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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에서 뉴욕, 할리우드로… 메소드 연기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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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성난 황소’(1980)에서 실존 복서였던 제이크 라모타를 연기한 배우 로버트 드니로. 한겨레 자료사진 메소드 20세기를 지배한 연기 테크닉 아이작 버틀러 지음, 윤철희 옮김...

영화 ‘성난 황소’(1980)에서 실존 복서였던 제이크 라모타를 연기한 배우 로버트 드니로. 한겨레 자료사진
메소드

20세기를 지배한 연기 테크닉

아이작 버틀러 지음, 윤철희 옮김, 전종혁 감수 l 에포크 l 4만원

배우가 어떤 배역에 완전히 녹아든 연기를 보여줄 때, 사람들은 ‘메소드 연기’라며 환호한다. ‘조커’의 호아킨 피닉스나 ‘마더’의 김혜자 등이 그런 예일 것이다. 하지만 메소드는, 미국의 평론가이자 연출가 아이작 버틀러의 ‘메소드’에 따르면, 단순한 연기 방식이 아닌 “변화를 불러오고 혁명을 일으킨 현대적인 예술운동”이면서 “20세기의 위대한 생각”이다. “세상과 자신을 바라보는 방식을 바꿔버릴 인간 경험을 상상하는 새로운 방법”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사실 19세기 말까지 연기는 “대개의 경우 기술적인 것”이었다. “배우가 캐릭터의 상태를 경험한다는 것” 자체가 광기와 다르지 않다는 인식 때문이었다. 그 편견에 맞선 이가 러시아의 배우이자 연출가 콘스탄틴 스타니슬랍스키였다. 그는 “페레지바니예(perezhivanie)”, 즉 “배우와 캐릭터가 융합된 상태이자 두 자아가 하나로 어우러진 상태”의 배우 연기를 이상형으로 보았다. 모름지기 배우라면 “배역을 경험하면서 캐릭터가 처한 상상 속 현실을 충실히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시스템”이라는 연기 테크닉으로 발전시켰다. “돈벌이를 위한 연기”와 “재현”을 뛰어넘어 “매일 밤 그 역할을 진정으로 재경험(re-experience)하려” 애써야만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유럽 투어 공연에 매진하던 스타니슬랍스키를 비롯한 모스크바 예술극장 단원들이 미국 뉴욕에 도착한 것은 1922년 12월. 일단의 신문은 모스크바 예술극장이 “폭력으로 미국 정부를 전복할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고 비난했지만, “미국의 대중문화” 그 자체이자 “자본주의가 세운 환상의 나라”였던 브로드웨이는 환호했다. 시스템은 미국 연극 무대를 사로잡았는데, 훗날 연극연출가가 된 리 스트라스버그는 “아무리 작은 역할도 진짜 사람처럼 느껴졌다”고 회고했다. 1930년대 초반 스트라스버그와 해럴드 클러먼 등이 창단한 ‘그룹 시어터’는 시스템을 미국 연극에 적용하여 “메소드”라는 연기 테크닉을 내놓았다.

메소드 연기의 선구자로 꼽히는 배우 말런 브랜도. 한겨레 자료사진
하지만 기억을 소환하고, 그것을 삶의 방식에 투영하고, 마침내 연기와 접목시키는 일은 사실 고된 작업이었다. 결국 메소드는 분열했다. 배우 스텔라 애들러는 감정에 짓눌리지 않는 행동과 상상력을 강조했고, 할리우드 배우들의 스승이라 불리는 샌퍼드 마이즈너는 반복 훈련을 강조했다. “영화를 더욱 물리적이고 더욱 본능적인 매체”로 만든 사운드가 가미된, 즉 유성영화는 “새로운 연기 스타일”을 요구했고, 연극 무대 메소드 배우들이 적임자들이었다. 그렇게 메소드는 20세기 연기의 중심에 섰다. 하지만 1970년대 이후 “블록버스터와 인플레이션 위기”는 물론 “사회의 일원”이기보다 “시장의 소비자”로 변해버린 대중의 시선 등의 영향으로 메소드는 내리막길을 걸었다. 지은이는 그 변천사를 말런 브랜도, 제임스 딘, 로버트 드니로, 알 파치노 등의 사례를 통해 유려하게 설명한다.

지은이가 연극과 영화의 연기 방식인 메소드를 일러 “20세기의 위대한 생각”이라고 한 이유는, 그 자체로 20세기의 정치·경제적 격변은 물론이고 그것의 바탕이 된 인간 삶의 양식을 총체적으로 반영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메소드’는 20세기 문화의 한 단면을 ‘메소드’라는 방식을 통해 면밀하게 고찰하는 읽음 직한 책이다. 식상한 이야기지만, 배우는 아닐지라도 삶의 “사실성, 진실성, 자아를 갈구”하는 우리 모두는, 메소드한 삶을 사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장동석 출판도시문화재단 사무처장, 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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