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Stories:
문화

식상한 단색추상화 너울을 벗어나, 현실과 부대끼고 싶었다

Summary

자신의 초창기 작품 ‘벽’(1977) 앞에 선 이석주 작가. 극사실주의 1세대 작가로서의 출발을 알린 대표이다. 노형석 기자 “박서보 선생 말을 빌리면 무식한 사람들이 형상작업을 ...

자신의 초창기 작품 ‘벽’(1977) 앞에 선 이석주 작가. 극사실주의 1세대 작가로서의 출발을 알린 대표이다. 노형석 기자

“박서보 선생 말을 빌리면 무식한 사람들이 형상작업을 한다고 그랬죠.”

1970년대 중반 팔팔한 청년예술가였던 이석주(71) 작가는 당시 그림판 분위기를 그렇게 요약했다. 동양사상 혹은 한국성을 강조하며 백색 혹은 회색빛의 추상화 일색으로 작업하던 선배들의 행태에 식상했던 작가는 정반대로 현실을 사진보다 더 정밀하게 옮기는 하이퍼리얼리즘(극사실주의) 회화를 동료와 함께 막 시작했던 터였다. 예상하긴 했지만, 선배 화가들의 반응은 싸늘하기 그지없었다.

“노자나 장자의 담론 얘기나 자연주의에 바탕한 이우환 선생의 만남의 관계 당시 이런 게 우리의 교과서였어요. 그게 이해는 되는데 가슴으론 안 와요. 왜 미술이 당장 급한 현실을 다루지 못할까요. 버스비가 없어서 쩔쩔 매고 장가도 갈만한 형편도 못되어 막막했던 시절인데. 왜 형식은 거리가 있냐는 고민을 많이 했을 때죠. 가능하면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좀 이끌어보자 그런 시도에서 나온 것 같아요.”

이석주 작가 2007년작 유화 ‘사유적 공간’. 노형석 기자

이석주 작가의 1984년작 아크릴그림 ‘일상-대화’. 노형석 기자

경기도 마석 모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이석주 작가의 기획 초대전은 그의 회고가 드러내듯 그가 사실적 재현으로 국내 화단에서 최고 수준의 경지를 구축하기까지 40여년간 이어온 다기한 작품들의 편력을 다룬다. 좀 더 구체적으로 단색조 추상회화와 리얼리즘 회화가 서로 대립하고 길항해온 한국 현대미술사의 흐름 속을 작가가 어떻게 헤쳐오면서 자신의 재현 언어를 정련해왔는지를 보여주는 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1970년대 말 당시 화단에 철옹성처럼 군림하던 박서보, 하종현의 단색조 벽지풍 그림에 염증을 느껴 사물과 풍경 인물을 사진처럼 세밀하게 묘사하는 극사실주의 흐름을 일으켰던 1세대 주역이다. 화랑가에는 말과 시계 기차 등이 초현실적으로 배치된 대작 그림으로 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번 회고전은 1977년작 ‘벽’을 필두로 현실에 직면하고 부대낀다는 청년기의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현실 탐색적인 회화 작품들이 연대기별로 등장해 눈길을 끈다.

막 튀어나올 듯한 색감과 구도로 강한 물질성을 발산하는 1980년까지의 ‘벽’ 연작들과 고립된 밀폐공간 속에서 구멍을 통해 숨 막힐 듯한 1980년대 초반 한국의 인간 군상들을 보여주거나 1980년대 중반 이후 소비문화의 시대로 진입하면서 달음박질하듯 터져 나오는 욕망의 감수성들을 동그라미 신문콜라주 사이로 삐져나온 손짓과 발짓의 이미지로 묘사한 ‘일상’ 연작들이 바로 그런 문제작들이다.

작가의 재현적 작업들은 1990년대 초반 이후 말과 시계, 명화와 책들이 영화의 페이드 아웃기법으로 명쾌한 이미지와 흐릿한 이미지 사이를 오가는 1990년대 일상 연작과 사유적 공간 연작으로 2000년대 이후까지 흘러오게 된다. 현실을 직시했던 작가의 시선이 현상학적이고 미술사적인 맥락의 분석과 해체의 시선으로 바뀌게 되는 경로를 연대적 흐름에 따르지 않고 시기가 다른 작품들을 뒤섞어 보여주는 얼개로 드러낸다는 점에서 이석주 회화세계의 총체적 스타일을 독특한 경로로 읽어낸 기획이라 할 만하다. 26일까지.

마석/글 ·사진 노형석 기자

면책 조항: 이 글의 저작권은 원저작자에게 있습니다. 이 기사의 재게시 목적은 정보 전달에 있으며, 어떠한 투자 조언도 포함되지 않습니다. 만약 침해 행위가 있을 경우, 즉시 연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수정 또는 삭제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