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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은 묽어져도 회한은 진해지므로, 먼저 떠오르는 마음

Summary

3년 만에 소설집 ‘목소리들’을 펴낸 작가 이승우(64). 그는 작가의 말에 “탄식 없이 슬퍼하고 변명 없이 애도하는 사람이 되려고 한다”고 썼다. 문학과지성사 제공 목소리들 이승...

3년 만에 소설집 ‘목소리들’을 펴낸 작가 이승우(64). 그는 작가의 말에 “탄식 없이 슬퍼하고 변명 없이 애도하는 사람이 되려고 한다”고 썼다. 문학과지성사 제공
목소리들

이승우 지음 l 문학과지성사 l 1만6000원

이번주 한국문학번역상 번역대상을 받은 프랑스 학자 부부(김혜경·장클로드 드크레센조)의 작품은 이승우 작가의 장편 ‘캉탕’(2022년, 공역)이다. ‘지상의 노래’도 먼저 자국에 소개했던 이들은 이승우의 작품을 치켜세우며 “이야기는 하나의 배경일 뿐”이라 말했다. 그의 작품 속 진실은 상징으로 덧대어 둔다는 취지였다.

이승우(64)가 3년 만에 내놓은 소설집 ‘목소리들’이야말로 상징에 의한 상징의 제목을 내걸고 있다. 대부분 2019년 이후 발표된 것들인데 그러모으니 보인다, 지난 시기 이승우는 ‘자책하는 마음’에 온 마음이 징발되었던 것 같다.

표제작 ‘목소리들’은 두 덩이다. 불면하는 엄마의 하소연이 전반부다. 둘째 아들 준호의 자살로 보이는 죽음의 책임자를 추궁한다. 전 남편부터 그가 새삼 준호에게 양도한 차량, 종국에 사건 이틀 전 준호의 만나자던 전화를 받은 ‘나’까지. 형인 나는 국외 출장 중이었다. 그래서 잘 되었다는 생각이 내겐 없지 않다. 소정의 정직을 각오한 나는 더 ‘솔직’하게 준호가 그에 앞서 엄마의 집을 찾았고, 엄마 눈치 때문에 하룻밤 만에 떠났던 사실을 집요하게 들춘다. 후반부다. 엄마는 무심한 형을, 형은 잘난 엄마를 탓하는 두 목소리로만 소설은 구성되는데, 대화 같은 독백이요, 독백 같은 대화다. 다만 이 말들은 들리길 바라는 속엣말이 아니라,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한 데 따른 속앓이를 표상한다. “죽음에 대한 책임으로 자신을 괴롭히기 위해서는 자신이 나쁜 사람으로 남아 있어야 하고, 그래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이건 과연 진실인가. 이런 ‘목소리’를 악용하는 시대를 차라리 대신 변명하려는 작가의 비애가 활자 사이 아른거린다. ‘엄마를 부정해서라도’의 곤박함 같은.

2021년 이상문학상을 받았던 ‘마음의 부력’도 엄마와 두 형제를 주인공으로 한다. 형(성준)은 가난한 예술가였다. 중산층 공무원 생활을 하는 동생(성식)과 퍽 다른 삶을 살다 마흔일곱 횡사했다. 형의 돌연한 부재 뒤 엄마는 성식의 전화에도 “성준이냐” 묻는다. 성식의 아내에게 성식이 당신에게 빌려 간 돈이 있으니 갚으라 한다. 이름과 금전의 이 엉킨 출처가 바로 엄마의 자책하는 마음이란 걸 이승우는 내면으로의 탐찰과 묘사로 설명해낸다. 성식의 상처와 그럼에도 성식이 성준이 돼보려는 마지막 장면까지.

때를 놓치고 아예 그 대상을 잃은 뒤에 온전한 사과란 가능한가. 알 수 없다. 다만 자책의 마음이라도 완성해보려는 안간힘이 바로 이 소설이다. 자책이 애도가 될 때까지 취해질 윤리적 태도를 그렇게 ‘소화전의 밸브를 돌리자 물이 쏟아졌다’에 담았다. 제사에 진은영의 시를 올린 이유다. “죽은 사람에게는 들려주지 못한 것도 많을 텐데/ 노래가 여기저기 떠도는 이유 같은 거/ 그 사람이 꼭 죽어야 했던 이유 같은 거/ 그 이유가 여기저기 떠도는 노래 같은 거”(‘사실’ 일부)

그러니 자책 말고 무엇이 마음 위로 떠오를 수 있겠는가.

임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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