번째(양호), SK는 네 번째(보통)에 해당한다. MSCI보다는 한국ESG기준원의 평가가 SDPI와 더 유사한 것을 알 수 있다.

여러 ESG 내지 지속가능성 평가지표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옳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하지만 이번 SDPI 평가를 통해서 유명 평가기관들로부터 좋은 ESG 점수를 얻은 기업들도 지속가능성 이행 성과는 미흡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한 것은 이번 연구의 중요한 발견이라고 할 수 있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의 SDPI 연구보고서는 ‘지속가능성 임계치 제시’ 방식인 14개 지표 외에 관련 성과를 수집 또는 관리하는지 여부를 살펴보는 ‘변혁적 정보 공개’ 방식의 8개 지표에 대한 평가 결과도 담고 있다. SDPI는 이들 지표의 경우 관련 성과를 수집 또는 관리하고 있는지 여부에 따라 ‘예스(Yes)’ 또는 ‘노(No)’로 평가하거나, 단순히 데이터 수치를 공개하는 방식을 취한다. 직장 내 괴롭힘과 차별, 노조 가입률 및 단체교섭 적용과 같은 변혁적 정보 공개형 지표의 평가결과도 제14회 아시아미래포럼에서 공개될 예정이다.

또 포럼에서는 오스트리아의 ESG 평가 및 컨설팅 전문기업인 ‘머니케어’의 카타리나 헬조그 대표가 직접 참석해 30개국 166개 상장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SDPI 평가 결과를 발표한다. 머니케어는 SDPI 전체 평가지표 61개 중에서 12개를 선별했다. 머니케어는 인공지능(AI)를 이용해서 기업들의 공개정보에서 데이터를 추출했다.

국제사회가 ESG 및 지속가능 정보 공시 기준의 최종안을 잇달아 발표하고 있다. 이르면 내년부터 본격 시행될 예정이다. 한국 정부도 2025년부터 단계적으로 ESG 공시를 의무화하기 위해 구체적인 로드맵을 마련 중이다. 하지만 기업들은 준비 부족을 내세워 시행연기를 압박하고 있다. ESG 및 지속가능 정보 공시는 더는 거스를 수 없는 국제적 흐름으로 자리 잡고 있어, 국내 기업도 글로벌 스탠다드에 부합할 수 있도록 내실 있는 준비를 서두를 필요가 있다.

이일청 선임연구조정관은 “글로벌 IT산업 빅5에 대한 SDPI 평가를 통해서 지속가능성 측정은 단지 기업들이 어떻게 노력하고 있는지 뿐만 아니라 실제로 기업들이 달성해야할 지속가능성 기준(임계치)는 무엇이고, 이와 비교하여 얼마만큼 달성하고 있는가를 측정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면서 “한국이 2025년 ESG 공시 의무화에 대비해 진정한 지속가능성 보고 체계를 마련하는데 기여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곽정수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기자

SDPI 성과지표란?

유엔 산하 연구기관인 유엔사회개발연구소(UNRISD)가 개발한 지속가능성 성과평가 지표이다. 2022년 베타버전을 발표한데 이어 올해 10월 중 최종버전이 완성될 예정이다. 전 세계적으로 ESG 평가지표는 4천여개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 상당수는 기업들 입맛에 맞는 내용들 위주로 평가하고 있어, ‘ESG 워싱’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이런 문제를 개선하지 않으면 유엔이 결의한 빈곤과 질병, 기후변화 대응 등 17가지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달성에 기업이 제대로 기여할 수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SDPI는 기업이 ESG 워싱을 극복하고, 유엔의 지속가능발전목표 달성에 제대로 기여하도록 이끌기 위해 개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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