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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색언론 뺨치는 ‘7인의 탈출’…19금 딱지로도 안 가려지는 참담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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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인의 탈출’. 에스비에스 제공 김순옥 작가가 자극의 강도를 높여 돌아왔다. 2008년 ‘아내의 유혹’으로 주춧돌을 놓고, 2020년 ‘펜트하우스’로 완공된 김 작가의 자극적인 ...

‘7인의 탈출’. 에스비에스 제공

김순옥 작가가 자극의 강도를 높여 돌아왔다. 2008년 ‘아내의 유혹’으로 주춧돌을 놓고, 2020년 ‘펜트하우스’로 완공된 김 작가의 자극적인 드라마 세계가 지난 9월 시작한 ‘7인의 탈출’로 영역 확장을 시도하고 있다.

김 작가의 드라마는 완성도와 별개로 방영할 때마다 화제를 모았지만, 황당무계함의 강도가 더해지면서 논란도 함께 일으켰다. 그의 드라마 세계는 “가해자의 악행에서 비롯한 생사의 갈림길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피해자의 복수극”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이른바 ‘순옥적 허용’이 지배하는 초현실의 드라마이다.

‘순옥적 허용’은 부동산과 교육을 매개로 한국 사회의 탐욕을 파헤치겠다는 의도를 표방한 ‘펜트하우스’를 계기로 세간에 퍼졌다. 극적 개연성을 무시하고 현실에서 불가능한 일들을 마구잡이로 구성한다는 의미다. 거창하게 표현해서 초현실이지, 실상은 일상을 배제한 탈선의 현실에 불과하다.

김 작가는 ‘7인의 탈출’에서 탐욕스러운 악인들을 응징하기 위한 명분을 쌓으려고 태어나자마자 버림받았으나 양부모의 사랑으로 바르게 성장한 여자 고등학생을 희생양 삼는다. 사건 사고가 발생하는 일상 현실에 착안한 상상력이라고 믿기 어려운 자극적인 상황이 난무한다. 보는 내내 불쾌감을 지울 수 없는 극적 상황들이 ‘순옥적 허용’이라는 표현을 다시 소환한 것이다.

의도는 분명하다. “충격적인 사건이죠. 너무 쉽게 앱으로 짝을 만나고, 아무 준비 없이 부모가 되다 보니, 가정과 사회가 급격히 붕괴하는 게 심히 걱정스러울 지경이에요. 저희 드라마가 현 세태에 큰 울림을 주길 소망합니다.” 자식을 버린 어머니라는 개인사를 숨긴 채 모성애 소재의 드라마를 기획하는 제작사 대표 금라희(황정음)의 대사에는 고등학생의 원조교제와 출산이라는 충격적인 세태에 관한 김 작가의 우려가 담겨 있다.

하지만 작가의 바람대로 ‘7인의 탈출’이 물질적 욕망에 함몰되어 상식과 도덕을 내팽개친 작금의 세태에 경종을 울릴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의도가 선하다고 결과도 선한 것은 아니다.

에스비에스 제공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7인의 탈출’은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기사를 남발하는 황색 언론의 드라마적 변용이라 할 수 있다. 황색 언론은 독자의 이목을 끌기 위해 성적 착취나 일탈 관련 사건을 확대하고 재생산하면서 말초적 호기심을 자극한다. 최근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 청문회에서 드러난, 가상자산(암호화폐)을 보상으로 받으려고 사회관계망서비스에 ‘여성 혐오’ 기사를 대거 올린 사례가 방증이다. 고등학생의 원조교제와 출산, 학교폭력의 실상, 연예 기획사와 드라마 제작사의 야합, 인터넷 개인 방송과 사이버 레커의 선동, 부패 경찰의 비리, 마약 불법 유통 등과 관련한 에피소드를 자극적이고 선정적으로 연출한 ‘7인의 탈출’이 황색 언론과 뭐가 다른지 궁금하다.

무엇보다 이런 상황들을 드라마의 허구성으로 포장해 자극의 강도를 높여 연출한 점이 심각하다. “지옥의 불구덩이를 맛보게 할 거야”라면서 복수 의지를 실행에 옮기는 극적 상황의 잔인성은 ‘19금’ 딱지로도 가려지지 않는다. 살아 있는 사람을 생매장하고, 양부모의 사랑을 그루밍 성범죄로 매도하여 음해하는가 하면, 인터넷 개인 방송 중에 총기를 난사하고, 사형제의 부활을 호소하는 에피소드들이 성글게 연출되는 장면들을 보고 있으면 욕지기가 치받칠 정도이다. 악행의 가해자들을 한자리에 모아 마약에 취하게 만든 뒤 처절하게 응징하는 장면은 마치 “마약은 적법 절차를 지키되, 과하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강력하게 단속해야 한다”는 법무부의 주장을 거칠게 웅변하는 듯하다.

김 작가의 드라마 세계는 탐욕과 저주, 납치와 감금, 폭력과 살인, 변신과 생환, 복수와 응징을 반복하면서 영역을 확장했다. 자신이 구축한 세계 안에서 김 작가는 신적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의 드라마 세계는 16세기 스페인에서 유행한 문학 양식인 ‘피카레스크’(주인공이 악인인 작품)에 적합할지 모르지만, 고대 그리스 비극에서 자주 사용하던 극작술인 ‘데우스 엑스 마키나’(초현실적인 힘으로 긴박한 국면을 해결)를 연상시켜 인간과 세계의 이면을 포착하고 극적으로 형상화하여 공론장을 만드는 작가의 역할을 이행하기는 어렵다. ‘7인의 탈출’을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는 까닭이다.

한 중학교 교사가 학생들한테 ‘7인의 탈출’이 교육적이지 않다고 답했다는 이유로 학부모 민원을 받았다는 소식도 ‘순옥적 허용’으로 받아넘겨야 할지, 참담할 뿐이다.

충남대 국문과 교수·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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