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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꽁치’를 따라가면 다른 책세상이 보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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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고양이 서꽁치 이경혜 지음, 이은경 그림 l 문학과지성사(2022) 1977년 출간된 사노 요코의 ‘100만 번 산 고양이’는 여전히 스테디셀러다. 뿐만 아니라 지금도 새...

책 읽는 고양이 서꽁치

이경혜 지음, 이은경 그림 l 문학과지성사(2022)

1977년 출간된 사노 요코의 ‘100만 번 산 고양이’는 여전히 스테디셀러다. 뿐만 아니라 지금도 새로운 의미를 만들고 있다. 배우 심은경이 출연한 일본 드라마 ‘100만 번 말할 걸 그랬어’(2022)에서 그림책은 작품의 세계관을 반영한다. 이경혜의 ‘책 읽는 고양이 서꽁치’에도 등장한다. 고양이 서꽁치는 ‘100만 번 산 고양이’를 읽고 “누가 가슴속에서 풍선을 분 것처럼 가슴이 벅차올랐다”고 말한다. 또 한 겹의 레이어가 만들어지는 순간이다.

읽기는 인간의 고유한 능력이지만 어린이 책에서는 ‘책 읽는 강아지’와 ‘책 먹는 여우’ 그리고 ‘도서관에 간 사자’를 만날 수 있다. 물론 지금껏 만나본 동물 중에 서꽁치가 최고다. 서꽁치는 책만 읽으면 정신을 못 차린다. 때문에 겪지 않아도 될 모험에 휘말린다. 하긴 책 읽는 사람치고 현재에 안주하는 이는 별로 없으니 읽는 자의 운명일지도 모른다.

서꽁치의 성은 무려 글 서(書)자다. ‘꽁치’라는 이름은 함께 다스린다는 뜻의 공치(公治)라지만 등 푸른 생선 꽁치를 보고 지은 게 분명하다. 사실 꽁치는 평범한 고양이로 살 뻔했다. 집주인이 시끄럽다며 “야, 나비. 너 새끼들 데리고 당장 나가 버려”라고 하지 않았다면 말이다. 도도하고 성질 급한 엄마 서명월은 그 길로 집을 나와 집안 대대로 내려온 글 읽는 고양이의 비밀을 꽁치에게 털어놓는다.

지금껏 보는 것이 전부였던 꽁치가 ‘읽는 고양이’가 되자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글을 알고 나니 세상은 텍스트의 집이었다. 한글을 배운 어린이가 집 주위의 간판을 읽고 다니듯 꽁치도 허기 들린 고양이처럼 글자를 읽어댄다. 새로운 글을 읽고 싶어 집을 벗어나 항구로, 만선호를 타고 바다로 그리고 낯선 도시의 책방에 이른다. 처음 읽은 책은 ‘장화 신은 고양이’. 한 번 이야기에 맛을 들이자 멈출 수 없다. 엄마에게 혼이 나고 안 읽겠다고 다짐하지만 자석에 이끌리듯 책을 찾는다. 주인집에 있는 ‘보물섬’을 몰래 읽다 집으로 돌아오는 밤이면 꽁치는 “외다리 해적이 짐 호킨스를 죽이지나 않을까” 궁금해 잠 못 이룬다. 왜 안 그러겠나. 어린 박완서와 이경혜를 작가로 이끈 마법이 아닌가. 결국 서꽁치는 읽는 고양이라는 정체를 들키고 ‘그대 다시는 고향에 못 가’는 신세가 된다. 우여곡절 끝에 ‘100만 번 산 고양이’를 읽은 서꽁치는 그림책 속 흰 고양이를 찾으려 책의 궁전 도서관으로 향한다.

모든 책은 보이지 않는 책을 품는다. 유은실의 ‘나의 린드그렌 선생님’이나 앤드루 클레먼츠의 ‘루저 클럽’처럼 아예 책이 이야기를 끌고 갈 때도 있다. ‘책 읽는 고양이 서꽁치’도 비슷하다. 책이 내준 길을 따라 읽는 사람이 된다. 엄마 서명월은 “책 읽는 능력이 꼭 좋은 건 아니야. 꽁치는 행운아지만 동시에 불운한 고양이일 수도 있어”라고 말한다. 책을 만나지 않았다면 꽁치는 모험에 휘말리고 고향을 떠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꽁치는 후회하지 않는다. 책 읽다가 기차도 놓치고 비행기도 놓치는 나 역시 후회하지 않는다. 초등 3학년 이상.

한미화 출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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