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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세 집착은 ‘네스호의 괴물’ 찾기…효과 검증된 적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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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미 매사추세츠대(MIT) 에스테르 뒤플로 교수(오른쪽)와 아브히지트 바네르지 교수가 지난 22일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세계 빈곤 퇴치를 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미 매사추세츠대(MIT) 에스테르 뒤플로 교수(오른쪽)와 아브히지트 바네르지 교수가 지난 22일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세계 빈곤 퇴치를 위한 인류 능력을 향상한 공로로 2019년 노벨 경제학상을 공동 수상한 미 매사추세츠공대(MIT) 에스테르 뒤플로 교수와 아브히지트 바네르지 교수가 지난 22일 서울 명동에서 <한겨레>와 만나 인터뷰했다. 부부 사이인 이들은 서울 국제 안심소득 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했다. 뒤플로는 효과가 검증된 적 없는 감세에 집착하지 말라고 조언했고, 바네르지는 성장 지상주의가 아닌 삶의 질 향상으로 경제의 목표를 전환하라고 충고했다.

―한국의 조세 부담률(GDP 대비 조세 비중)은 약 20%로 프랑스의 절반이다. 윤석열 정부 들어서 감세 정책을 펴는데 특히 기업의 투자 촉진과 경쟁력 강화를 내세워 법인세를 인하했다. 아서 래퍼의 이론이 여전히 큰 힘을 발휘하고 있는데 효과가 있다고 보나?

“(뒤플로) 래퍼 곡선은 어떤 정책으로도 실증된 적이 없다. ‘네스 호의 괴물’처럼 신화 가운데 하나다. 래퍼에 사로잡혀서는 안 된다. 한국 사례를 분석하지 않아서 한국에서 법인세를 낮췄을 때 어떤 효과가 나타날지 모르겠지만 미국이나 유럽 여러 나라에서 연구된 감세의 인센티브 효과는 실제 부분적으로나, 크게 나타나지 않았다.”

래퍼 곡선은 세율이 어느 수준을 넘어서면 되레 세수가 줄어든다는 미 시카고대 교수를 지낸 아서 래퍼의 주장으로 감세를 뒷받침하는 강력한 논거다. 뒤플로 부부는 래퍼 곡선을 실증적 논거 없는 ‘나쁜 경제학’의 대표 사례로 꼽는다. 네스 호의 괴물은 영국 스코틀랜드 지방의 네스 호수에 산다는 정체불명의 동물로 온갖 괴담과 설화를 낳았지만 한 번도 그 실체가 확인된 바 없다.

―한국 사회는 성장에 집착하고 있다. 이 또한 ‘나쁜 경제학’의 사례로 보나.

“(바네르지) 그렇다. 성장에 대한 집착은 완전히 잘못됐다고 본다. 성장률은 계속 떨어져 왔고 시시각각 둔화하고 있다. 한국만이 아니라 중국도 직면한 현실이다. 한국은 모든 사람이 상당히 괜찮은 삶을 살 수 있는 충분한 부가 있다. 그렇다면 좋은 삶이 뭔지, 이를 위한 효과적인 재분배를 어떻게 할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 한국과 같은 좋은 사회가 맞닥뜨린 도전은 사람들이 겪는 엄청난 압박감이다. 예를 들어 학생들은 경쟁적 세상을 배우고, 사람들은 다른 나라에 맞서 이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다른 나라를 이기는 게 아니라 삶의 질을 높이는 게 중요하다. 이를 수용한 나라가 고소득 국가로 더 쉽게 전환할 수 있다. 덴마크와 같이 삶의 질에 더 중점을 두는 나라가 실제 더 질 높은 삶을 이뤄냈다. 한국은 자신들이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 강박에 사로잡혀 있다. 나는 한국이 성공했다고 본다. 부유한 나라가 됐다. 더 성공해야 한다는 스트레스를 덜 받으면서 성공을 자축하면 좋겠다. 1인당 국민소득(지난해 약 3만3천 달러)이 5만 달러나 7만 달러가 된다는 게 삶의 질을 끌어올리는 데 어떤 의미가 있는지 사실 명확하지 않다. 아이들이 하루 18시간씩 공부하지 않아도 되고 노인들이 자살하지 않는 사회가 더 나은 사회다.”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미 매사추세츠대(MIT) 에스테르 뒤플로 교수가 지난 22일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한국은 조세와 재정을 통한 재분배 효과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작은 나라다. 정부와 관료가 공공 정책을 통한 불평등 개선에 소극적인 탓도 크다.

“(뒤플로) 분배란 게 항상 어렵다. 분배한다고 하면 사람들은 자신이 누군가를 위해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고 받아들인다. 놀랍게도 가장 많은 수혜를 보는 가난한 사람들을 포함해 모두가 분배에 반대하는 것처럼 보인다. 모든 나라가 마찬가지이지만 정치적으로 매우 까다로운 주제다. 또 하나 짚고 넘어갈 것은 전 세계적으로 세금을 매긴 뒤 불평등은 과세 전 불평등과 아주 밀접한 관련성이 있다는 사실이다. 개별적 빈곤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재정적 재분배 시스템이 중요하지만, 불평등의 큰 전투는 임금 책정과 이익 공유와 같은 제도들에서 치러진다. 한국은 상위 0.0001%가 성층권을 뚫을 만큼의 큰 몫을 가진 미국보다 상황이 훨씬 낫다. 일단 (불평등이) 그 정도 수준에 도달하면 빠져나오기 어렵기 때문에 거기에 도달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 미국에서는 조세(감세를 의미)만이 아니라 노조의 발달(조직률)과 단체 협상력, 금융의 팽창 그리고 천문학적인 (임원) 연봉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불평등을 개선한다고 할 때 이런 것들을 다 주시해야 한다.”

―한국에서 복지나 사회적 재난 대응 수단으로서 현금(보조금)을 지급하게 되면 근로의욕이 떨어져 적게 일하고 대신 복지 서비스에 더 의존하게 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실제 팬더믹 기간 한국은 재정 특히 현금 지원이 선진국 가운데 가장 적었다.

“(뒤플로) 부자인지 가난한 나라인지 상관없이 전 세계적으로 소득 이전 프로그램 수혜자들이 일을 더 적게 하게 된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한국에서는 어떤지 정확히 모르지만, 소득을 보장해주는 ‘안심 소득’ 프로젝트가 실험 중이다. 그 결과를 봐가며 정책을 조정할 수 있다.”

안심 소득 사업은 기준 소득 대비 부족한 가구 소득의 일정 비율을 채워줌으로써 소득이 낮을수록 더 많이 지원하는 소득보장제도다. 지난해부터 서울시가 기준 중위소득 50% 또는 85% 이하이면서 재산이 3억2600만원 이하 가구를 대상으로 2~3년간 지원하는 시범사업으로 비교집단(3800가구)을 포함해 모두 5400가구가 참여했다.

“(바네르지) 뒤플로 말에 동의한다. 수년 동안 연구해왔지만 적어도 가난한 나라에서 현금 이전(지원)을 받는 사람들이 일을 적게 한다는 증거는 없다. 일부에서는 더 많이 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에 일해야 하는 일부 노인들의 경우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 젊은 사람들은 할 일이 없는 상태를 정말 싫어한다.”

지난 22일 한겨레와 인터뷰하는 미 매사추세츠대(MIT) 에스테르 뒤플로 교수와 아브히지트 바네르지 교수의 모습

―질문을 드린 까닭은 한국에서 대부분 관료는 현금 지원이 부정적 효과를 불러올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뒤플로) 흥미로운 사실은 정치인만이 아니라 다수 시민도 그와 같은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바네르지) 사람들에게 공짜로 현금을 준다는 전제 아래 ‘당신은 일을 그만두시겠습니까’(A)라고 물은 뒤 ‘다른 사람들도 일을 그만둘 거라고 보십니까’(B)라고 묻는 실험을 한 적이 있다. 모든 사람이 자신은 일을 그만두지 않을 거라고 답했지만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들은 모두 일을 그만둘 것이라고 답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정부가) 현금 지원을 해주는 것에 반대하는 터무니 없는 상황이 빚어진다. (공짜로 돈이 생기면 타인이 일을 그만둘) 커다란 인센티브가 있다고 믿지만 이를 뒷받침할 증거는 전혀 없다.”

―한국의 상대적 빈곤율은 미국보다 조금 낮은 15% 수준이지만 노인의 상대적 빈곤율은 오이시디 가운데 가장 높은 40%에 이른다.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하는 가운데 연금 성숙을 기다리는 것 외에 적극적인 정책 시도가 부족해 보인다.

“(바네르지) 한국과 같은 고도성장 국가에서 반드시 나타나는 현상이다. 노인 빈곤율이 굉장히 높은 것은 인구 구조적인 측면에서 보면 일시적 문제다. 경제 성장률이 떨어지고 있기 때문에 세대 간 격차는 앞으로 줄어들 것이다. 자녀가 부모를 부양한다면 세대 간 소득 격차는 중요하지 않을 수 있지만 출생률이 떨어지고 자녀 수가 주는 인구 구조의 변화가 나타나는 가운데 자녀로부터 부모 부양을 기대하긴 어렵다.”

“(뒤플로) 해결책은 재분배다. 노인 세대에게 그들의 저축을 넘어선(저축과 기준 소득 간 차이 만큼) 현금 이전이 필요하다. 정부 예산으로 이뤄져야 한다. 서울 안심 소득 대상은 기준 중위소득 50~80% 이하인데 수혜자 상당수가 노인 가구다. 통상의 분배 시스템과 기준 소득의 간극을 메워줘야 한다. 한국은 그걸 충분히 감당할만한 부유한 나라다.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지만 어려운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경남 밀양시니어클럽 스마트팜에서 어르신들이 수직정원에 들어갈 식물을 가꾸고 있다. 경남도 제공

―한국의 고령자 고용률이 빠르게 높아져 36%를 웃돈다. 일본보다 10%포인트 높다. 건강한데도 일하지 않으면 게으르다고 생각하는 문화적 특징도 있겠지만 상대적 빈곤율이 높은 상태에서 사회 안전망이 부족하기 때문에 빚어지는 현상 아닌가?

“(바네르지) 가혹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노동력 공급이 부족한 나라에서 왜 일하지 않냐고 말하고 싶다. 노동은 소득 보조금을 주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건강하다면 일하는 게 나쁘지 않다. 엄청난 인구학적 변화를 맞이한 나라에서 노인들이 일하는 건 중요하다. 되레 이 점을 활용해 한국형 실험으로 발전시킬 여지가 있다. 폐지를 모으거나 영하 15도에 밖에서 일하도록 하는 게 아니라 제대로 된 일자리를 줘야 성공할 수 있다”

“(뒤플로) 약간 다른 말을 하고 싶다. 노인들이 태어났을 때 한국은 가난했고 그들 중 상당수는 평생 가난하게 살았다. 노인 36%의 상당수는 일찍부터 일을 시작했고 오랫동안 해왔다. 건강한데 왜 일하지 않냐는 말도 일리 있다. 또 일을 통해 자신이 쓸모 있고 뭔가 기여하고 있다고 느끼게 되는데 거기서 비롯된 존엄성이 없는 세상은 절망적이다. 그런데 일할 만큼 진짜 건강한지가 정말 중요하다. 한국의 건강보험과 교육 시스템이 노인에게 좋은 편은 아니다. 노인이 일에 내몰려서는 안 된다. 은퇴할 때까지 오랫동안 해왔던 것처럼 계속 무거운 물건을 짊어지거나 힘든 육체노동을 해선 안 된다.”

인터뷰는 내용을 압축하고 문답의 순서를 바꿨다. 두 교수께 양해를 구하고 한국의 상황에 맞춰 질의했다.

글 류이근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기자 , 노영준 보조연구원, 사진 김정효 기자

뒤플로와 바네르지는 누구?

뒤플로 교수는 여성으로는 두 번째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고 앞서 2010년 40살 미만 미 경제학자에게 주는 존 베이츠 클라크 메달을 받았다.

바네르지 교수도 2019년 뒤플로 교수와 함께 노벨상을 수상했다. 2015년 결혼한 두 사람은 미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에서 경제학 교수로 있다. 둘은 빈곤을 화두로 실증 연구를 해왔다. <힘든 시대를 위한 좋은 경제학>(생각의 힘) 등을 함께 썼다. 두 사람은 세계 100대 사상가(‘포린 폴리시’ 등)에 이름을 올렸을 만큼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영향력이 큰 경제학자다.

빈곤의 악순환을 끊으려는 연구와 정책

바네르지와 뒤플로 교수는 이론에 머물지 않고 실천하고 행동하는 학자다. 빈곤 연구에 전념해온 두 사람이 몸담은 미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에 2003년 빈곤퇴치연구소(J-PAL)를 세워 과학적 증거를 바탕으로 한 정책 수립에 힘써 왔다. 스웨덴 왕립과학원은 이들에게 노벨상을 주면서 “단 20년 만에 그들의 새로운 실험 기반 접근 방식은…빈곤을 줄이는 조치를 설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평가했다. ‘무작위 통제 실험’으로 불리는 그 방법은 원래 의학 분야에서 사용하는 실험기법으로 무작위로 집단을 나눈 뒤 조치가 취해진 실험군과 그렇지 않은 대조군을 비교해 효과를 측정한다.

한때 전 세계 말라리아 사망자가 한 해 180만 명에 이르렀으나 2005년에서 2016년 사이 75% 줄었다. 살충제를 바른 모기장의 보급이 큰 역할을 했다. 모기장 배분 방식을 놓고 공짜로 할 거냐 판매할 거냐를 놓고서 논쟁할 때 무작위 통제 실험 결과는 무료 배분이 말라리아와 싸우는 데 더 효과적이라는 걸 실증했다. 두 사람이 2011년 함께 쓴 ‘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다’란 책은 이런 실증 증거를 담아 정책 결정자들에게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둘은 줄곧 가난한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과학적으로 분석한 뒤 어떤 접근이 빈곤의 악순환을 끓을 수 있을지 연구해왔다. 3년 전 펴낸 ‘힘든 시대를 위한 좋은 경제학’도 그러한 노력의 모음이다.

류이근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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