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감을 피해 정신병원에 들어간 ‘가짜 환자’ 이야기를 다룬 영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1977)의 한 장면. 네이버 갈무리
가짜 환자, 로젠한 실험 미스터리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무너뜨린 정신의학사의 위대한 진실
수재나 캐헐런 지음, 장호연 옮김 l 북하우스 l 1만9800원
1969년 2월6일, 경제학자이자 광고업계 중역인 데이비드 루리는 “둔탁한 소음”과 한 “남자”의 환청이 시시때때로 들린다며 미국 하버포드 주립병원 정신과의 문을 두드렸다. 의사는 30분 동안 이것저것 물었고, 남자는 부모와의 관계, 결혼 생활, 자녀 양육 등에 대해 대답했다. 의사는 남자에게 잠재된 편집증과 불만, 열등감 등을 포착했고, 곧바로 “조현정동장애”라는 진단과 함께 그를 입원시켰다. 하지만 남자는 가짜 환자였다. 정신의학이 “온전한 정신과 정신이상을 구별할 수 있는지 직접 알아보고자 했던” 미국 스탠퍼드대 심리학자 데이비드 로젠한의 실험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미국 저널리스트 수재나 캐헐런의 ‘가짜 환자, 로젠한 실험 미스터리’는 ‘지뢰밭과도 같은 정신의학의 역사’에서 로젠한 실험이 갖는 함의와 그 허실을 추적한 책이다. 지은이는 그 지뢰밭을 몸소 경험해봤다. 20대 중반 무렵, 그는 “폭력적이고 편집증과 환각”에 시달리는 듯 보였다. “냉정한 정신과 의사”는 “항정신성 약물”을 과도하게 처방했고, “정신병동 이송”을 준비했다. 약 한 달간 정신병동에 있다가, 끝내 “자가면역 뇌염” 진단을 받고 자유의 몸이 되었다. 이후 자신의 “질병에 관한 정보들을 수집”했고, 이내 “온전한 정신과 정신이상이 존재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알까?”에 대한 탐구로 이어졌다.
정신의학은 19세기 들어 탄생했다. 이전 시대까지 광기(狂氣)는 종교의 영역, 즉 신의 형벌이라고 생각했다. 이어 계몽주의 사상가들은 “합리적 이성이 무너진 부산물”인 비이성으로 “재정립”했다. 정신의학은 계몽주의의 이분법을 받아들여 광기가 “이론의 여지없이 철학적, 의학적 연구의 합당한 과제”라고 선언했다. 1808년 독일의 내과 의사 요한 크리스티안 라일이 ‘정신의학’(psychiatrie)이라고 명명하며 “마음과 뇌, 영혼과 신체”를 다루는 의학의 한 분야로 발돋움했다. 이후 정신의학은 정신질환을 뇌를 비롯한 생물학적 원인에서 찾으려는 시도는 물론 프로이트의 무의식 이론까지 다채로운 방식으로 전개되었다. 문제는 이때부터 “실험 과학이 만족스럽게 규명하지 못하는” 조현병이나 우울증, 불안장애 같은 병들마저 정신의학이 떠맡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다시, 로젠한의 실험으로 가보자. 가짜 환자 역할을 했던 로젠한은 “조현정동장애 유형의 조현병” 진단을 받았지만, 증세가 완화되어 10일 만에 퇴원했다. 그리고 자신과 함께 실험에 참여한 7명의 사례를 모아 1971년 1월 ‘사이언스’에 ‘정신병원에서 제정신으로 지내기’(On being sane in insane place)라는 제목의 논문을 게재했다. 논문에 대한 반향은 컸고, 로젠한은 그 명성을 “십분 활용”해 명사가 되었다. 로젠한의 연구는 동성애를 정신질환으로 여기던 당시 사회에 경종을 울렸고, 퇴역군인들의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는 등 순기능도 많았다.
하지만 정신의학에 대한 적절한 의문 제기와 인권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증폭시킨 것과는 별개로, 로젠한의 실험은 조작되었다. 실험 참가자 몇몇은 실험의 원래 목표와는 다른 방향으로 상황이 전개되었다. 로젠한의 대학원생이었던 빌 언더우드는 빌 딕슨이란 이름으로 한 공공병원 정신병동에 들어갔다. 문제는 “병원에 들어갈 때 준비가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로젠한은 약을 뺨에 숨기는 법 정도만 알려주었다. 별다른 면접도 없었다. 단지 의사에게 “쿵, 비었어, 공허해”라는 목소리가 들린다고 하자 주립병원으로 가면 된다는 말만 들었다. 아내가 걱정 끝에 찾아간 병원에서 발견한 빌은 “머리를 팔에 파묻은 채 구부정하게 앉”은 채로 “너어어무 조오오올려!”라고만 말했다. 약을 뺨에 숨기는 일조차 쉽지 않았던 것이다. 문제가 생기면 곧바로 퇴원 조치하겠다는 로젠한의 약속은 애초부터 거짓말이었다.
로젠한은 결과를 의도적으로 왜곡했고, 자신의 가설과 불일치하는 자료는 폐기했다. 존 비즐리, 새러 비즐리란 이름으로 실험에 참여한 부부는 은퇴한 임상정신과 의사, 교육심리학자였다. 하지만 로젠한은 이들의 진짜 정체를 연구조교에게까지 끝끝내 숨겼다. 로젠한이 삭제한 기록의 주인공은 해리 랜도라는 가명을 쓴, ‘정신병원에서 제정신으로 지내기: 추가 보고서’ 논문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애초 보고서에서 제외된 이유는 해리 랜도가 정신병원에서 안온함을 찾았기 때문이다. 행복한 대학원생도 아니었고 결혼생활도 순탄치 않았던 그는 병동 “휴게실 창문으로 들어온 넉넉한 자연채광”도 좋았고, 의료진과 직원들도 “환자를 동등하게 대”하는 것도 좋았다. 정신증 약을 먹어도 별다른 이상이 없었다. 정신의학의 부정적인 면을 강조하고자 했던 로젠한은 해리의 기록을 삭제하고, 다소 부정적인 부분만 다른 가짜 환자가 겪은 일인 양 기록을 조작했다.
수감을 피해 정신병원에 들어간 ‘가짜 환자’ 이야기를 다룬 영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1977)의 한 장면. 네이버 갈무리
로젠한의 실험은 문제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음에도, 그 문제점을 정확히 파악한 한 사람에 의해 더욱 가치가 높아졌다. 컬럼비아 대학교 정신의학과 교수였던 로버트 스피처다. 그는 로젠한의 논문을 “과학 행세를 하는 유사과학”이라고 혹평하면서도, 이 문제를 공론화하지 않았다. 그는 “정신의학의 교본으로 여겨지는” ‘정신질환의 진단 및 통계편람’ 제3판의 책임자였다. 이 편람은 프로이트의 이론을 철저히 배격하면서 “진단의 표준화”를 추구했다. 스피처는 정신의학의 엄정한 진단기준을 제시함으로써 정신의학을 더욱 의학처럼 보이게 하고 싶었던 것이다. 스피처는 그 일에, 비록 문제점이 하나둘이 아니지만, 로젠한의 실험이 주장하는 ‘정신의학을 싹 바꿔야 한다’는 명제가 꼭 필요했다.
로젠한의 실험이 조작, 왜곡되었다고 해서 모두 틀린 것은 아니다. 정신의학에 대한 오늘날의 인식에 여러 함의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시대가 변해 정신의학은 이제 장삼이사(張三李四)의 삶에 가까이 다가왔다. 다 이해하지도 못하는 이름의 정신질환들이 우리 일상을 속속 채우고 있다. 지은이는 정신의학 내부에서 한계를 인정하고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출발을 권한다. 그 기저에는 역시 다시금 이 질문만큼 유효한 것이 없어 보인다. “온전한 정신과 정신이상이 존재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알까?”
장동석 출판도시문화재단 사무처장, 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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