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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겨울, 극장서 보면 극대화될 아름다움…예술영화 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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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빙: 어떤 인생’. 티캐스트 제공 극장 관객이 줄면서 대규모 전투장면을 담은 대작이나 화사한 색감으로 빛나는 애니메이션 같은 스펙터클 영화가 극장의 주인이 돼가고 있다. ...

영화 ‘리빙: 어떤 인생’. 티캐스트 제공

극장 관객이 줄면서 대규모 전투장면을 담은 대작이나 화사한 색감으로 빛나는 애니메이션 같은 스펙터클 영화가 극장의 주인이 돼가고 있다. 하지만 화려한 화면은 극장이 주는 즐거움의 일부다. 스크린에서 흘러나오는 빛에 온전히 몰두하게 해주는 어둠과 정적, 긴장과 설렘이 떠도는 상영관의 공기는 섬세한 예술영화의 감동을 더해준다. 극장에서 봐야 그 아름다움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예술영화들이 연말 극장가에 줄줄이 개봉한다.

13일 개봉한 ‘리빙: 어떤 인생’은 2017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가즈오 이시구로가 각본을 쓴 작품이다. 이시구로가 어린 시절 감명받은 구로사와 아키라의 ‘이키루’ 리메이크를 제작진에 제안해 영화화됐다. ‘산다’는 뜻의 ‘이키루’는 전후 일본을 배경으로 평범한 공무원이 시한부 선고를 받고 다른 삶을 살아보고자 애쓰는 이야기다. ‘리빙’은 50년대 초 런던으로 배경을 옮겼다. 좀처럼 마음을 드러내지 않는 영국신사인 윌리엄스는 아들에게도 병에 대해 말을 못하고 남은 인생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망연해 있다가 공무원 조직의 관료적 행태로 묻어뒀던 민원, 가난한 동네의 위험한 폐허에 놀이터를 지어달라는 주부들의 소망을 실현시키기로 마음먹는다. 한국 관객들에게는 ‘러브 액추얼리’의 익살스러운 노인으로 기억되는 빌 나이가 전형적인 영국신사 윌리엄스를 연기했고 화면은 1950~60년대 고전영화같은 우아함으로 빛난다. 이시구로는 “평생 ‘이키루’의 메시지에 따라 살아왔다”고 말한 바 있는데, 그 메시지가 영화 속 편지글에 녹아있다. “어떤 목표를 위해 매일 애쓰는 건지 확신할 수 없는 날들이 찾아오면 (…) 우리의 작은 놀이터가 완성된 순간에 느꼈던 소박한 보람을 떠올려보길 바랍니다.”

영화 ‘조이랜드’. 슈아픽처스 제공

같은 날 개봉한 ‘조이랜드’는 파키스탄 영화라고 믿기 힘들 만큼 대담하고 가슴 절절한 퀴어영화다. 지난해 파키스탄 영화 역사상 처음으로 칸영화제에 초청받았고 ‘주목할 만한 시선’ 심사위원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파키스탄 정부는 이 영화의 자국내 상영을 금지했다. 늙은 아버지, 형네 가족들과 함께 살면서 가족 뒤치닥거리를 하던 하이더르는 돈벌이를 찾다가 클럽에서 일하는 트랜스젠더 뮤지션 비바의 백댄서가 된다. 미용실에서 일하던 아내 뭄타즈와 잘 지내던 하이더르는 비바에게 빠져든다. 이 영화로 장편 데뷔한 사임 사디크 감독이 “조국에 보내는 가슴 아픈 러브레터”라고 말한 것처럼 이 영화는 두 사람의 금지된 사랑에만 몰두하는 게 아니라 파키스탄의 가부장적 문화, 여성에 대한 억압, 강요되는 남성성, 성소수자에 대한 폭력을 섬세하게 다룬다. 특히 여성 캐릭터들을 빼어나게 그리면서 이슬람 문화에 대한 이해를 넘어 보편적인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성공한다. 최연소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이 영화의 제작자인 말랄라 유사프자이는 “가부장제가 남성, 여성, 아이들 모두에게 해를 끼치는 방식들을 다룬 영화이며, 여성의 우정과 연대의 치유력에 대한 영화이고, 자신의 꿈을 버리고 주변 사회에 순응한 대가가 무엇인지 얘기하는 영화”라고 소개했다.

영화 ‘사랑은 낙엽을 타고’. 찬란 제공

핀란드 감독 아키 카우리스마키가 은퇴를 번복하고 6년만에 내놓은 ‘사랑은 낙엽을 타고’는 퉁명스러운 말투로 더할 수 없이 따뜻한 메시지를 전하면서 거장이란 무엇인가를 새삼 확인하게 하는 걸작이다. 슈퍼마켓에서 해고된 안사와 술이 유일한 낙인 홀라파는 당장의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가난한 노동자다. 둘은 우연이 몇 번 겹치며 데이트를 하다가 홀라파의 술 문제 때문에 헤어진다. 홀라파는 술을 끊고 다시 안사를 찾아가다가 사고를 당한다. 이 영화에서 두 사람의 대사보다 길게 나오는 건 가난한 안사가 집에서 늘 듣는 라디오 속 우크라이나 전쟁의 피해 현황이다. 세계는 전쟁으로 무너져가고 노동자들의 삶은 갈수록 더 팍팍해진다. 이들의 연애는 달콤한 연애담의 외피를 단 한올도 걸치지 않는다. 그래서 도리어 은근한 온기가 서서히 피어오른다. “무의미하고 불필요한 전쟁에 시달리던 중,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주제에 관해 쓰기로 결심했다. 사랑에 대한 갈망과 연대, 희망, 타인에 대한 존중, 자연, 삶과 죽음이 바로 그것이다”라는 감독의 말처럼 영화는 진짜 위로는 고통스러운 현실에 대한 외면이 아니라 직면에서 나온다는 걸 놀랍도록 간결한 방식으로 보여준다. 올해 칸영화제 경쟁부문에서 심사위원상을 수상했다. 20일 개봉.

김은형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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