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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쩡한 집 두고 4년째 여인숙 사는 사진가, 그가 담으려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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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산 사진가 인터뷰 뒤 사진을 찍고 있다. 그의 손에 들린 사진집은 ‘여인숙’이다. 강성만 선임기자 이강산(65) 사진가는 철거 예정지인 대전역 근처 여인숙 달방(월 단위로 숙박...

이강산 사진가 인터뷰 뒤 사진을 찍고 있다. 그의 손에 들린 사진집은 ‘여인숙’이다. 강성만 선임기자

이강산(65) 사진가는 철거 예정지인 대전역 근처 여인숙 달방(월 단위로 숙박료를 내는 방)에서 산다. 올해로 4년째다. 2020년 7월부터 1년은 이 지역에서도 시설이 가장 열악한 ㄱ여인숙에서 살았고 작년 2월부터는 방을 옮겨 ㄴ여인숙에서 지낸다.

그가 대전의 집을 두고 냉난방도 되지 않고 바퀴벌레가 밥상과 커피포트를 오르내리며 종종 술에 취한 투숙객의 폭력에도 노출되는 달방에서 먹고 자는 것은 물론 사진 때문이다. ‘밑바닥 인생’이라는 멸시를 받기도 하는 달방 생활자들 사진을 찍으려면 신뢰 형성이 필수다. 충분한 인간관계를 맺기 전에 카메라를 들이댔다간 초상권 동의는커녕 바로 주먹이 날라올 수 있다. 실제 그도 달방살이 두 달 무렵 망치가 자신의 방문을 찍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달아났단다. 만취한 치매 초기의 투숙객이 왜 사진을 찍느냐며 밤중에 물리적 위협을 한 것이다. 그 뒤로 2층 자신의 방에 비상탈출용 로프까지 설치했단다.

‘인간의 시간’ 표지.

사진집 ‘여인숙’.

하지만 그는 얼마 안 가 달방 생활자들과 끈끈한 사이가 되었고 결국 2021년 10월에 사진집 ‘여인숙’(눈빛)을 냈다. 여인숙 ‘가족’의 영정 사진을 찍어주고 희로애락을 함께 나누는 진심이 통한 것이다. 그는 이 사진집으로 한국 다큐멘터리 사진상인 온빛사진상을 받았다. “심사위원들이 ‘머물지 않으면 절대 못 찍는 사진을 찍었다’며 ‘고생 많으셨다’고 위로하더군요.”

달방 생활 초기 1년의 시간을 일기 형식으로 기록한 책 ‘인간의 시간-여인숙 달방 367일’(눈빛)을 최근 펴낸 이 작가를 지난 3일 오후 그가 머무는 방에서 만났다.

그는 먼저 자신의 앞방 거주자가 처한 위험을 호소했다. “노동능력이 있다며 기초생계 수급자 신청에서 탈락했어요. 하지만 몸을 보면 노동할 신체가 아니에요. 단지 건강진단 때 특별한 게 나오지 않았을 뿐이죠. 먹을 걸 살 수 없어 거의 죽어가고 있어요. 언제 쫓겨날지도 모르고요. 여기 사람들을 두고 알코올 중독이나 도피자라며 욕하지만 우선 살려놓고 봐야죠.” 그는 “달방 사람들 절반은 기초생계수급자가 아니다. 생필품 지원이 절실한 분이 많다”고도 했다.

그는 달방 생활 첫 겨울부터 지인들 후원금을 모아 여인숙 가족 30여명의 생필품 지원을 하고 있다. 여인숙 가족들이 겨우내 대개 하루 한 끼 정도의 식사만 가까스로 해결하는 것을 보고 도덕적 갈등이 심했단다. “사람들이 밥을 못 먹어 죽어가는데 도저히 사진을 찍을 수 없더군요. 우선 사람을 살리는 게 급하다는 생각이 들었죠.” 후원금은 매달 30만원가량이 들어온단다. “쌀떡국이나 컵라면 같은 가공식품과 빵이나 떡을 사서 장애인이나 비수급자 중심으로 지원하죠. 옥수수나 고구마 같은 1차 식재료를 저에게 보내는 분도 계신데요. 방에서 휴대용 가스버너로 끓이려면 시간이 너무 걸리고 부탄가스도 필요해 이분들에게는 그림의 떡이죠.”

그가 머무는 대전역 주변 여인숙은 철거 예정지라 주인들은 시설 개보수에 관심이 없다. 내년으로 예상되는 보상금 수령 때까지 문을 열어놓는 게 우선 목표다. “벽이 삭아 못 하나도 박지 못해요. 콘크리트가 떨어지니까요. 붕괴 위험이 커 외벽에 철근 지지대를 임시로 설치한 곳도 있죠. 애초 예정된 재개발이 건설사 쪽 사정으로 늦춰지면서 달방 생활자들만 피해를 보고 있어요.”

그는 중고교 국어교사로 34년 가르치다 4년 전 명예퇴임했다. 1989년 ‘실천문학’으로 등단한 시인이기도 하다. 그는 자신이 추구하는 사진 작업을 ‘인간의 생존공간 탐구’로 정의한다. 1990년대 초부터 서른 군데가 넘는 철거 현장을 찾아 사진을 찍어 2017년에 흑백사진집 ‘집-지상의 방 한 칸’(사진예술사)을 냈고 여인숙은 2007년 포항 구룡포에서 처음 찍었다. “지난 16년 동안 전국 80군데 여인숙에서 촬영했죠.”

철거현장 등 ‘인간의 생존공간’ 탐구
2020년부터 대전역 근처 달방 살며
‘머물지 않으면 못 찍는 사진’ 찍어

실제 살아보니 사람 살리는 게 우선
후원금 모아 30명 생필품부터 지원
“집없이 떠돌던 이들 최후 주거공간
철거 이후 자활프로그램 마련 중요”

그의 부친은 일제강제노역에서 돌아와 75살이 될 때까지 50년을 전국 오일장에서 톱을 팔았단다. “장터를 떠도는 아버지 때문에 30여 년 신탄진 역 근처 셋방에서 살았어요. 마흔까지 집이 없어 이사 때면 철거예정지의 싼 집만 보고 다녔죠. 제가 생존공간을 탐구하는 이유는 간단해요. 집이 없었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생존공간으로써 여인숙의 특성은? “방이 아니라 집이죠. 실제 주민등록을 옮기는 분들도 많아요. 여기 사람들은 암묵적으로 운명공동체라고 느낍니다. 이웃동네 마실 하듯 다른 방을 찾아가죠. 호칭도 어머님, 형님, 이모, 삼촌 이렇게 해요. 119에 실려 가 요양원에 갔다가도 몸이 회복되면 다시 옵니다. 요양원은 자유가 없잖아요. 술 담배도 할 수 없고 사람을 만나 떠들 수도 없죠. 여인숙은 집 없이 떠도는 달방 가족들 최후의 주거공간이죠.” 여기 가족들의 삶을 보며 놀랐던 이야기도 들려줬다. “1평도 안 되는 방에 4계절 옷이 다 걸려 있어요. 생활용품이 가지런히 배치되어 있죠. 최하층이지만 주어진 조건에서 살 수 있는 방법을 스스로 터득한 분들이죠.”

이강산 작가가 여인숙 가족들이 음식을 나누는 모습을 찍었다. 이강산 작가 제공

그는 여인숙에서 ‘실존의 진실’이 담긴 사진을 찍고 싶단다. “여인숙은 산 사람이든 죽은 사람이든 은폐되거나 포장되지 않는 그대로의 모습을 찍을 수 있는 곳이죠.” 이어 자신의 작품 두 점을 보여주었다. 하나는 폭우로 침수된 달방을 청소한 뒤 기진맥진해 쓰러진 남자 사진이고 다른 하나는 악취 때문에 여인숙에서 쫓겨나는 여자 사진이다. “여인숙은 삶과 죽음이 경계 없이 공존해요. 이 방도 직전 거주자가 죽은 곳이죠. 지난 3년 겪은 죽음이 열 명을 넘어요.”

그는 사진집 ‘여인숙2’를 내년 하반기쯤 낼 계획이다. 이미 촬영은 마무리되었단다. 하지만 철거 보상이 끝날 것으로 보이는 내년까지 이곳을 떠나지 않을 작정이다. “사진집 출간과 전시 때문에 2021년 7월 여인숙을 나올 때 여기 가족들에게 철거 보상을 제대로 받을 수 있게 돌아와 돕겠다고 약속했거든요.”

그는 국가에 이런 제언도 했다. “복지의 사각지대를 잘 살피고 철거 이후 사람들이 먹고살 수 있도록 자활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게 중요합니다. 전문직 이모들은 당장 생계가 끊기거든요. 큰 부담 없이 공동주택에 살 수 있는 권리도 주어졌으면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달방 세입자들은 보상금 100~200만원을 받더라도 대부분 노숙자 신세가 될 겁니다.”

이 작가는 책에서 아버지의 ‘역마’가 자신에게는 소중한 유산이라고 했다. “아버지 피가 없었으면 제가 어떻게 30년 가까이 철거 현장을 떠돌며 사진을 찍었겠어요. 교사 시절에도 방학이나 주말에는 여인숙을 찾아 떠돌았거든요. 어릴 때 아버지가 당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공책에 연필로 적어 저에게 주기도 했죠. 나중에 드라마로 만들어보라고요. 이 이야기로 최근 단편소설 ‘금반지, 인간의 조건’(‘내일을 여는 작가’ 가을호)을 썼어요.”

그는 인터뷰 말미에 지난 3년 달방 생활을 하는 동안 잠시 갈등도 있었던 아내가 요즘은 후원봉사도 같이 하고 쪽방 주민들의 목욕봉사도 하고 있다고 고마워했다. (후원 문의 lks5929@hanmail.net)

강성만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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