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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낮 4시 시위하는 교수, 이처럼 사소하게 어마어마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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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레어 키건 지음, 홍한별 옮김 l 다산책방(2023) 2022년 부커상 후보작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머지않아 우리 인류의 운명이 걸려 있는 것으로 밝혀질 ...

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레어 키건 지음, 홍한별 옮김 l 다산책방(2023)

2022년 부커상 후보작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머지않아 우리 인류의 운명이 걸려 있는 것으로 밝혀질 주제를 다룬다. 외면하고 집 안으로 사라질 것인가? 용기를 내고 대가를 치를 것인가?

미시즈 윌슨의 집에서 가사 일꾼으로 일하던 펄롱의 엄마는 열여섯 살에 펄롱을 낳았다. 엄마는 아빠가 누구인지 말하지 않았다. 미시즈 윌슨은 엄마를 해고하지 않고 그 집에서 계속 일하게 해주었다. 언젠가 펄롱이 맞춤법 대회에서 일등을 하자 윌슨 부인은 ‘마치 자기 자식인 양’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칭찬해 주었다. “자랑스럽게 생각하렴.” 펄롱은 한동안 자기도 ‘다른 아이들처럼 소중한 존재’라는 생각을 하면서 살 수 있었다.

시간이 흘러 성실한 석탄 배달업자가 된 그는 이런 생각을 했다. 요새 나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아내와 딸들 말고 뭐가 있을까? 마흔이 다 되어가는데 더 발전하는 것 같지도 않고 이 똑같은 날들이 무슨 의미가 있나. 펄롱이 사는 마을에는 수녀회에서 운영하는 세탁소, 요양원, 학교, 기숙사가 있다. 세탁소는 훌륭했지만 소문이 많았다. 타락한 여자들이 새벽부터 한밤중까지 더러운 세탁물을 깨끗하게 하면서 속죄하는 곳이라는 둥 모자보호소라서 가난한 집의 결혼하지 않은 여자의 아이를 부유한 외국으로 보내는 곳이라는 둥. 펄롱은 어느 날 석탄 배달을 위해 약속 시간보다 일찍 수녀원에 도착했다. 그리고 작은 예배당에서 형편없는 차림으로 마룻바닥을 닦고 있는 어린 여자들을 발견했다. 한 아이가 말했다. “아저씨. 우리 좀 도와주시겠어요?” “대문 밖으로만이라도 나가게 해주세요.”

그날 밤 펄롱은 침대에서 그날 본 것을 아내에게 말했다. 아내는 그런 일은 우리와 아무 상관이 없고 우리 책임도 아니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고, 생각해봤자 더 울적해지기만 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사람이 살아가려면 모르는 척해야 하는 일도 있는 거야. 그래야 계속 살지.” “우리가 가진 것 잘 지키고 사람들에게 척지지 않고 부지런히 살면 우리 딸들이 그 애들이 겪는 일들을 겪을 일은 없어.” “걔들은 우리 애들이 아니라고.” 펄롱은 미시즈 윌슨 생각을 했다. “미시즈 윌슨이 당신처럼 생각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란 생각 안 들어?” 아내의 말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상황을 이해해 보려는 사람, 혹은 상황을 바꾸려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듣게 되는 말이다. 그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그가 자신의 심장이 뛰는 것, 용기, 유일무이한 삶을 느끼는 것은 아내와의 이 대화에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달려 있다.

크리스마스 며칠 전, 나는 매일 오후 4시, 시계처럼 정확하게 삼척우체국 앞에서 화력발전소 반대 피켓 시위를 하는 성원기 교수를 만났다. 무엇이 그를 이렇게 행동하게 했을까? 어느 날 아침 8시 10분 전, 그의 눈에 학교에 가는 아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이들 등 뒤로 시멘트 공장의 굴뚝들이 보였다. 연기의 색깔은 하얀색, 검은색, 파란색이었다. 파란 연기의 정체는 대체 무엇일까? 시멘트 공장은 무엇을 어떻게 태우고 있는 것일까? “아이들은 여기 사는 것을 선택한 게 아니잖아요. 어른이 이렇게 만든 세상에 사는 것을 선택한 게 아니잖아요. 그런데 그 대가를 치러야 하잖아요. 그것을 용서할 수 없어서 시위를 합니다.”

매일 피켓을 들고 우체국 앞에 서 있는 ‘이처럼 사소’해 보이는 행동으로 드러나는, 도덕적 선택으로 이루어진 삶은 ‘어마어마한’ 이야기다.

정혜윤 CBS(시비에스)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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