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14일 서울국제음악제 폐막공연 무대에 오르는 영국 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지휘자 바실리 페트렌코. 오푸스 제공
아버지는 러시아, 어머니는 우크라이나 사람이다. 어머니는 우크라이나에서 피란했지만, 85살 아버지는 러시아에 거주한다. 영국 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이끄는 러시아 태생 지휘자 바실리 페트렌코(47)에게 두 나라의 전쟁은 더욱 특별할 수밖에 없다.
오는 7일부터 14일까지 이어지는 서울국제음악제 폐막 무대에 오르는 그는 서면 인터뷰에서 “내 한쪽이 다른 한쪽과 싸우는 것 같다”며 착잡해 했다. 하지만 ‘반 푸틴’ 진영의 앞자리에 섰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비판하는 성명을 냈고, 러시아 국립아카데미 교향악단 예술감독 직에서도 사퇴했다.
그에겐 꿈이 있다. 어려움에 빠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음악가들을 한데 묶어 오케스트라를 창설하는 것. “두 나라의 뛰어난 음악가 중에 나라를 떠날 수밖에 없는 이들이 많아요. 이들만 모여도 훌륭한 오케스트라가 될 겁니다.” 그러면서 ‘서동시집 오케스트라(East-West Divan Orchestra)’를 본보기 모델로 꼽았다. 유대인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81)과 팔레스타인 출신 비평가 에드워드 사이드(1935~2003)가 팔레스타인 등 중동과 이스라엘 음악가들을 모아 만든 악단이다. 그는 “사람들을 묶어주고 서로 다른 문화의 차이를 이어주며, 평화롭게 함께 살고 서로 돕게 하는 것이야말로 음악의 역할”이라며 “러시아-우크라이나 연합 오케스트라를 만들 수 있는 적절한 지원을 고대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서울시향을 지휘해 브루크너 교향곡 2번을 지휘했는데, 덴마크 지휘자가 갑자기 내한을 취소하는 바람에 긴급히 투입된 ‘대타’였다. 어렵게 일정을 맞춰 롯데콘서트홀 무대에 대신 지휘봉을 잡은 그는 뛰어난 연주를 들려줬다. ‘대타가 홈런을 쳤다’는 말이 나왔고, 서울시향 차기 지휘자 후보로도 거론됐다. 당시 기억을 묻자 “브루크너의 모든 교향곡을 지휘해 봐서 2번 교향곡도 곧바로 지휘할 수 있었다”도 기억했다.
그는 이번에 서울국제음악제(SIMF·심프) 오케스트라를 지휘해 브람스의 ‘비극적 서곡’과 교향곡 제1번을 들려준다. “브람스는 대번에 그의 음악과 스타일을 알아볼 수 있는 독특한 작곡가죠. 그의 작품 모두가 위대해서 어느 한 곡이 다른 곡보다 못하다고 하기 어려워요.” 그는 “브람스를 듣는 것은 영적이고 철학적인 여정”이라며 “그래서 어느 특별한 순간이 아니라 공연의 모든 순간을 들어보길 권한다”고 했다. 이번 공연에선 작곡가 류재준의 트럼펫 협주도 초연한다. 페트렌코는 “트럼펫 협주곡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인데 새로운 곡을 연주하는 건 기쁜 일”이라며 “새로운 작품을 선보이는 것이야말로 예술이 박물관 전시품이 아니라 살아 있는 예술이 되게 하는 일”이라고 반겼다.
“지휘봉은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한다.” 스승 일리야 무신(1903~1999)이 그에게 해준 이 말을 지금도 늘 가슴에 새긴다고 했다. “소리를 내는 건 지휘자가 아니라 오케스트라 단원들이죠. 지휘자의 역할은 그들이 최고의 연주를 하도록 돕는 일입니다.”
그는 “위대한 지휘자들의 공연을 볼 수 있었던 건 큰 행운”이라며 예브게니 므라빈스키(1903~1988)의 마지막 연주, 레너드 번스타인(1918~1990)의 러시아 첫 방문, 그리고 클라우디오 아바도(1933~2014)와 게오르그 솔티(1912~1997), 베르나르트 하이팅크(1929~2021) 등 지휘자들의 이름을 떠올렸다. 마리스 얀손스(1943~2019), 유리 테미르카노프(85)와 함께했던 리허설도 거론했다.
“지휘자들도 단 한 명의 슈퍼히어로가 아니라 수많은 올림포스의 신들이 있다.” 그에게 영향을 준 지휘자는 한명이 아니란 얘기였다.
영국 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이끄는 러시아 태생 지휘자 바실리 페트렌코(47). 로열 필하모닉 누리집 갈무리
그는 라흐마니노프와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전집 음반으로 이름을 떨쳤다. 런던심포니, 런던필, 비비비(BBC)심포니, 필하모니아와 함께 이른바 ‘영국 빅5’ 악단에 속하는 로열 필하모닉 상임지휘자를 맡은 뒤엔 말러 교향곡 전집도 녹음 중이다. 7년 동안 오슬로 필하모닉을 이끌다 스타로 떠오른 27살 신예 지휘자 클라우스 메켈레에게 바톤을 넘겨준 지휘자가 바실리 페트렌코였다.
임석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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