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 연광철이 지난 3일 우리 가곡 공연에 이어 오는 7~8일 바그너의 오페라 아리아들을 노래한다. 경기아트센터 제공
“온돌방에서 한복 입고 지내다 직장에 출근하는 기분이랄까요.” 한국 가곡 독창회 마치고 1주일 만에 독일 오페라로 갈아타는 느낌을 베이스 연광철(58)은 이렇게 표현했다. 지난 4일 서울 광화문 카페에서 만난 그는 “그들의 음악에 그들의 옷을 입어야 하는 시간이 된 것”이라고 했다.
연광철은 오는 7일(경기아트센터)과 8일(예술의전당) 바그너의 오페라 아리아들을 부른다. ‘탄호이저’,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트리스탄과 이졸데’에 나오는 베이스 아리아다. 홍석원이 지휘하는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함께다. 앞서 지난 3일엔 예술의전당에서 ‘보리밭’, ‘그대 있음에’ 등 우리 가곡들을 노래했다. 최근 ‘풍월당’이 발매한 한국 가곡 음반 수록곡들이다. “한국어 노래는 뒤쪽 후두부를 울려 성대가 피곤해져요. 독일어 노래는 연속되는 자음 발성이 중요하죠.” 그는 “언어에 따라 발성과 창법이 달라 성악가는 자신만의 포인트를 연구해야 한다”고 했다.
연광철이란 이름 앞엔 ‘세계적인 베이스’, ‘바그너 전문 가수’란 수식이 붙는다. 2018년엔 독일 ‘궁정가수’ 칭호도 받았다. 그런 그에게도 바그너의 아리아를 하려면 ‘그들의 옷’으로 갈아입는 절차가 필요하단 얘기다.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바그너 아리아를 제대로 소화하려면 목소리가 거칠고 성량이 커야 한다. 성악을 관현악의 일부로 여긴 바그너는 아리아에 여러 제약 요소를 뒀다. ‘바그너 가수’란 별도 영역이 있을 정도다.
베이스 가수가 피아노 반주가 아니라 오케스트라와 함께하는 공연은 좀처럼 접하기 어렵다. 연광철도 “이런 형태는 별로 본 적이 없어서 고민을 좀 했다”며 “성공하면 다른 공연도 해볼까 하는 생각”이라고 했다. 이번 공연은 바그너 오페라의 관현악과 아리아를 번갈아 들려준다. ‘탄호이저’의 ‘입장행진곡’에 이어 아리아 ‘친애하는 음유시인들이여’가 흐르고, ‘트리스탄과 이졸데’ 1막 전주곡 다음엔 ‘마르케 왕의 독백’이다. 연광철은 “바그너의 오페라에 등장하는 왕과 영주들은 한결같이 우유부단한 성격”이라며 “가사의 내용을 미리 살펴보고 들으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은 바이로이트 극장에서 바그너 오페라만 공연한다. 성악가들에겐 무대에 선다는 것 자체가 영예다. 그 무대에 몇번이나 올랐느냐고 묻자 연광철은 “150회 이상”이라고 답했다. 콧대 높기로 유명한 이 축제에서 작은 키의 이방인이 영주나 왕을 연기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는 정공법을 택했다. “바그너가 요구한 해석에 가장 정확하고 모범적으로” 접근했다. 정확한 독일어 발성과 창법을 위해 무수히 연마하고 연구했다.
성악가 연광철의 이름 앞엔 ‘독일 궁정가수’, ‘세계적 베이스 가수’, ‘바그너 전문 가수’란 타이틀이 붙는다. 경기아트센터 제공
‘거장’ 지휘자들도 그의 입지를 탄탄하게 했다. 최근 내한한 지휘자 키릴 페트렌코(51)는 지난 2019년 베를린 필하모닉 상임지휘자 취임 공연에서 연광철을 파트너로 선택했다. 베토벤 교향곡 ‘합창’의 베이스 가수였다. 연광철은 “페트렌코가 학생 시절부터 인연을 맺었고 같은 기획사 소속”이라고 했다.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81)은 연광철을 베를린 국립오페라극장 단원으로 선발했고, 바이로이트 무대에도 초대했다. 그는 “세계시민인 바렌보임은 인종적 편견 없이 음악가들을 대하며 저를 늘 지켜봐 주셨다”라며 고마워했다. 지휘자 크리스티안 틸레만(64)도 2001년 바이로이트 무대에서 연광철에게 영주 역할을 맡겼다. 연광철은 “당시 틸레만의 캐스팅이 제 경력을 한 단계 점프시켜줬다”고 했다. 틸레만은 바렌보임 후임으로 내년 베를린 오페라극장 음악감독으로 취임한다.
그는 여전히 바쁘다. 이미 2025년까지 스케줄이 꽉 짜여 있고, 2026년 스케줄을 조율 중이다. 내년엔 키릴 페트렌코가 지휘하는 베를린 필과도 다시 공연한다. 틈틈이 국내 공연도 잡아놨다. 내년 3월엔 피아니스트 선우예권과 슈만의 ‘시인의 사랑’을, 하반기엔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를 공연한다. 그가 요즘에도 하루 3시간씩은 피아노 앞에 앉아 부단히 노래 연습을 하는 이유다.
임석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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